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스, KFC 사라진 종로 중심상권의 민낯
건물마다 나붙은 ‘임대’ 현수막
38년만에 간판 뗀 KFC 1호점

1980년대 종로는 핫했다. 글로벌 프랜차이즈가 차례로 문을 열었고, 밤늦도록 상가의 불이 꺼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종로는 딴판이다. 코로나19로 영업이 제한적이긴 하지만 그 이전에도 깊은 침체의 늪에 빠져 있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종각역부터 KFC 1호점이 있던 그 거리를 걸어보며 종로의 민낯을 들여다봤다. 한국경제의 어두운 자화상이 오버랩됐다.

종로 중심상권엔 공실이 넘쳐나고 있다. 한집 건너 한집마다 ‘임대’ 현수막이 붙어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종로 중심상권엔 공실이 넘쳐나고 있다. 한집 건너 한집마다 ‘임대’ 현수막이 붙어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맹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종로2가 종각지하쇼핑센터 12번 출구 앞에 섰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빠져나온 기자를 가장 먼저 반긴 건 종로의 터줏대감 미려빌딩(종로 78)이었다.

이 건물 1층은 수년째 굳게 닫혀 있다. 2016년 12월까지 영업하던 패션브랜드 ‘뱅뱅’이 방을 뺀 뒤 아무도 들어오지 않고 있다. 혹여 누가 들여다 볼세라 안을 꼼꼼하게 가린 흰 가림막 위로 ‘임대’라는 두 글자만이 덩그러니 붙어 있다.


건물을 한참 올려다보다 걸음을 종로3가 방향으로 옮겼다. 미려빌딩 옆 건물(종로 80) 카페드람브르의 2~6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입구를 지나면 아모레퍼시픽의 브랜드숍 ‘아리따움’이 있다. 화장품 로드숍이 수년 전 쇠퇴기에 접어들고 소비자들이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상황에서도 9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점포다.

하지만 그곳 역시 이제나저제나 손님이 들어올까 출입문 쪽으로 자꾸만 시선을 보내는 점포 주인만 있을 뿐, 그 문을 열고 들어가는 손님은 없었다. 

아리따움을 지나면 신한은행365 자동화 점포와 주얼리브랜드 점포 ‘미니골드’가 어깨를 맞대고 있다(종로 80-1). 옆 건물 삼양빌딩(종로 80-2)은 그나마 상황이 좋은 편이다. 치열한 저가커피 경쟁에서 승기를 잡고 점포수를 폭발적으로 늘려가고 있는 ‘메가커피’와 ‘참약사’라는 푸른색 간판이 눈길을 끄는 ‘종각호약국’이 어깨를 맞대고 서서 드나드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종각호약국 왼쪽에 있는 건물 입구를 지나쳐 다음 건물로 가봤다. 이곳 에버리치빌딩(종로 82)은 지하 1층부터 지상 6층까지 통째로 비어 있다. ‘각 층당 약 40평’이라는 문구와 함께 지하 1층부터 지상 6층까지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친절한 안내가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임대문의’라는 네글자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에버리치빌딩 입구는 아예 셔터로 굳게 닫혀 있다. 셔터 너머 안쪽 벽면에 층별 안내판이 있지만, 그 어떤 글자도 쓰여 있지 않다. 

에버치리빌딩과 이웃하고 있는 건물은 부봉빌딩(종로 82-1)이다. 1층엔 예술품과 골동품을 취급하는 ‘엔틱플리마켓’이 있다. 조명을 낮춘 탓이었을까. 가게 안엔 인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위로는 안경점, 직업소개소, 속눈썹전문점 등의 간판이 건물 벽면 모서리에 질서정연하게 정렬돼 있다. 

부봉빌딩 옆은 지난해 4월까지 커피프랜차이즈 할리스의 종로본점(종로 84)이 있던 자리다. 1층부터 4층까지, 24시간 운영하며 종로상권의 밤을 밝히던 카페이자 브랜드 본점이라는 의미가 담긴 곳이었다.

그래서일까. 2016년 맥도날드가 있던 이곳에 들어오며 할리스는 MZ세대의 취향에 맞춰 공간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카공족을 겨냥해 4층은 아예 스터디 공간으로 배치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픈 5년 만에 자리를 비우게 됐다. 당시 할리스는 “임대차 계약이 끝난 것”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종로상권의 침체를 넘지 못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해당 건물은 할리스가 나간 후 계속 공실 상태다. 

옛 할리스 종로본점에서 몇걸음 옮겨 새로운 블록을 만났지만 이번에도 기자를 맞이하는 건 건물(종로 86) 1층의 ‘임대문의’ 현수막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2층부터는 미용실, 안경점 등이 정상 영업을 하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는 거였다. 통째로 비어 있는 건물 몇채를 지나고 나니 손님이 있든 없든 공간이 비어 있지 않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가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기자의 반가운 마음은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바로 옆에 위치한 새하얀 건물(종로 86-1) 때문이다. 입구 안쪽에 커다란 병이 장식돼 있는 이 이색적인 건물은 서울우유가 운영 중인 디저트 카페 ‘밀크홀 1937’ 종로점이다. 서울우유는 2017년 밀크홀을 운영해 현재 4개 매장을 운영 중인데, 종로점이 그중 하나다. 2018년 오픈한 종로점은 1층부터 4층까지 전층을 사용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우유를 활용한 디저트는 물론 서울우유 굿즈도 판매하고 있다.

아기자기한 밀크홀 카페를 지나니 체감기온 영하 15도의 날씨에 기자가 이곳을 방문한 이유가 그 존재를 드러냈다. 이곳 경영빌딩(종로 88) 1층과 2층에선 불과 얼마 전까지 KFC 1호점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지난 1984년 미국의 대표 프랜차이즈인 KFC(당시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는 번성하던 종로상권에 첫발을 내디디며 국내 영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높은 임대료와 유지 보수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지난 2일 영업을 끝으로 38년 만에 간판을 내렸다.

KFC가 국내에 상륙했던 1980년대만 해도 종로상권은 ‘만남의 장소’ ‘데이트 장소’로 인기를 끌던 곳이었다. KFC 이후에 버거킹, 맥도날드, 파파이스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프랜차이즈가 차례로 매장을 연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모습은 영 딴판이다. 언제 시작됐는지도 모를 상권 침체는 회복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상인 누군가는 “코로나19 때문에 못 살겠다”하고 또 누군가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때부터 시작된 그림자”라고 한다. 하지만 일일이 따지고 보면 이유가 어디 그뿐이겠는가.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깔린 종로2가를 통해 한국경제의 자화상을 들여다보자.

■자화상❶ 늙은 상권 = 종로상권은 과거 대한민국 1등 상권으로 불리던 곳이다. ‘종로서적’ ‘금강제화’ 앞에서 만난 청춘들은 그곳에서 쇼핑을 하고, 불야성을 이루는 젊음의 거리로 들어가 밤을 보냈다. 하지만 변화하는 시대를 따라가지 못했다. 시대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거리는 그대로였다. 대한민국 1등 상권이 저문다는 얘기가 오래전부터 쏟아진 이유다. 

이호병 단국대(부동산학) 교수는 그 이유로 거리상점들의 한계를 꼬집었다. “MZ세대는 원스톱쇼핑이 가능한 복합쇼핑몰을 선호한다. 거리상점들은 계절적 영향을 받고, 이용하기에도 불편하다. 시대 흐름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자연 발생적인 상권이라 체계적인 MD가 어려운 점도 상권 침체의 이유 중 하나다.”

■자화상❷ 발길 돌린 소비자 = 매력이 사라진 곳에 소비자가 올 이유는 없다. 소비의 축인 MZ세대는 종각역을 축으로 퍼져있던 종로 중심 상권이 아닌 그 위 서촌과 그 옆 익선동, 을지로로 발길을 돌렸다. 서촌과 익선동은 멋스러운 골목이 눈길을 사로잡고, ‘힙지로’라고 불리는 을지로는 레트로한 감성을 선호하는 그들에게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종각역 일대는 어떤가. 그곳을 찾아야 할 뚜렷한 이유가 없다. 멋스러운 골목이 아닌 촌스럽고 오래된 건물과 골목이 있고, 트렌디한 감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유선종 건국대(부동산학) 교수는 “상인들이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이 결여된 결과”라고 꼬집었다. 그는 “별거 아닌 것 같은 작은 노력이 큰 변화를 불러온다”며 “을지로엔 그게 있었고, 그게 종로엔 없었다”고 덧붙였다. 

■자화상❸ 꿈쩍 않는 임대료 = 소비자를 다른 지역에 빼앗긴 매장들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종로상권 소규모 상가(2층·연면적 330㎡ 이하)의 공실률은 8.7%다. 2020년 1분기 1.5%였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상승했다. 이유가 뭘까.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손님은 빠르게 줄고 있는데 임대료는 그와 상관없이 계속 치솟고 있으니 이를 감당하지 못한 상인들이 종로상권을 떠나는 거다.

KFC 1호점이 38년 만에 간판을 내렸다.[사진=뉴시스]
KFC 1호점이 38년 만에 간판을 내렸다.[사진=뉴시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서울의 주요 도심지역 상가의 평균 임대료는 1㎡당 6만8700원이다. 3.3㎡(약 1평)로 계산하면 22만6710원이다. 종로상권의 임대료는 어떨까. 1㎡당 7만1100원으로 평균을 웃돈다. 6만2500원인 을지로보다 임대료가 비싸다. 종로에서 33㎡(약 10평)를 임대해 장사하려고 하면 월 234만6300원을 임대료로 내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여기에 보증금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넓은 공간을 사용하는 패스트푸드점이나 카페가 감당해야 하는 임대료 부담은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이는 KFC와 할리스 등이 종로상권을 떠난 이유 중 하나이자 공실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자화상❹ 눈물 흘리는 상인 = 문제는 이런 침체가 언제 풀릴지 모른다는 데 있다. 전문가들도 “뾰족한 돌파구가 없어 보인다”고 말한다. 이곳에서 14년째 어묵과 꼬치 장사를 하고 있는 정호근(가명)씨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공실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종식된다고 해도 지금의 상황이 좋아질지는 솔직히 모르겠다”며 “임대료가 너무 높아서 프랜차이즈 본사 차원에서 투자하는 거 아니면 누가 이 비싼 곳에 들어오려고 하겠냐”고 꼬집었다.

몇몇 상인은 아예 말을 꺼렸다. 괜히 하소연했다가 안 그래도 힘든 다른 상인들에게 되레 피해를 줄까봐서다. 이래저래 돌파구를 찾기 힘든 종로2가. 한집 걸러 한집이 공실인 그곳엔 혹한이 매섭게 휩쓸고 있었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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