실체 없는 성인지예산 많다면서 감축 주장
존재 않는 IMF 국가채무비율 기준치 강조
특별회계로 빚 줄일 수 있다는 황당함까지

20대 대선 국면에서 후보들은 공약을 실천할 재정 마련 방안을 숱하게 언급했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문제는 주요 후보 가운데 재정을 올바르게 이해한 이가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거짓을, 누군가는 오류를 근거로 내세우기에 바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직’에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이 이래도 괜찮은 걸까. 20대 대선에서 후보들이 잘못 발언한 ‘재정 오류’들을 리뷰해 봤다. 

20대 대선에서 후보들은 재정에 관한 잘못된 발언들을 쏟아냈다.[사진=뉴시스]
20대 대선에서 후보들은 재정에 관한 잘못된 발언들을 쏟아냈다.[사진=뉴시스]

‘역대급 비호감’이란 오명을 뒤집어썼던 20대 대선이 막을 내렸다. 정책 대결보다는 유난히 비방과 흑색선전이 난무해 여야 모두 비판과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이 때문에 대선후보들의 정책이 제대로 검증받지 못한 측면도 있다. 정책이 비방과 흑색선전에 가려지기 일쑤였던 탓이다. 

가장 심각했던 건 대선후보들의 재정 인식이다. 대선후보들은 각자 내건 공약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막대한 재정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를 두고 갑론을박을 펼쳤지만, 그 누구도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비롯한 주요 대선후보들의 재정 관련 인식이 그다지 건전해 보이지도 않았다. 재정을 잘 모르고 있거나, 실현 불가능한 재정 마련 방안을 주장하거나, 심지어 거짓말을 하는 경우까지 숱했다. 

예를 들어보자. 윤석열 당선인은 지난 2월 27일 경북 포항에서 진행된 유세 현장에서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다 이런 발언을 했다. “오늘 아침에 핵 탑재가 가능한 (북한의) 미사일 실험이 있었다. 올해 들어 8번째다. … 우리 정부가 성인지감수성 예산이란 걸 30조원 썼다고 알려져 있다. 그 돈이면 일부만 떼어내도 우리가 이북의 저런 말도 안 되는 핵위협을 안전하게 중층적으로 막아낼 수 있다.” 성인지 예산을 줄여 핵위협 방지에 사용하겠다는 거였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오류다. 성인지 예산은 일반적인 예산처럼 별도의 세금이 투입되는 ‘실제 예산’이 아니다. 성인지 예산은 ‘예산이 여성과 남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이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운영에 반영’하도록 법(양성평등기본법ㆍ국가재정법)에 규정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정부 각 부처나 지자체 예산 중에 성평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업에 투입된 예산은 성인지 예산으로 분류된다. 윤 당선인이 “성인지 예산이 30조원”이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인 듯한데, 이는 분석 대상이 된 사업을 모아보니 27조원 규모였다는 것이지 27조원의 사업 예산이 별도로 편성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윤석열 당선인은 ‘성인지 예산’에 관한 잘못된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사진=뉴시스]
윤석열 당선인은 ‘성인지 예산’에 관한 잘못된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사진=뉴시스]

그의 주장대로 성인지 예산을 줄인다는 건 예산을 줄이는 게 아니라 대상 사업을 감축하는 걸 뜻한다. 각종 사업을 집행할 때 성평등을 유념해서 집행하라고 성인지 예산 사업으로 분류한 건데, 예산을 줄이라고 하면 사업을 하지 말란 거나 다름없다. 

성인지 예산에 관한 이런 잘못된 인식은 일부 남성 중심 커뮤니티에서 등장해 논란을 빚었다. 이후 여러 미디어의 팩트체크를 통해 오류가 드러났는데, 그럼에도 대선후보가 이 오류를 반복해서 운운한다는 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2월 2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관한 TV토론에서 상대 대선후보들과 ‘국가채무비율(GDP 대비)’을 두고 논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이 후보는 이렇게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국가채무 비율은 85% 이내가 적정하고, 너무 낮게 유지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쉽게 말해 ‘IMF가 우리나라 국가채무비율의 적정선을 제시했다’는 거였다. 

이 후보의 이런 주장은 처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도 “우리나라의 국가부채비율(2020년 기준 47.9%)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22.7%)의 절반도 안 된다”면서 “오히려 IMF에서는 85% 정도가 적정하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 후보의 이런 주장은 IMF가 매년 회원국의 경제 전반을 점검해 발표하는 국가별 보고서를 토대로 하고 있는데, IMF가 ‘적정 국가채무비율’을 명시한 적은 없다. 더구나 ‘국가채무비율 85%’ 얘기는 우리나라 국회가 45%를 ‘위험치’라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으로 나온 것인데, 결국 ‘국가채무비율 85%’는 적정치가 아닌 임계치(위험수준)라는 의미로 사용한 거였다. 

한 국가의 국가채무비율이 적정한지를 판단하려면 국채 규모와 비율의 상승률, 향후 세입 전망, 이자 부담 전망 등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 이 때문에 쉽게 판단해서도, 판단할 수도 없다. ‘국가채무비율의 적정선’을 판단하는 건 학문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정치의 영역이어서다. IMF가 적정선을 제시하지 않는 것도 그래서다. 그런데 이 후보는 있지도 않은 IMF 보고서를 들먹이면서 틀린 주장을 반복적으로 했다.

재정에 관한 오류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후보 사퇴) 역시 비껴가지 않았다. 안 대표는 2월 21일 열린 TV토론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될 때마다 계속 추경으로 땜질하는 건 비정상”이라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코로나19 특별회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특별회계’를 만들면 국채 발행으로 인한 채무를 늘리지 않고도 충분히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견해도 밝혔다. 

대통령이 재정 이해 못해선 안 돼 

특별회계는 특정 사업을 추진하거나 특정한 자금을 운용하고자 할 때 일반회계와 구분해서 따로 설치하는 회계를 의미한다. 별도의 주머니로 관리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안 대표가 코로나19 특별회계를 주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30조원의 재원을 별도로 관리하면 더 효율적이지 않겠냐는 거다. 

하지만 이 역시 재정을 잘못 이해한 데서 기인한 오류다. 들어오는 돈(세입)의 규모가 같고, 써야 할 돈(세출)의 규모가 같다면 하나의 주머니를 이용하든, 별도의 주머니를 이용하든 부채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작동 불가능한 코로나19 특별회계’ 발언은 올해 2월 8일 열린 관훈클럽 토론에서도 똑같이 등장했다. 

개인은 모르거나 오류를 범할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개인이 아니다. 처음엔 실수를 할 수 있겠지만, 그걸 반복적으로 하는 건 심각한 문제다. 윤석열 당선인은 과연 후보 시절 내뱉었던 말을 주워 담을 수 있을까.

글 = 이왕재 나라살림연구소 부소장
wangjaelee@gmail.com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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