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ovie] 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영화 ‘브이 포 벤데타’는 분명 ‘복수극’이지만 통상적인 복수 드라마들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중국 무협영화처럼 주인공이 무공을 갈고닦아 악의 최고봉을 화끈하게 짓이겨버리는 식의 복수극이 아니라 대단히 절제되고 승화된 복수극이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는 절제되고 승화된 복수극을 보여준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영화 ‘브이 포 벤데타’는 절제되고 승화된 복수극을 보여준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영화 ‘브이 포 벤데타’는 알렉산더 뒤마의 소설 「몬테 크리스토 백작」을 닮았다. 알렉산더 뒤마의 후손들이 혹시 ‘표절’이라고 꼬집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이 영화의 주인공 ‘V’가 그의 아지트에서 이비(Evey·나탈리 포트먼)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의 TV 화면에는 ‘몬테 크리스토 백작’ 흑백영화가 돌아가고 있다.

몬테 크리스토 백작의 주인공 에드먼드 단테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은 원수와 최후의 결투를 벌이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 V는 그의 아지트에서 그 영화를 몇번이고 되돌려보면서 절제된 복수의 의지를 다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억울하고 불의하고 부당한 체포를 당해 끔찍한 죽음과도 같은 수감생활 끝에 극적으로 탈출한 선원 에드먼드 단테는 ‘몬테 크리스토 백작’이란 새로운 신분의 ‘가면’을 쓰고 복수에 나선다. 마찬가지로 V는 ‘가이 포크스’라는 새로운 정체성으로 거듭 태어나 복수에 나선다.

또 다른 공통점은 에드먼드 단테와 V는 역경 속에서 오랜 수련을 통해 모두 ‘신사紳士’로 거듭 태어나는 존재라는 점이다. ‘신사’란 행동이 점잖고 예의 바르며 교양이 있는 남자를 뜻한다.

에드먼드 단테는 절해고도의 지하감옥에서 신부이자 학자인 파리아(Faria) 신부를 만나 10년간 종교, 역사, 철학, 인문학부터 군사기술과 검투까지 사사받으며 원한에 사로잡혔던 한낱 선원에서 진정한 전사이자 신사로 거듭난다. 

그 수련 과정을 통해 단테의 개인적인 원한도 사회적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것으로 승화한다. 선원 단테의 복수극이 아니라 신사 몬테 크리스토 백작의 신사적인 복수극으로 승화한다.

V가 쓴 가이 포크스 가면은 온화하고 관대하게 웃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V가 쓴 가이 포크스 가면은 온화하고 관대하게 웃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브이 포 벤데타’의 V 역시 10년간 수련의 시간을 거치면서 역사와 인문학 분야에서 경지에 오른다. 자신을 수용소에 가둔 포악한 권력을 향한 분노를 단순한 ‘보복’이 아닌 ‘정의구현’을 위한 ‘복수’로 승화한다.

수용소에서 얼굴이 모두 녹아버리는 상처를 입고 탈출한 V도 단순한 복수의 화신이 아닌 ‘신사’로 돌아온다. 그의 아지트는 도서관과 미술관, 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이 세상 모든 지식과 예술, 역사를 축적해 놨다. 

V는 이비에게 자신의 ‘대의’를 알렉산더 뒤마와 셰익스피어의 희곡 대사 속의 세상의 모순,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가 읊은 인간성의 절망적 타락과 그 회복을 바라는 희망으로 풀어 들려준다. 

V의 ‘핏빛 복수’가 단순한 사감私感 충만한 ‘사적인 보복’이 아닌 ‘대의’를 위한 것임을 나타내는 장치가 바로 400년 전 자유를 향한 투쟁가였던 가이 포크스의 마스크인 셈이다. 

V는 가이 포크스의 가면으로 자신의 ‘사적’인 모든 원한을 묻어버린다. V가 쓰고 있는 가이 포크스의 가면은 분노에 찬 얼굴이 아니라 온화하고 관대하게 웃고 있다. 가장 전형적인 400년 전 영국 신사의 얼굴이다. V의 복수는 얼굴이 녹아버린 한 수감자의 보복이 아니라 미래사회를 위한 가이 포크스라는 영국신사의 신사적인 복수극으로 승화된다.

‘몬테 크리스토 백작’이나 ‘브이 포 벤데타’가 모두 주인공들의 ‘핏빛 복수’를 그리고 있지만 관객들이 그들의 복수에 공감하고 박수를 보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의 복수가 사적인 원한과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생기는 걸 막기 위한 ‘대의’에 복무하는 것이어서다.

V의 복수는 자신의 얼굴을 끝끝내 가이 포크스의 가면 속에 감추고 적에게 사적인 원한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한마디로 절제되고 ‘신사적인 복수’다.

1914년 개화기에 출판된 ‘신사연구’라는 문헌에는 신사의 정의가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식덕識德을 겸비한 사람을 이름하니, 사회의 중축中軸이 돼 그 사회를 선의善意의 진보進步로 인도하는 모범적 인물을 뜻한다.” 

민생과 권력자의 전직前職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사진=뉴시스]
민생과 권력자의 전직前職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사진=뉴시스]

우리는 한 나라의 총리나 대통령이라면 모두 그에게 ‘그 사회를 지식과 덕망을 갖추고 선의의 진보로 인도하는’ 최고의 언행을 갖춘 최고의 신사이기를 기대한다. 무술 경연대회의 최종승자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출신이 국회의원이든, 군인이든, 장사치든 변호사나 판검사가 됐든 그가 총리나 대통령직에 올랐다면 우리는 더 이상 그에게서 국회의원, 군인의 모습이나 장사치, 판검사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의 모든 과거를 V처럼 온화한 가이 포크스의 가면 뒤에 묻어두고, 사적인 인연과 감정을 배제한 이 나라 최고의 신사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그래야 선의의 개혁으로 인도할 수 있지 않겠는가.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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