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거리 가보니…
빈 점포 늘어난 명동 공실률 50% 넘어
혹한기 속 상인들의 깊어지는 한숨

바쁘게 영업을 준비하는 점포들,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음악, 북적이는 인파…. 명동의 과거는 그랬다. 지금은 어떤가. 향긋한 냄새를 풍기던 화장품 로드숍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위기를 버티다 못한 이들은 그곳을 떠났다. 혹한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명동거리 속으로 더스쿠프(The SCOOP)가 들어가 봤다.

명동거리에 넘쳐나던 화장품 브랜드 로드숍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명동거리에 넘쳐나던 화장품 브랜드 로드숍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희뿌연 미세먼지와 영상의 낮기온이 봄기운을 알리던 지난 11일. 바쁜 출근 시간이 조금 지난 오전 10시 30분, 지하철 4호선 명동역 6번 출구 앞에 섰다. 밀리오레호텔의 장기투숙(호텔 한달 살기) 안내 입간판을 지나면 대한민국 쇼핑 1번지 명동거리(명동8길)가 펼쳐진다. 

명동거리에 들어섰다는 걸 가장 먼저 알리는 건 19년째 한국에서 가장 비싼 땅값을 자랑하고 있는 ‘네이처리퍼블릭 명동월드점’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곳의 땅값은 1㎡당 1억8900만원(2022년도 표준지 공시지가)이다. 3.3㎡(약 1평)에 6억2370만원인 셈이다. 지난해 공시지가 12억650만원보다는 8.5% 하락했지만, 여전히 국내에서 땅값이 가장 비싸다.

하지만 그와 무관하게 그곳을 드나드는 손님은 없었다. 봄 기분을 내볼 생각에 옐로 계열의 매니큐어를 두개 사들고 나왔지만, 네이처리퍼블릭 명동월드점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 외벽 가득한 초록식물이 모두 시든 것을 목격한 순간, 설레는 기분도 이내 시들어버렸다.


맞은편 타비빌딩도 손님의 발걸음이 끊긴 지 오래다. 이 건물 1층부터 4층까지 사용하던 유니클로 명동중앙점은 지난해 1월 31일을 끝으로 영업을 종료했다. 2011년 11월 명동중앙점은 뉴욕 5번가점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유니클로 플래그십 스토어로 오픈했다. 오픈 당일에만 매출 20억원을 기록했지만 최근 몇년간의 불매운동 여파와 코로나19 영향으로 침체가 길어지자 10년 만에 문을 닫았다. 유니클로가 사용하던 타비빌딩 1~4층은 현재 공실이다.

네이처리퍼블릭과 타비빌딩을 시작으로 명동예술극장까지 길게 이어지는 길은 대한민국 쇼핑 1번지이자 화장품 로드숍의 천국이었던 명동거리다. ‘었던’이란 과거형을 쓴 건, 이제 옛말이 됐기 때문이다. 지금의 명동거리에선 사람들이 북적이고, 유커游客(중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영광을 찾아볼 수 없다. 문 닫은 곳보다 문 연 곳을 찾는 게 더 빠를 정도로 빈 점포들이 숱했다. 

네이처리퍼블릭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엔 주얼리 브랜드 클루(이랜드) 명동점과 어퓨(에이블씨엔씨) 명동충무로점이 있었다. 하지만 클루는 간판도 없이 외부 인테리어 흔적만 남아 있고, 그 옆의 어퓨 매장은 ‘다음에 또 만나요. 코로나 여파로 잠시 쉬어갑니다’ ‘어퓨 명동 중앙로점을 찾아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커다란 현수막이 내부를 가리고 있었다. 현수막 틈 사이로 미처 정리하지 못한 화장품들이 눈에 띄었다.

건너편 상황도 마찬가지다. 토니모리 명동 1호점은 2015년 기능별로 ‘메이크업’ ‘펀’ ‘베스트’ 라인업을 갖춰 리뉴얼 오픈했지만 침체한 명동거리에서 살아남기엔 역부족이었다. 간판은 그대로였지만, 유리문은 신문으로 덮여 있었다. 군데군데 찢겨서 바닥에 나뒹구는 신문이 토니모리의 현실을 보여주는 듯했다.

토니모리는 2020년 255억원의 손실을 본 데 이어 지난해에도 13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토니모리 옆의 액세서리 전문숍 블링박스 역시 유리문 너머 어지럽게 널려 있는 물건들이 꽤 오랜 시간 방치되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블링박스 옆 화장품 브랜드 로드숍 이니스프리와 더 샘은 아직 오픈 전이라 조명이 꺼져 있었지만 이미 오픈을 한 매장이라고 한들 다를 건 없었다. 인근의 미샤 플러스 매장이 그랬다. ‘미샤 필수템’ ‘인기상품’ ‘50% 세일’ 등으로 호객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여느 매장들처럼 직원의 숨소리만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그 밑으로 펼쳐진 화장품 가게의 풍경들 역시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빈 점포가 줄을 이었다. 홀리카홀리카는 흔적도 없이 방을 뺐고, 잇츠스킨과 디오키드스킨은 간판만 남아 있을 뿐 안이 텅 비어 있었다. 그나마 음악 소리가 들리고, 몇몇 손님들이 오가는 건 SPA 브랜드 자라(ZARA)를 비롯해 아디다스·풋락커·ABC마트·스와치 등 글로벌 브랜드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임대 현수막과 반갑지 않은 인사를 이어가다 명동예술극장 사거리에 도착했다. 발길을 눈스퀘어(NOON SQUARE) 쪽으로 돌렸다. 이 거리 역시 화장품 브랜드 로드숍이 즐비하던 곳이다. 하지만 이니스프리 명동 플래그십은 지난해 12월 영업을 종료했고, 네이처리퍼블릭, 에뛰드하우스, 토니모리 등도 간판을 달았던 흔적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몇몇 점포 앞엔 철거물을 실어 나르려는 트럭이 서 있기도 했다.

사실 명동은 골목 안쪽 상황이 더 심각하다. 그야말로 ‘폐허’다. 마지막으로 문을 연 게 언제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무겁고 차가운 기운이 골목 구석구석을 휩쓸고 있었다. 휠라 키즈 매장마저 지난해 4월 28일부터 임시 휴업 중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021년 4분기 기준, 명동의 중대형 상가(3층 이상이거나 연면적 330㎡ 초과)의 공실률은 50.1%에 달했다. 전국과 서울 평균이 각각 13.5%, 10.0%인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다음으로 높은 광화문(23.0%)과 비교해도 두배 이상 높다. 소규모 상가(2층 이하이고 연면적 330㎡ 이하)도 마찬가지다. 서울 기준 소규모 상가 평균 공실률이 6.7%인데, 명동은 50.3%다. 

화장품 로드숍의 몰락으로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의 속도 까맣게 타들어간 지 오래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인근에서 식당을 하고 있는 이정애(가명)씨는 “화장품 가게가 문을 닫으니 거기서 일하던 직원 손님들도 뚝 끊겼다”며 “그마나 직장인들이 있어서 문을 열고는 있는데, 이 고통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골목 안쪽 상황은 더 처참하다. 명동상권 공실률은 50%가 넘는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골목 안쪽 상황은 더 처참하다. 명동상권 공실률은 50%가 넘는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마침 점심시간이 가까워져 근처 사무실에서 일하던 직장인들이 하나둘 명동거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기자도 그들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다 칼국수 전문점 명동교자로 홀린 듯 들어갔다. 1인 테이블로 안내받고, 칼국수를 주문했다. 

이곳의 칼국수는 지난 2월 가격이 인상돼 1만원이다. 칼국수 한그릇으로 배를 채우고, 처리할 업무가 있어서 이번엔 근처 스타벅스(명동길점)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스타벅스도 지난 1월부터 가격을 올려 아메리카노 한잔에 4500원(Tall 사이즈 기준)이다. 밥 먹고, 커피 한잔 마시는 데 1만4500원을 썼다.

기자가 다시 명동거리에 선 건 오후 4시. 저녁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식당들이 하나둘 영업 준비를 하고 있던 시간이었다. 불고기·비빔밥 등 한식을 전문으로 하는 한 식당에 들어가 밀린 신문을 읽고 있던 식당 주인 우숙경(가명)씨에게 말을 건넸다. 2011년부터 이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는 우씨는 “2020년 3월 10일까지 장사하고 평일 장사는 안 한다”면서 “2년 동안 주말(금·토·일요일)에만 문을 열고 있는데, 손님이 있는 날보다 없는 날이 더 많다”고 말했다. 

집에 있을 바에야 나와서 앉아 있기라도 하자는 생각으로 가게에 나온다는 우씨지만 언제까지 이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진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들 떠났어요. 명동 임대료가 좀 비싸야 말이죠. 여기도 한달 임대료만 1200만원이에요. 그동안 까먹은 돈만 수억원이죠. 이걸 그만둔다고 한들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그냥 버티고는 있는데, 제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가을에는 좀 괜찮아질까요? 사람들은 뭐라고 해요?”

이틀 전 치른 대선 소식이 가득한 기사를 보던 그는 “정권이 바뀐다고 크게 기대되는 건 없다”고 말했다. “명동은 외국인이 와야 살아나요. 싱가포르가 잠깐 국경을 열었을 때 관광객들이 좀 왔었거든요. 그것 말곤 바라는 거 없어요.” 우씨에게 하늘길이 열리면 다시 들르겠다는 약속을 하고 식당을 나왔다.

노점상들에게도 이번 위기는 예전 같지 않다. 명동거리의 노점은 예전과 비교해 눈에 띄게 줄었고,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앞에서 장사를 하는 이성례(가명)씨와 조영순(가명)씨는 손님이 없을 때 앉아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곤 하는데, 요즘은 그런 할 일 없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떡볶이와 어묵 등을 파는 이씨는 “연말에는 그래도 사람들이 오니까 11월부턴 잠깐씩 나와서 장사를 했다”면서 “그때 말곤 2년 동안 쉰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건어물 장사를 하는 조씨는 “오늘 12시 30분에 나왔는데, 아직까지(오후 4시께) 1만5000원 벌었다”면서 “많이 팔아야 하루 5만원 버는데, 가스 한통값이 2만8000원이다”고 토로했다.

여기 다들 적자예요. 저기 있는 매장 보이죠? 1월에 오픈했어요. 연말에 반짝 사람들 많은 거 보고 입점했나 본데, 아마 지금쯤 후회하고 있을걸요? 우리는 그마나 나아요. 가게 갖고 있는 사람들은 정말 힘들 거예요. 여기 있던 사람들 지금 다 뭐하고 있는 줄 알아요? 젊은 사람들은 배달일 하고, 나이 좀 있는 아줌마들은 청소도우미 하고 있어요. 중국 사람들이 좀 와야 먹거리 장사가 되는데, 그날이 언제 올지 몰라요. ‘이러다가 또 풀릴 때가 있겠지’ 기대하고 있어야지 어쩌겠어요. 우린 누가 대통령이 되든 상관없어요. 하늘길 열리는 게 중요해요.”

명동거리에서 환전소를 운영하는 김종석(가명)씨는 “우리는 멸시당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늘길이 막혀 누구보다 피해를 입고 있는데 금융서비스업으로 분류돼 있다는 이유로 그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한 채 힘겨운 날을 보내고 있다는 거다. 

“구청에 여러 번 전화해서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금융서비스업이라고 안 된대요. 단 한번이라도 현장에 나와 보면 알 텐데, 책상에 앉아서 정책을 짜니 우리 현실을 알 수 있겠어요? 외국인이 있어야 환전소도 영업이 되는데, 그런 사정은 전혀 생각하지 않아요. 완전히 사각지대입니다. 갖고 있던 달러 환전하러 오는 손님 말곤 없어요. 그마저도 가뭄에 콩 나듯 있는 일입니다. 나가고 싶어도 5년 계약이라 못 나가요. 갈 데도 없어서 여기 와서 책이나 보고 있는 거죠.”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통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관광 목적으로 입국하는 외국인은 크게 줄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엔 1653만명이 국내에 입국했는데, 2020년엔 21만명에 그쳤다. 98.7%가 감소했으니 화장품 로드숍도, 식당도, 노점도, 환전소도 죽을 맛인 게 당연하다. 

김씨는 “그래도 정권이 바뀌었으니까 1~2년 후엔 좀 나아지지 않겠냐”며 “그런 기대를 서서히 품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기자가 명동을 방문한 그날, 방역 당국은 3월 21일부터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완료한 해외입국자의 자가격리를 면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자영업자들의 기대처럼 명동을 휘감고 있는 차가운 바람은 봄바람으로 바뀔 수 있을까. 다시 시끌벅적해질 명동을 기대하며 그곳을 빠져나왔다.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찬바람이 뒤를 쫓아왔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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