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제 도입한 동대문 도매상가 가보니…
당연한 변화 vs 시기상조 엇갈린 반응

동대문 도매상가 청평화패션몰과 디오트가 주5일제를 도입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동대문 도매상가 청평화패션몰과 디오트가 주5일제를 도입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 동대문 도매상가 두곳(청평화패션몰·디오트)에 주5일제가 선도입됐다. 평화시장이 동대문에 문을 연 지 60년 만의 일이다. 주5일제를 도입하기 전 몇몇은 “파격적인 도전”이라고 말하고 또다른 몇몇은 “시장에서 웬 주5일제”라면서 반대했다. 그로부터 두달여, 동대문시장에선 어떤 변화가 싹텄을까. 

# 상인들의 반응은 여전히 엇갈린다. 누군가는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변화였다”고 말하지만, 누군가는 “매출이 줄어 불편하다”고 꼬집는다. 다만 분명한 건 변화가 이미 시작됐다는 거다. 당장 매출이 줄어들 순 있지만 삶의 질이 향상되고, 젊은 인재를 유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5일제는 수용해야 할 변화였을지 모른다.

# 문제는 청평화패션몰과 디오트에 도입된 주5일제가 동대문 도매시장 전체로 확산할 수 있느냐다. 이 역시 전망은 엇갈린다. 더스쿠프가 주5일제 도입 두달을 맞은 청평화패션몰과 디오트를 가봤다. 

동대문패션타운관광특구. 서울 중구 신당동과 광희동, 동대문시장 일대에는 3만여개의 점포가 포진해 있고, 이곳에서 15만여명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단일 지역, 세계 최대 패션산업단지인 이곳은 2002년 5월 23일 관광특구로 지정됐다. 

한창땐 세계 각지의 수출전진기지로 연간 800만명이 넘는 관광객과 소매상인, 바이어들이 즐겨 찾는 세계적인 패션상권이자 관광명소였지만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코로나19를 연이어 겪으면서 침체기를 보내고 있다. 

쇼핑의 무게중심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며 국내 소비자들의 발걸음도 줄었다. 동대문패션타운관광특구협의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동대문 패션타운 유동인구는 전년 동기 대비 70% 감소했다. 이곳에서 장사를 하는 한 상인은 “몇년 전부터 눈에 띄게 사람이 줄었는데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더 힘들어졌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힘을 잃어가던 이곳에 최근 파격적인 바람이 불고 있다. 1962년 동대문에 평화시장이 문을 연 지 60년 만인 2022년 3월 1일 주5일제가 도입된 거다. 그로부터 두달여가 흐른 4월 29일, ‘주5일제’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패션전문 도매상가 청평화패션몰과 디오트를 가봤다. 

청평화패션몰은 청계천변을 따라 옆으로 길게 늘어선 건물에 1200여 여성의류 도매상들이 들어서 있다. 그 건물 외벽에 얼마 전부터 현수막 2장이 화려하게 빛나고 있는데, 내용은 이렇다. ‘하이 FIVE 청평화패션몰 3월 1일부터 획기적인 주5일제 영업으로 새롭게 인사드립니다.’ ‘Amazing 5 Days 청평화 패션몰 3월 1일부터 경이로운 주5일제 영업으로 새롭게 인사드립니다.’ 문구 옆으론 자축하듯 손뼉 치는 아이콘도 귀엽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언급했듯 이 상가는 3월 1일 주5일제를 도입했다. 그에 앞선 2월 16일 청평화시장 각층 상인회와 관리운영회가 입주상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까지 실시하면서 신중하게 결정한 제도였다.

당시 “주5일제 시행을 찬성하십니까?”란 질문에 915개 점포 중 90.3%인 827개 점포가 찬성에 표를 던졌다. 상가 관계자는 “주5일제 시행 전엔 토요일 낮 12시까지 영업을 하고 일요일 밤 11시 50분에 영업을 재개했다”면서 “이젠 금요일 낮 12시에 영업을 마치면 토요일과 일요일을 쉴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청평화패션몰이 현수막까지 걸어가며 자축한 건 주5일제 시행이 동대문 도매상가의 숙원사업이었기 때문이다. 1962년 이후 이곳 상인들은 밤낮으로 굵은 땀을 흘렸다. 소매업이 주를 이루는 남대문시장이 주간영업을 하는 것과 달리 이곳 동대문 도매상가는 야간영업이 대부분이어서 상인들은 어두운 밤에도 불을 밝힌 채 손님들을 맞이한다. 기자가 상가를 방문한 오전 10시 30분께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상인들이 종종 눈에 띄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거다.  

동대문 도매상가의 특징은 좁은 통로로 사입仕入(상거래를 목적으로 물건을 사는 것)하는 소매상들과 사입삼촌들이 바쁘게 오간다는 거다. 그 양옆으론 그들을 기다리는 물건 보따리들이 한가득 쌓여 있다.[※참고: 동대문 도매상가 방문이 어려운 업체를 대신해 사입을 대행해주는 이들을 시장 사람들은 ‘사입삼촌’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점포에서 물건을 받아 배송 업무까지 처리해준다.] 

기자도 사입삼촌들을 따라 좁은 통로를 오가다 직원과 함께 물건을 정리하던 1층 여성 영캐주얼 매장 상인 한정순(가명)씨에게 슬쩍 말을 건넸다. “주5일제를 시행한 지 두달째인데 변화를 좀 느끼시나요?” “주말에 이틀 동안 쉬니까 아이들이 좋아해요. 그런데 경영자로선 매출이 많이 줄어드니까 별로 안 반갑죠.” “이전과 비교해서 매출이 많이 줄었나요?”

불쑥 건넨 질문에 한씨는 “지금 물건 정리해야 해서 좀 바쁘다”며 자리를 피했다. 문이 닫히기 전 지하 1층부터 지상 5층까지 걸음을 서둘러봤지만, 그들은 기자의 발걸음보다 바빠 보였다.


이번엔 디오트 상가로 걸음을 옮겼다. 이곳도 3월 1일부터 주5일제를 시행 중이다. 이곳에선 전체 상인 중 89.7%가 주5일제를 찬성했다. 이 말은 10.3%가 반대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디오트 안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김자영(가명)씨는 반대쪽에 선 상인 중 한명이다. 

“의류 매장들은 온라인으로도 영업을 하잖아요. 하지만 우린 그게 되나요. 사람이 있어야 장사를 하죠. 예전엔 토요일 밤에 일반 손님들도 오고 그랬는데, 이젠 기대할 수 없게 됐죠. 주6일에서 5일로 바뀌면서 한달에 4~5일은 영업을 못하게 된 건데,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쪼그라든 매출이 더 줄었어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적응을 해야죠. 그런데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시장에서 주5일이라니….”

일부 상인들이 매출이 감소한다는 이유로 주5일제를 반대했다.[사진=연합뉴스]
일부 상인들이 매출이 감소한다는 이유로 주5일제를 반대했다.[사진=연합뉴스]

반면 5층에서 여성복을 판매하고 있는 사장 이유진(가명)씨는 주5일제 도입을 적극 찬성했다. 아래층 점포엔 직원들을 두고 운영 중이라는 이씨는 “직원들 복지를 위해서라도 주5일제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도 직원 생활을 해봤는데, 야간영업이라는 게 쉽지 않아요. 굉장히 피곤해요. 주6일 근무할 땐 직원들 피곤할까봐 눈치를 보곤 했는데,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쉰 만큼 열심히 일하자고 편하게 말할 수 있어요.” 

이씨는 무엇보다 동대문 도매상가의 미래를 위해 주5일제를 환영한다고 강조했다. 무슨 말일까. “주6일제 체제는 젊은 세대들이 기피해요. 힘든데 누가 오려고 하겠어요. 인재를 불러들이기 위해서라도 주5일제는 필요했어요. 삶의 질이 높아지면 일하고 싶어하는 인재들이 시장으로 올 거라고 생각해요. 코로나19로 매출이 계속 빠져 있는 상태라 이게 맞는 건가 싶을 때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땐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변화라고 생각해요.”

그때 인근에서 점포를 운영하는 한 상인이 남들보다 앞서 문을 닫고 이씨와 기자 앞을 지나갔다. 이씨에게 “즐거운 주말 보내”라는 인사를 건네고 이틀간의 휴일을 보내러 가는 그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동대문 도매시장에서 주5일제를 도입한 배경을 두고 이런저런 분석들이 많다. 도매시장도 이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동대문 도매시장과 소매사업자를 연결하는 B2B 플랫폼이 등장해 굳이 주6일 근무를 고집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주를 이루지만 진짜 이유는 어쩌면 ‘구인난’일지 모른다. 

지대식 동대문패션타운관광특구협의회 사무국장의 말을 들어보자. “동대문 도매상가에 주5일제 얘기가 처음 나온 게 아마 2011~2012년께일 겁니다. 그 즈음부터 일할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야간업무라 체력적으로 힘드니까 돈을 더 준다고 해도 일하러 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상인들이 그런 고충을 참아왔는데, 2020년 들어서면서 극에 달한 거죠.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주5일제 논의가 이뤄졌습니다.”

지 사무국장은 동대문 도매시장의 변화는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젊은 상인들이 많은 청평화패션몰과 디오트에서 먼저 실행에 옮겼을 뿐, 그 파급효과가 머잖아 곳곳으로 옮겨붙을 거라는 거다. “이미 늦었죠. 상인들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주5일제는 필요합니다. 아마 올 연말쯤 되면 동대문 도매시장 전반에 주5일제가 퍼져 있을 겁니다. 늦었지만 두 손 들어 환영해야죠.”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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