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 파업 속 놓치지 말아야 할 이슈 
안전운임제는 왜 번번이 뒤로 밀렸나 
정권 교체기 교통연구원 보고서 어디로 갔나

1조6000억원. 화물연대 노조의 파업으로 발생한 생산ㆍ출하ㆍ수출 피해액 추산 규모다. 화물연대 노조가 파업을 통해 정부와 협상한 것을 두고 ‘또다시 떼법이 통했다’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이번 파업의 씨앗이 정부가 6년 동안 지키지 않은 약속 때문이라는 걸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화물연대의 파업으로 약 1조6000억원의 생산·출하·수출 차질이 발생했다.[사진=뉴시스]
화물연대의 파업으로 약 1조6000억원의 생산·출하·수출 차질이 발생했다.[사진=뉴시스]

화물연대의 총파업이 8일 만에 막을 내렸다. 14일 밤 정부(국토교통부)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이하 화물연대 노조)가 5차례의 협상 끝에 타협점을 찾았다.

이날 양측이 합의한 내용은 4가지다. ▲국회 원구성 완료 즉시 화물차 안전운임제 시행 성과 국회 보고 ▲화물차 안전운임제(컨테이너ㆍ시멘트) 지속 추진, 품목 확대 논의 ▲화물차주 유류비 부담 완화 위한 유가보조금 제도 확대 검토와 운송료 합리화 지원ㆍ협력 ▲화물연대본부의 즉시 현업 복귀 등이다. 

쉽게 말해 기존의 안전운임제를 유지하면서 안전운임제 확대를 논의하자는 정도에서 합의점을 찾은 거다.[※참고: 아직 화물연대의 주장이 온전히 받아들여진 건 아니다. 따라서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 과정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국민이 적지 않다. “무더기로 떼만 쓰면 주장이 관철되는 것이냐” “국가경제를 볼모로 자신들의 이익을 취해도 되는 것이냐” “이제부터 화물차의 불법주차나 불법도로주행은 무조건 신고하겠다”는 등 화물연대 노조를 향한 비난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여야 정치권이 합의한 안전운임제

이해 못 할 비난은 아니다. 화물연대 노조의 파업으로 국가경제가 큰 손실을 봤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파업이 단행된 7~12일 6일간 자동차ㆍ철강ㆍ석유화학ㆍ시멘트 등 분야에서 1조6000억여원의 생산ㆍ출하ㆍ수출 차질이 발생했다.

이런 차질에서 기인하는 간접적 피해도 발생할 수밖에 없어 피해액은 더 클 것이란 분석이 많다. 고유가로 화물노동자만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아니고, 대외경제 여건까지 나쁜 상황이란 점을 감안하면 좋은 말이 나올 리 없다. 

파업 과정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들이 비난을 더 키운 면도 없지 않다. 화물연대 노조 파업에 참여한 한 화물노동자는 파업과는 전혀 무관한 음식물쓰레기 수거차가 정차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차 유리를 각목으로 내려쳐 파손했다. 

일부 노동자는 대체인력으로 투입된 화물차를 몸이나 차량 등으로 막아 업무를 방해하는가 하면 업무 방해를 제지하려는 경찰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구시대적 노동운동 행태가 판을 쳤다는 거다. 

문제는 ‘국가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 ‘폭력적 노동운동을 펼쳤다’ 등의 이유만으로 화물연대 노조의 주장까지 옳지 못한 것으로 몰아세워선 곤란하다는 점이다. 화물연대 노조가 주장하는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는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는 의제임이 분명해서다. 

화물운송 노동자를 둘러싼 운임 문제는 최근 몇년 사이에 불거진 게 아니다. 20년도 더 된 문제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2년 10월 화물연대 노조의 출범 계기가 화물운임 문제와 무관하지 않았다. 

당시 유가 상승으로 인해 화물노동자들의 불만이 수면으로 떠올라 정부 차원에서 단기 유가보조금을 지급했는데, 그것만으론 문제가 해소되지 않았다. 화주들이 단가를 후려치면 유가보조금을 받아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은 탓이었다. 

2003년 4월 생활고를 비관한 화물노동자의 자살과 화물연대 노조의 파업은 그렇게 시작됐다. 하지만 해결된 건 없었다. 이를 기점으로 화물연대 노조는 표준운임제의 도입을 요구했다. 국제교통포럼(ITF)을 비롯한 전문가집단의 도움을 받아 호주 등지에서 표준운임제를 운영한다는 사실을 깨친 후였다. 참여정부에서 시작된 화물운송 문제는 이명박 정부에도 이어졌다. 

2008년 5월 화물연대 노조는 ‘운송료 현실화’를 내걸고 다시 파업을 결행했다. 화물연대 노조는 “화물운임 단가가 낮아 화물노동자들이 과적이나 과속을 일삼게 되고, 그렇다 보니 사고가 빈번히 발생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명박 정부는 운송료 현실화를 위해 시범사업을 해본 다음 법제화하겠다고 했지만, 정권 내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운송료 문제는 달라진 게 없었다. 다만, 화물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더 커진 게 의미 있는 변화였다. 택배시장이 커지고 화물노동자가 더 늘어나면서 “열악한 근무조건이 과적과 졸음운전을 유발한다”는 주장이 이전보다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화물연대 노조의 파업은 끝났지만, 결론 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사진=뉴시스]
화물연대 노조의 파업은 끝났지만, 결론 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사진=뉴시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대안은 사회적 분위기를 담지 못했다. 정부는 2016년 9월 ‘화물운송시장 발전방안’을 내놨는데, 골자는 2004년 도입된 영업용 화물차 허가제를 폐지한다는 거였다. 기업(화주)들이 맘대로 영업용 화물차를 늘릴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거나 다름없었다.

화물연대 노조는 그해 10월 다시 파업에 들어갔고, 두달 후인 12월 국토교통부가 새로운 대안을 내놨다. “(화주에게) 강제성이 없는 참고원가제를 도입하고, 1년 후엔 강제성이 있는 안전운임제를 도입하겠다.” 

이 대안은 여야 합의를 거쳐 타결됐다. 따라서 어떤 정부가 들어서느냐와 관계없이 안전운임제 도입을 위한 법만 만들면 됐다. 그런데 2018년 정부와 정치권은 또다시 말을 바꿨다. 그해 3월 화물차운수사업법을 개정하면서 안전운임제 적용 대상을 컨테이너와 시멘트 운송에 한정했다. 게다가 3년 후면 사라지는 ‘일몰법’ 형식을 취해 갈등의 불씨를 남겨놨다. 

화물차 노조가 반발하자 정부는 ‘일몰 1년’ 전에 안전운임제의 성과 보고서를 만들어 일몰의 연장이나 제도 확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지만, 이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일례로, 한국교통연구원이 올해 2월 ‘화물차 안전운임제 성과분석 및 활성화 방안 연구’ 최종보고서를 국토부에 제출했지만, 국토부는 이를 국회에 보고하지 않았다. 2월이면 문재인 정부가 끝나가는 때로, 어떤 정부가 들어설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정치적 변수 탓에 안전운임제의 일몰 연장 여부는 논의되지 않았고, 파업의 계기가 됐다.[※참고: 한국교통연구원이 제출한 보고서에는 ‘안전운임제 시행 후 화물차의 교통사고가 감소하고, 화물노동자의 월 노동시간이 줄어 근로조건이 개선돼 일몰제를 폐지하고 안전운임제를 지속해야 한다’는 분석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과정을 살펴보면 화물연대 노조의 파업은 정부와 정치권의 약속 파기에서 비롯됐다. 그런데도 정부든 여야 정치권이든 모든 책임을 노조에 떠넘긴다. 문제를 해결했다는 자찬만 있을 뿐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이게 정상적인 일일까. 

정부와 정치권, 이제 약속 지켜야

일몰제 폐지를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약속을 했고, 긍정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나와서다. “정부가 개입할 문제 아니다”란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나 “우리는 노조의 교섭 대상이 아니다”란 국토부의 주장이 낯설게 들리는 이유다.

김상희 고려대(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문재인 정부에서 일몰제 폐지를 적극 검토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아 문제가 불거진 것은 맞다”면서 주장을 이어나갔다. “교통연구원의 연구결과가 아니더라도 안전운임제의 효과를 입증한 자료들은 적지 않다. 그런데도 정부가 약속을 번번이 어기니까 노조도 안전운임제를 더이상 늦출 수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정부와 화물차 노조는 일단 타협점을 찾았다. 하지만 결론난 건 아무것도 없다.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타협은 또다시 갈등의 불씨로 변할 거다. 노조의 불법파업이나 폭력에 기반한 행위는 근절돼야 한다. 그렇다고 노조의 주장까지 논의의 장場 밖으로 던져버려선 안 된다. 약속을 지키는 건 정부와 정치권의 책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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