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미군기지 공원화 작업의 현주소
토양 피복하고 개방해도
토양 정화에만 수 년 소요될 가능성 높아

대통령 집무실이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겨간 지 두달째다. 국민에게 가까이 다가가겠다는 약속은 용산 공원 개방으로 이뤄지는 듯했지만 ‘시범 개방’ 결정은 두차례 뒤집혔다. 대신 올 하반기까지 토지 피복 등의 과정을 거쳐 ‘임시 개방’을 하겠다고 밝혔다. 인조 잔디 등으로 오염된 땅을 일단 덮어두겠다는 건데, 대통령 집무실 앞 공원은 어떤 모습일까. 

윤석열 정부는 용산 미군 기지를 오는 9월 임시 개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윤석열 정부는 용산 미군 기지를 오는 9월 임시 개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용산 국방부 건물이 대통령 집무실이 된 지도 두달째에 접어들었다. 대선 당시 ‘청와대 개방’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월 인수위 시절 “용산 국방부로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고, 그 앞을 공원으로 만들어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지만 용산 미군 기지를 개방하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란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난제의 핵심은 대통령 집무실로 탈바꿈한 국방부 건물과 그것을 둘러싼 미군 기지 ‘사우스포스트(SOUTH POST)’였다. 대통령 집무실 앞 공원으로 계획된 곳은 사우스포스트의 일부 지역이다. 

사실 사우스포스트의 반환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이뤄질 일이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집무실 앞 공원’을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문제가 생겼는데, 그건 절차에 맞춰 흐르던 시간을 앞당기는 일이었다. 

혹자는 ‘어떤 일이든 빨리 진행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군부대의 부지는 평범한 땅과 다르다. 드나드는 차량이 워낙 많기 때문에 부지 밑엔 상당한 양의 기름이 스며들어 있다. 군부대 특성상 탄환 등을 보관했던 탓에 중금속 성분도 흘러다닌다. 이렇게 스며든 오염 물질은 그 땅을 이용하는 사람에게 돌아오게 마련이다. 

이런 맥락에서 사우스포스트에도 오염물질이 깔려 있을 공산이 크다. 이를 간접적으로 입증하는 조사 결과도 있다. 2018년 서울시는 용산 미군기지 인근(녹사평ㆍ캠프킴)에 지하수 관측정 62개소를 설치하고 오염도 조사를 한 바 있다. 


당시 발표 자료에 따르면, 27개 관측정의 오염도가 지하수 정화기준을 초과했고, 벤젠은 기준치의 최대 1170배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참고: 2004년과 비교하면 2018년 관측된 오염물질은 줄었지만 기준치를 초과한 건 달라지지 않았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기동민 의원(민주당)은 환경부 자료를 인용해 윤 대통령이 공원으로 개발하겠다고 밝힌 용산 부지의 인근에서 다이옥신과 비소가 기준치의 최고 34.8배, 39.9배 넘게 검출됐다고 지적했다.

토지 정화 과정은 굴토, 청토를 거쳐 되메우기 순으로 이뤄진다.[사진=더스쿠프 포토]
토지 정화 과정은 굴토, 청토를 거쳐 되메우기 순으로 이뤄진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이 때문에 사우스포스트의 땅은 ‘정화 과정’을 거쳐야 하고, 여기엔 오랜 시간과 인내심을 투입해야 한다. 통상 토양 정화 과정은 3단계로 진행한다. 오염된 토양을 파내고(굴착), 그 토양을 정화한다(청토). 그렇게 깨끗해진 토양으로 원래 자리를 메운다.

토양만 정화한다고 끝이 아니다. 오염물질이 토양을 거쳐 지하수까지 오염시켰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지하수 정화 과정도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 처리도 ‘토지 정화 사업’의 일부다. 

이같은 토양 정화 과정을 거치고 있는 사업지는 이미 있다. 철도 차량 기지가 있던 용산정비창이다. 2019년 시작된 이곳의 토지정화사업은 3년이 흐른 지금도 진행 중이다.

사업지 경계에 있는 이촌고가교 위로 오르면 공사장 펜스 너머에서 진행 중인 토지 정화 작업을 볼 수 있는데, 간략하게 묘사하면 다음과 같다. “…땅이 파이고 있고 한쪽엔 흙산이 생겼다. 공사장에서 나온 흙을 실어나르는 화물 트럭은 하루에도 수십번 사업 현장을 드나들고 있다….”

3년째 토지를 정화하고 있는 용산정비창도 이 정도인데, 용산 미군기지를 돌려받으면 곧바로 ‘공원’으로 쓸 수 있을까. 여야 정치권의 주장은 이번에도 격하게 충돌하고 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미군 기지 내 다이옥신ㆍ벤젠 등의 검출 결과가 기준치를 훌쩍 넘어 토양 오염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꼬집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은 “미군도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던 공간이기에 임시 개방한다면 위험하지 않다”면서 반론을 펴면서 맞서고 있다. 

물론 급한 대로 완전히 토양을 정화하는 대신 ‘임시 조치’를 취하고 공원을 운영하는 방안도 있다. 2010년 미군이 반환한 부산의 캠프 하야리아(Camp Hialeah)가 대표적이다. 그해 캠프 하야리아는 시민에게 임시 개방됐다.

약 1시간 이내에 돌아볼 수 있는 코스를 2개 조성해 시민들을 맞았다. 자원봉사자는 8명을 배치해 시민들이 다른 구역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감독했다. 


윤석열 정부도 대통령 집무실 남쪽부터 국립중앙박물관 북쪽에 있는 ‘스포츠 필드’를 포함한 지역을 6월에 5일간 시범 개방한 다음 오는 9월 임시 개방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일부 지역의 토양을 보도블록이나 인조잔디 등으로 덮는 방식(피복)으로 위해성 저감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시민들이 체류하는 시간도 미국 기준에 따라 조정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안전 조치를 취했으니 토양 오염 정화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당분간은 사용할 만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피복被覆은 피복일 뿐 토양 정화와는 거리가 멀다. 말 그대로 ‘임시 개방’을 위한 ‘임시 대책’일 뿐이다. 

임시 개방했던 캠프 하야리아 역시 2011년 4월부터 2012년 8월까지 오염 정화를 거친 뒤 2014년 5월 부산시민공원으로 재탄생했다. 임시 개방은 캠프 하야리아가 반환된 해인 2010년에 이뤄졌지만 실질적으론 오염 정화 활동 1년4개월, 개장준비작업 3년여를 거친 후인 2014년에야 공원이 됐다. 

비슷한 기간이 걸린다고 가정한다면 용산 기지 역시 공식 개장하려면 2026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윤 대통령 생각대로 대통령 집무실 앞 공원 시대는 아름답게 펼쳐질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품고 이촌고가교를 지나 용산 공원이 될 미군 기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통령 집무실 가장 가까이 가려면 국립중앙박물관의 전망대로 올라가는 수밖에 없다. 스포츠 필드 일대가 눈에 들어왔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이는 사우스 포스트는 나무가 크게 자라 있어 제법 울창해 보였다. 윤 정부가 구상했던 용산 공원은 저렇게 나무와 풀이 자라는 ‘센트럴 파크’ 같은 모습이었을 거다. 하지만 임시 개장을 위해 토양 피복 과정을 거치면 청사진과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윤 정부는 5월 19일 ‘시범 개방’하겠다는 말을 하루만에 번복하고 6월 시범 개방을 다시 추진할 정도로 준비가 덜 된 모습을 보였다. 9월 대통령 집무실로 가는 길은 무엇으로 뒤덮일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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