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를 걷다❸ 용산 편
돌아오는 용산 미군 기지
고가도로 옆 청년주택
정비창 개발, 주택 공급에 숨통 틔울까

한강과 서울 도심 사이 용산구가 있다. 남산을 끼고 있는 데다 미군기지가 오랫동안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인지 용산은 서울에서 그나마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수십년간 ‘있어도 없는’ 땅이었던 미군기지는 2020년을 기점으로 반환이 시작됐고 정부는 일부 땅에 공공주택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공공만이 움직이는 건 아니다. 용산역을 중심으로는 민간이 개발하는 고층 빌딩이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고 있다. 역세권에 들어선 청년주택은 입주를 마치고 고층 주상복합에 녹아들었다. 국제업무지구에서 공공주택으로 이리저리 흔들리던 정비창 부지는 수년 만에 공사장 펜스의 문을 열기도 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있지만 없던 땅에서 은밀하게 찾아온 변화의 바람을 살펴봤다. ‘경제를 걷다’ 세번째 편이다.

미군기지를 옆에 둔 남영동은 최근 몇년간 부동산 거래가 늘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미군기지를 옆에 둔 남영동은 최근 몇년간 부동산 거래가 늘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서울에 땅이 없다고들 한다. 정말 그럴까. 아니다. 그린벨트를 푸는 등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는 땅은 없지 않다. 서울 한복판에도 그런 땅이 있다. 바로 ‘용산’이다. 2020년 미군이 반환한 용산미군기지 토지만 15만3083㎡(약 4만6000평)에 이른다.[※참고: 미군은 2016년까지 평택으로 미군기지를 이전하려 했지만 공사 지연 등으로 이전이 늦어져 2020년 본격적으로 주한 미군기지 반환이 시작됐다.]

여기에 한차례 개발 계획이 무산된 용산 정비창 부지 51만㎡(약 15만평)도 복합 개발을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용산역 앞도 재개발이 한창이다. 낮은 층수의 상가는 사라지고 고층 빌딩이 매일 올라가고 있다. 서울 중심에 있는 커다란 빈 땅. 반환된 미군 기지부터 용산역 정비창 부지까지 걸으며 변화를 살펴보기로 했다.

■ 첫걸음-작은 가게들 = 7월 13일. 용산구 갈월동 지하차도를 지나 미군기지(메인 포스트) 쪽으로 향했다. 서울역에서 한강으로 뻗어나가는 한강대로를 건너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니 분위기가 바뀐다. 서울 중심이라는 걸 믿기 어려울 정도로 고요해진다. 남영동이다.

한강대로와 미군기지 사이에 자리한 남영동은 크기가 6만5500㎡(약 1만9837평)로 작은 편이다. 남영동 옆에 자리한 미군기지 메인 포스트는 정확한 시점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반환이 예정된 곳이다. 현재로선 공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성동구에 있는 서울숲보다 큰 녹지가 탄생한다. 모든 사람의 접근이 차단됐던 땅이 모든 사람에게 개방된다는 얘기다.

이런 계획이 남영동의 부동산 거래에도 영향을 미쳤을까. 2014년부터 2021년 6월까지 남영동에서 거래된 부동산 이력을 살펴봤다. 일단 토지 용도부터 특이한 점이 눈에 띄었다. 남영동을 이루는 토지는 ▲한강대로에 붙어 있는 ‘좁고 가느다란’ 일반상업지역 ▲뒤편으로 이어지는 제2종일반주거지역 두 종류다.

그중 대로변에 있는 일반상업지역은 남영동 전체 면적의 10%에도 못 미친다. 저층상가들이 오밀조밀하게 붙어있어 ‘꽤 큰 상권’이란 착시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실제로 2014~2021년 6월 남영동의 일반상업지역에서 거래된 건물은 대부분 저층상가였다. 최근으로 올수록 거래는 더욱 빈번해졌다.

코로나19 국면에서도 장사가 잘돼서 거래가 활발했던 것 같진 않다. 코로나19로 휴업했거나 이미 문을 닫은 상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 둘째 걸음-낡은 주택 = 남영동의 일반상업지역을 빠져나와 제2종일반주거지역으로 들어가니 1~2층짜리 단독주택이 여유를 두고 널찍하게 모여 있다. 높은 건물은 없다. 미군기지가 둥지를 틀고 있어 개발이 어려운 데다 토지 용도도 제2종일반주거지역(용적률 200%)이기 때문일 것이다.

미군이 떠나 공원이 된다고 해도 토지 개발이 활발해질지는 미지수다. 2016년 서울시가 지정한 주요산 주변 경관관리계획에 포함돼 6층 이상 건축물을 만들 때는 허가가 필요해서다. 인근에 제법 많은 스테이크 가게가 둥지를 틀었지만 나머지 건물들은 시간이 멈춰있는 듯했다.


최근 5년간 주인이 바뀐 다가구주택 중에선 사람이 살지 않거나 수리 없이 그대로 방치된 곳이 많았다. 가까이 가보니 우편함은 꽉 차 있었고, 수리되지 않은 벽도 눈에 띄었다. 그래서인지 골목은 조용했다. 사무실로 새롭게 단장해 미군 기지를 마주하고 있는 주택도 눈에 띄었지만,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 노후 주택들은 무슨 때를 기다리는 걸까.

■ 셋째 발걸음-사라질 캠프킴 = 남영동의 남쪽 끝에서 다시 조금 올라와 횡단보도를 건넜다. 남영동의 건너편에는 또다른 미국의 땅 ‘캠프킴’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용산 미군기지와 캠프킴을 연결하는 건널목이 없어 캠프킴으로 가려면 남영역이나 삼각지역 인근에서 접근하는 수밖에 없다. 캠프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고층 주상복합빌딩까지 함께 보면 도심 속에 뚝 떨어진 섬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질감이 느껴지는 캠프킴의 풍경도 몇년 뒤에는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고층 빌딩 사이에 잠긴 섬 2015년 국토교통부는 캠프킴을 ‘복합 용도’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애초 용적률은 800%였다. 캠프킴 바로 옆에 있는 ‘용산파크자이’ 단지의 용적률이 789%라는 걸 감안하면 엇비슷한 크기의 고층 빌딩이 들어서는 거였다.

■ 넷째 발걸음-청년주택 속으로 = 최근엔 이 ‘삼각형’ 모양의 일반상업지역이 더 넓어졌다. 남쪽으로 작게 툭 튀어나온 일반상업지역이 추가되면서다. 새롭게 덧붙여진 곳은 역세권 청년주택 자리다. 대로변에서 조금 안쪽으로 자리잡고 있어 단지로 진입하는 입구는 숨어 있다.

지하철 4ㆍ6호선 삼각지역 모퉁이에서 골목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모퉁이에 있던 오래된 고깃집은 문을 닫고 한남동에서 인기를 끌었던 피자집이 대신 자리를 잡았다. 저녁이 되기 전부터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역세권 청년주택을 두고 지역 주민들의 찬반이 거셌지만 청년들이 들어오면서 주변 상권이 활성화할 것이란 예상은 틀리지 않은 듯했다.

용산구는 고가차도를 흔히 만날 수 있는 지역이다. 지상 철도가 있어 용산구의 남쪽까지 길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삼각지 고가차도도 그중 하나다. 보통 고가차도는 주변 분위기를 어둡게 만든다. 고가차도 아래가 그늘이 질 수밖에 없어서다. 보행이 어려워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고가차도 주변 지역에서 상권이 발달하는 건 쉽지 않다.

고가차도 그늘 밝힌 청년주택

하지만 고가차도와 1차선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역세권 청년주택 단지의 분위기는 조금 달랐다. 골목을 지나니 작은 광장처럼 보이는 입구에서 청년들과 신혼부부들이 오고 가는 광경이 보였다. 밀키트 가게와 치킨집처럼 1~2인 가구가 선호할 만한 상가도 1층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역세권 청년주택의 부지는 긴 직사각형 모양이다. 도로나 지하철역과 가까운 쪽에 있는 상가는 사람이 많이 오고 갔지만 철도 옆이나 단지 안쪽으로 갈수록 빈 상가도 눈에 띄었다. 역세권 청년주택의 ‘주택’은 8년 동안 의무적으로 임대해야 한다.

일반상업지역의 끄트머리에 자리한 역세권 청년주택으로 고가차도의 분위기도 바뀌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일반상업지역의 끄트머리에 자리한 역세권 청년주택으로 고가차도의 분위기도 바뀌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전체의 약 20%는 공공임대주택으로 시세의 절반가량으로 공급되고 나머지 약 80%의 주택은 민간 임대주택으로 시세의 90% 수준으로 공급된다. 하지만 상가는 다르다. 역세권 청년주택에 만들어진 스트리트형 상가는 민간에 분양됐다. 빈 상가는 유리벽 곳곳에 ‘임대’를 알리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유동인구를 늘리려는 시도도 눈에 띄었다. 역세권 청년주택과 철도 사이에 있는 좁은 토지에 공원을 만들어달라는 서명 운동이 진행 중이었다. 공공이 소유한 자투리땅이었다. 서울시와 용산구는 “해당 토지와 관련해 문의가 들어온 것도 계획된 것도 없다”고 설명했다. 창고처럼 쓰이는 이 자투리땅은 변모할 수 있을까.

■다섯째 발걸음-화랑이 사라진 자리 = 역세권 청년주택을 빠져나와 한강대로를 따라 다시 걸었다. 삼각지역부터 용산역까지는 수십년 된 화랑들이 대로변을 지키고 서있다. 그러나 이곳도 차츰 변하고 있었다.

화랑이 사라진 자리에 간판 없는 식당과 술집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남영동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조금 더 걸었다. 다시 높은 빌딩이 보이기 시작했다. 용산역이다.

상가 권리금 등으로 철거민과 서울시 간 복잡한 갈등이 터져 나왔던 국제빌딩주변 4구역은 이제 주상복합단지인 용산센트럴파크해링턴스퀘어가 됐다. 한강대로 가까이에 남아 있던 4층 이하의 노후 상가들도 철거가 진행되는 중이었다. 건물이 사라지고 시야가 트이자 최근 둥지를 튼 엔터테인먼트 회사 하이브의 사옥도 보였다.

그 인근에서도 공사가 한창이었다. 용산역 반경 500m 안쪽으로 아모레퍼시픽 사옥, 용산센트럴파크해링턴스퀘어의 오피스동, 하이브까지 업무용 빌딩들과 래미안용산더센트럴, 용산푸르지오써밋 등 주상복합 아파트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말 그대로 주거와 업무가 긴밀하게 결합한 지역이 만들어진 셈이다.

일찍 준공된 주상복합단지의 1층 상가 중엔 빈 것도 흔했다. 이름처럼 미군기지와 용산역을 잇는 공원 ‘센트럴파크’가 생기면 상권도 활성화될 수 있을까.

■여섯째 발걸음-정비창의 여름 = 이뿐만이 아니다. 용산역의 남쪽에는 거대한 정비창 부지가 있다. 남영동의 옆자리를 미군 기지가 차지해 거대한 벽이 됐듯, 이곳 역시 거대한 철도 정비창 부지가 흰색 펜스로 둘러진 채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남영동과 차이점도 있었다.

이 지역은 용산역 정비창 전면 구역으로 묶여 이제 재개발 조합이 설립됐다. 제2종일반주거지역이었던 남영동과 다르게 철도 옆 한강로동은 준주거지역으로 건축 규제도 비교적 느슨하다. 이곳도 최근 몇년간 도시 한옥을 뜯어고친 트렌디한 음식점이나 술집들이 파고들어 왔다. 거리를 걷는 동안에도 빈 모텔이나 오래된 사무실을 리모델링하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첫 임기였던 2006~2011년 용산역 정비창 부지는 국제업무지구가 될 운명이었다. 2009년 용산국제업무지구로 구역이 지정됐고 회사도 만들어졌지만 4년 만에 계획은 고꾸라졌다. 시행사의 자금 조달 능력이 부실했기 때문이었다. 정비창 부지의 주인이었던 코레일도 마음을 바꿔 다시 땅을 가져왔다.

이후 표류하던 사업은 국토교통부가 ‘공공주택부지’로 정비창 부지를 점찍으며 정리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올해 오 시장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공공주택’ 대신 ‘국제업무지구’ 계획이 다시 시도되는 것 아니냐는 궁금증이 일었다. 서울시는 손사래를 쳤다. 금융ㆍ업무ㆍ숙박ㆍ주거 기능을 복합적으로 넣겠다는 계획이 있고 1만 가구의 공공주택을 조성하겠다는 국토부의 결정에도 따를 것이라는 얘기였다.

용산역 정비창은 공공주택과 업무시설 등이 복합 개발될 가능성이 높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용산역 정비창은 공공주택과 업무시설 등이 복합 개발될 가능성이 높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물론 그 시점은 알 수 없다. 용산을 가르는 거대한 땅 정비창 부지를 가린 펜스를 따라 백빈건널목을 지났다. 이촌 고가차도에 오르면 가려져 있던 정비창 부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수년째 방치된 땅에서 2020년부터 시작된 토지 정화 활동은 이날도 바쁘게 이뤄지고 있었다. 크게 자란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 있었다.

이촌 고가차도를 따라 내려왔다. 남쪽으로는 한강을 마주하고 병풍처럼 늘어선 아파트 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정비창 부지와 아파트 단지 사이 낮은 층수의 다세대 주택과 단독 주택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데다 노후 주택이 많아 임대 매물도 심심찮게 나오는 곳이었다. 이곳 역시 1년 전과 비교하면 전셋값이 상당히 오른 상태였다. 동네의 뒤편으로는 개발하는 땅과 개발될 땅이 숱하다. 그나마 국가가 사용처를 고민할 수 있는 땅들이다. 이 등 뒤에 숨은 땅에서 무엇을 이뤄낼 수 있을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