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위 업체 선봉 서면 릴레이 인상
가격정찰제 등 교묘하게 활용
정보교환 등 물밑 협상도 존재

시장 경쟁력이 가장 우위에 있는 1위 업체가 가격을 올린다. 그러자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던 나머지 업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둘 가격 인상을 단행한다. ‘원자재 가격 상승’ ‘누적된 고통’을 이유로 들지만,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 안에 업체들의 꼼수가 똬리를 틀고 있어서다.

“육계 신선육 시장 점유율 77% 이상을 차지하는 사업자들이 약 12년에 걸쳐 광범위한 수단을 동원해 담합, 온 국민이 이용하는 닭고기 가격 상승을 초래했다.” 지난 3월 16일 공정거래위원회가 16개 육계 신선육 제조·판매사업자에 총 과징금 1758억2300만원을 부과하고 이중 5개사(올품·동우팜투테이블·마니커·체리부로)는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업체는 2005년 11월 25일부터 2017년 7월 27일까지 총 45차례 담합했다. 공정위가 공개한 담합 사례를 보면 이렇다. 

#사례1. 제비용(도계비), 생계(도축 이전의 생닭) 운반비, 염장비 등 육계 신선육 판매가격 요소를 인상하기로 총 16차례 합의(2005년 11월 25일~2017년 3월 8일)하거나 할인 하한선 등을 설정해 가격 할인 경쟁을 제한했다. 

#사례2. 총 20차례에 걸쳐 육계 신선육을 냉동 비축하는 방법으로 출고량 감축을 합의하거나 생계 시세를 인위적으로 상승·유지하기 위해 생계 구매량을 늘리기로 합의했다(2011년 6월 28일~2017년 7월 1일). 

#사례3. 육계 신선육의 가장 핵심적인 생산 원자재에 해당하는 종란(달걀)·병아리를 폐기하는 방법으로 육계 신선육 생산량을 감축하는 데 총 9차례 합의했다(2012년 7월 24일~2016년 7월 25일).


공정위의 발표를 정리해보면, 이들 업체는 담합을 통해 육계 신선육 판매가격, 생산량, 출고량, 육계 생계 구매량을 인위적으로 조절해 가격이 하락하는 걸 막거나 시세를 끌어올렸다.

문제는 담합의 나쁜 나비효과다. 담합을 통해 가격의 ‘선’을 높게 유지하면 대리점·프랜차이즈·유통업체 등이 사들이는 가격도 비싸질 수밖에 없고, 결국엔 소비자들이 사먹는 치킨·닭볶음탕 등의 가격도 올라간다. 공정위가 철퇴를 내린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사실 이런 담합은 그동안 곳곳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져왔다. 하지만 더 심각한 건 전반적으로 시장 가격을 끌어올리는 행위가 이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표적인 게 누구 하나 총대를 메면 줄줄이 가격을 올려대는 ‘가격 인상 퍼레이드’다. 사례를 업종별로 살펴보자.

소주업계에는 변하지 않는 룰이 하나 있다. 시장 점유율 1위 업체인 하이트진로(65.1%·2020년 내수판매량 기준)가 대표 브랜드 참이슬의 출고가에  손을 대면 나머지 업체들도 주르르 가격 인상 행렬에 동참한다는 거다. 더 흥미로운 건 이런 패턴이 3~4년 주기로 반복돼 왔다는 점이다.

시계추를 2015년으로 돌려보자. 그해 11월 하이트진로는 “소비자물가가 상승하는 등 누적 인상 요인율이 12.5%에 달했지만 원가절감을 통해 인상률을 최대한 낮췄다”며 참이슬 출고가를 5.52% 인상했다. 2012년 출고가를 올린 지 3년만의 가격 인상이었다.

그러자 한달 후인 12월에 맥키스컴퍼니(제품명 이제 우린)와 한라산소주(한라산)가 가격 인상에 동참했다. 두 업체의 가격 인상폭은 각각 5.50%, 3.14%였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무학(좋은데이)과 금복주(참소주), 대선주조(시원소주)도 출고가에 손을 댔다. 


소주업계 가격 인상 행렬은 해를 넘겨서도 계속됐는데, 롯데주류는 하이트진로가 가격을 올린 지 약 한달 만인 2016년 1월 4일 처음처럼의 출고가를 6.39% 끌어올렸다. 2015년 11월 시작된 인상 릴레이는 2016년 8월 보해양조가 잎새주 등의 출고가를 5.61% 인상하는 것으로 9개월여 만에 멈췄다.

2019년에도 시작은 하이트진로가 끊었다. 그해 4월 하이트진로가 참이슬 출고가를 1015.7원에서 1081.2원으로 6.45%(65.5원) 인상하자 롯데주류도 6월 처음처럼 출고가를 1006.5원에서 1079.1원으로 7.21% 올렸다. 전국구 소주 업체들이 가격을 올리자 한라산소주(5.16%), 금복주(6.45%) 등 지역 기반 소주업체들도 하나둘 꼬리를 물고 가격을 인상했다.

이런 행렬은 올해에도 연출됐다. 지난 2월 하이트진로 측은 “지난 3년간 14% 이상의 가격 상승 요인이 발생했지만 소비자들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인상률을 결정했다”며 참이슬 출고가를 7.90% 인상했다. 곧바로 무학(8.84%), 보해양조(14.60%), 롯데주류(병 7.70%·640mL 페트 제품 6.70%)가 순차적으로 ‘인상 바통’을 이어받았다. 대선주조는 3월 8일 소주 출고가를 8.06% 인상하며 막차를 탔다.

아이스크림도 꼬리를 물고 가격 인상이 단행되는 품목 중 하나다. 2016년 사례를 보자. 그해 3월, 롯데제과가 월드콘과 설레임의 가격을 평균 8.4% 끌어올렸다. 해당제품 가격은 1200원에서 1300원으로 인상됐다. 그로부터 한달 후인 4월 해태아이스크림이 부라보콘 외 콘 아이스크림 3종의 납품단가를 8~11% 올렸다. 
 

아이스크림 가격은 계속해서 상승세를 탔다. 빙그레는 붕어싸만코와 빵또아 등 7종 가격을 인상했고, 롯데푸드는 구구콘과 빠삐코, 국화빵 등 7종의 가격을 올렸다. 소주처럼 특정 업체가 가격을 인상하면 다른 업체가 따라붙는 모양새다. 주목할 점은 아이크스림을 파는 업체들이 ‘알쏭달쏭’ 카드로 사실상 가격인상을 꾀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름 아닌 ‘가격정찰제’를 통해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판매점이나 할인점은 1500원이던 아이스크림에 할인율을 적용해 절반 가격인 800원대에 판매해왔다. 올 3월 안에 할인율을 없애고 1000원에 판매하라.”[※참고: 아이스크림 가격정찰제는 권장소비자 가격을 표시하는 제도다. 2018년 빙그레가 처음 시도했지만 80%까지 할인율을 적용하는 아이스크림 할인점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사실상 유명무실했다.] 

이에 따라 해태아이스크림은 1500원이던 부라보콘의 가격을 1000원으로 책정하고 할인율을 없앴다. 롯데제과와 롯데푸드도 월드콘과 구구콘을 1000원으로 고정해 할인이 불가능하도록 했다. 정가를 낮추는 대신 출혈경쟁을 막아 수익성을 개선하겠다는 업체들의 속내가 담긴 전략이다. 반면 사실상 800원이던 아이스크림을 1000원을 주고 사먹게 된 소비자로선 ‘가격정찰제로 값은 내렸는데(1500원→1000원) 되레 비싸진’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였다.

대표적인 서민식품이어서 소비자들이 유독 가격 인상에 민감한 라면은 ‘정보 교환과 담합 그 사이’ 어디쯤에서 가격을 올려왔다. 약간 어려운 말을 쉽게 풀어보자. 가장 최근에 가격을 올린 지난해 8월 라면 3사(농심·오뚜기·삼양)는 차례로 라면 가격을 인상했다.

13년 동안 가격을 인상하지 않던 오뚜기가 먼저 주요 라면 가격을 평균 11.9% 끌어올렸다. 그러자 농심과 삼양식품도 각각 6.80%, 6.90% 가격을 인상했다. 이 행렬에 따라붙은 팔도도 7.80% 수준의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그럼 오뚜기가 마지막으로 가격을 올렸던 2008년엔 어땠을까. 그해 2월 농심이 신라면과 짜파게티를 비롯한 주요 라면제품 가격을 100원씩 올리자 삼양식품·오뚜기·한국야쿠르트도 줄줄이 가격을 100원씩 올렸다.

[※참고: 그로부터 8년 후인 2016년에도 비슷한 양상이 펼쳐졌다. 그해 12월 농심이 18개 제품의 평균 가격을 5.4% 인상하자 이듬해인 2017년 5월 삼양식품이 삼양라면 등 12개 제품 5.4% 올렸다. 업종을 무관하고 누구 하나 먼저 가격을 올리면 차례대로 가격을 인상한 셈이다.]

라면업계는 누구 하나 먼저 가격을 올리면 연이어 가격 인상을 단행한다.[사진=뉴시스]
라면업계는 누구 하나 먼저 가격을 올리면 연이어 가격 인상을 단행한다.[사진=뉴시스]

공정위는 당시 업체들이 정보교환을 통해 가격 인상 담합했다고 판단했다. 2012년 공정위는 “라면업체들이 2001년 5월부터 2010년 2월까지 정보교환을 통해 라면가격을 공동으로 인상해왔다”며 4개 업체에 시정명령과 과징금(1354억원)을 부과했다.

그 기간 농심이 가격을 올리면 나머지 업체가 기다렸다는 듯이 가격을 인상하는 패턴이 반복됐기 때문이다.[※참고: 공정위는 정보교환을 통해 담합한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농심은 ‘단순한 정보교환’ ‘후발업체들이 따라온 것’이라고 맞서며 행정소송으로 번졌다. 대법원까지 간 끝에 농심이 승소했는데, 공정위는 이후 가격이나 생산량 등 업체 간 중요 정보 교환만으로도 담합을 처벌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법을 개정했다.]

정연승 단국대(경영학) 교수는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이 가격을 올리면 하위 기업이 따라가는 게 관행처럼 굳어졌다”면서 “글로벌 이슈로 원재료 가격이 오른 요즘 같은 환경에선 받아들일 수 있지만 담합 등 부정이 드러나면 소비자들의 신뢰는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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