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FT 시장에 등장한 신윤복
기존 NFT 판매방식 답습해
문화재 대하는 올바른 방식 맞을까

# 신윤복의 풍속화 화첩 ‘혜원전신첩’이 논란에 휩싸였다.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에서다. 혜원전신첩을 소유한 간송미술관이 화첩 속 그림들을 NFT로 만들어 대중에게 판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업계 안팎에선 ‘새로운 접근방식이다’ ‘상술이다’ 등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 국보의 NFT화를 둘러싼 논쟁은 간송미술관이 지난해 발행한 ‘훈민정음 해례본’ NFT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논쟁이 더 날카로운 이유는 혜원전신첩 NFT의 발행·판매 방식에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고화질로 촬영한 사진에 고유번호(numbering)를 삽입하는 방식으로 총 100개의 NFT를 발행한 반면, 혜원전신첩 NFT엔 ‘쪼개기’ ‘뽑기’ 등 상업적 NFT의 방식을 모두 적용했다. ‘지루한 원숭이들의 요트클럽(BAYC)’ ‘크립토펑크(CryptoPunks)’의 그림처럼 말이다.

# 이 때문인지 미술 업계 내부에서도 ‘혜원전신첩 원본의 가치가 훼손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신윤복의 그림이 어떤 과정을 거쳐 NFT 시장에 올랐는지 꼼꼼히 체크해봤다.

신윤복의 그림을 NFT로 만들어 파는 간송미술관의 행보를 두고 관련 업계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신윤복의 단오풍정.[사진=간송미술관 제공]
신윤복의 그림을 NFT로 만들어 파는 간송미술관의 행보를 두고 관련 업계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신윤복의 단오풍정.[사진=간송미술관 제공]

신윤복. 여성을 대담하면서도 매혹적으로 그려낸 풍속화로 유명했던, 조선 후기 3대 풍속화가(김홍도·김득신) 중 한명입니다. 가장 유명한 건 그가 그린 그림들을 모아놓은 풍속화 화첩 ‘혜원전신첩’으로, 현재 국보 135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미술에 관심이 없는 이들도 빨간 치마를 입은 여인이 그네를 타는 것을 그린 신윤복의 ‘단오풍정’을 본 적이 있을 겁니다. 단오풍정도 ‘혜원전신첩’에 수록된 그림 중 하나죠.

이런 신윤복이 최근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혜원전신첩을 소장하고 있는 간송미술관이 이를 NFT(대체불가능한 토큰·Non Fungible Token)로 만들어 판매하겠다고 밝히면서입니다.

전인건 간송미술관 소장은 “신윤복의 아름다운 그림들을 기반으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아름다운 옛 그림들을 즐길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획했다”면서 “이번 프로젝트로 NFT를 통해 시간·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커뮤니티를 만듦으로써 간송미술관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제작 의의를 밝혔습니다.

[※참고: NFT는 블록체인 기술로 만든 디지털 인증서로, 디지털 사진·게임 아이템·캐릭터 등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수단으로 쓰입니다. NFT마다 고윳값을 갖고 있어 거래 내역을 위변조하거나 해킹하는 게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NFT 시장에 선 신윤복

간송미술관이 국보를 NFT 방식으로 발행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해 8월 간송미술관은 한글의 창제 원리를 담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NFT로 만들어 판매한 바 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고화질로 촬영한 사진에 고유번호(numbering)를 삽입하는 방식으로 총 100개의 NFT를 발행했죠.

각 NFT에는 1억원이란 비싼 가격이 매겨졌지만, 국보 70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훈민정음 해례본의 NFT는 공개되자마자 업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습니다. 하지만 국보를 NFT로 발행한 것을 두고 업계에선 갑론을박이 일었습니다. 소유권이 간송미술관에 있다곤 하지만 ‘나라의 보물’을 NFT로 만들어도 괜찮으냐는 게 논쟁의 골자였죠.

마찬가지로 혜원전신첩의 NFT화 계획을 두고도 같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혜원전신첩을 둘러싼 논쟁은 더 날카롭습니다. 혜원전신첩의 NFT는 훈민정음 해례본 NFT와 달리 ‘상업적 성격’이 훨씬 더 짙기 때문입니다. 그 논쟁의 근거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긍정론 : 새로운 접근방식 = 긍정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NFT가 ‘대중이 문화재에 접근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이란 논리를 펼칩니다. 박물관에 잠들어 있는 문화재를 디지털화해 누구나 쉽게 향유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간송미술관의 NFT 프로젝트가 긍정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배운철 한국NFT콘텐츠협회 위원장은 “NFT는 사진은 물론 애니메이션·게임 등 다양한 장르로 확장이 가능한 만큼 문화재를 경쟁력 있는 지식재산권(IP)으로 키워나갈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간송미술관은 신윤복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3D화하는 방식을 사용해 2차 창작물을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죠.

간송미술관 관계자는 “2차·3차 저작물들이 계속 재생산되면서 커뮤니티가 발전해나갈 수 있도록 기획하고 있다”면서 “후손들에게 우리 문화재가 가진 우리만의 미감각과 문화를 알리고자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부정론 : 뻔한 상술 = 다른 한쪽에선 ‘문화재가 상술의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반론을 펼칩니다. 문화재가 영리가 목적인 NFT 시장에 물들어 자칫 ‘원본의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그럼 간송미술관은 신윤복의 작품을 어떻게 NFT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을까요? 혜원전신첩에 수록된 또다른 작품인 ‘주유청강’의 예를 들면서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간송미술관은 4억만 화소의 초정밀 촬영으로 주유청강을 촬영했습니다. 그다음, 사진을 전체 그림과 인물 전신·반신·머리·얼굴·오브젝트(꽃·나무 등의 사물) 등 수십개의 조각으로 나눴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주유청강에선 총 38개의 조각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간송미술관은 이 조각들을 담을 액자 형태의 프레임을 추가하고 ▲프레임 형태 2종(사각형·원형) ▲프레임 색상 5종 ▲프레임에 쓰인 폰트 3종 등 프레임에 변화를 줘 NFT 수량을 늘렸습니다. 경우의 수를 모두 따지면 총 30가지의 프레임이 만들어집니다.

이 프레임 수(30개)와 주유청강 조각(38개)을 조합하면 총 1140개의 서로 다른 주유청강 NFT가 만들어집니다. 간송미술관은 이를 개당 25만원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여러 부위를 조합해 하나의 콘텐츠를 만드는 제작방식은 NFT 업계에선 이미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수천개의 콘텐츠를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데다 각 콘텐츠가 중복되는 일도 없으니까요. NFT 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지루한 원숭이들의 요트클럽(BAYC)’ ‘크립토펑크(CryptoPunks)’의 그림들도 이런 방식으로 탄생했죠.

하지만 혜원전신첩 같은 국보급 문화재에 이런 방식을 사용해도 괜찮을지는 의문입니다. 그림이 조각조각으로 쪼개진 데다, 프레임 색상과 폰트 등에 간송미술관의 해석이 더해지면서 원본의 가치가 달라질 수 있어서입니다.

그럼 간송미술관은 왜 신윤복의 그림을 조각으로 쪼개서 NFT로 만들었을까요? 훈민정음 해례본 NFT 처럼 그림 한장을 통째로 사용해 고유번호를 붙여 만드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신윤복 NFT 제작을 맡은 간송미술관의 협력사 ‘아톰릭스랩’의 배경일 부사장은 “신윤복의 그림을 널리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최대한 많이 NFT를 발행하는 것에 중점을 둬 제작했다”면서 “그러려면 그림을 조각 내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고 답했습니다. 그림을 조각내는 방식으로 가짓수를 늘려 사람들이 신윤복 NFT를 많이 구매하도록 유도했다는 겁니다.

구매자가 만족할 때까지…

이런 의도는 신윤복 NFT의 구매방식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간송미술관은 신윤복 그림의 NFT를 발행하면서 구매자에게 무작위로 그림 조각을 지정하는 ‘랜덤 민팅(random minting)’ 방식을 택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구매자는 자신이 원하는 특정 그림 조각을 구매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참고: 민팅은 화폐를 주조하는 민트(mint)에서 파생된 용어로, 그림이나 영상 등 디지털 자산의 NFT를 생성하는 것을 뜻합니다.]

결국 구매자는 자신이 만족할 만한 조각이 담긴 NFT를 얻을 때까지 계속해서 구매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NFT 구매에 ‘뽑기 요소’가 들어있는 셈입니다. 이는 1인당 구매수량을 늘리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선 효과적이지만, “문화재를 상업적 도구로 쓰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물론 간송미술관 측도 이같은 판매방식의 맹점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배 부사장의 설명을 들어보시죠.

“처음엔 사람들이 원하는 그림 조각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판매 방식을 고려했다. 하지만 여기엔 한가지 풀기 힘든 문제가 있었다. 특정 조각에 수요가 쏠린다는 점이었다. 그러면 조각마다 값을 달리해야 하는데, 수많은 NFT의 가격에 차등을 두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뽑기 방식을 원용한 것이다. 현재 신윤복 작품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는 또다른 판매 방법을 고민 중이다.”

간송미술관 관계자도 “NFT를 구매한 고객들에겐 전체 그림을 감상할 수 있도록 원본과 색 톤·크기가 흡사한 복제품 ‘영인본影印本’을 배송해 드리고 있고 원본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홈페이지도 제작 중이다”면서 “대중이 신윤복의 아름다운 작품을 경험하고 즐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간송미술관은 지난 6월 판매를 시작한 단오풍정 NFT 355개를 모두 파는 데 성공했습니다. 지금은 주유청강 NFT를 판매 중이며, 다른 혜원전신첩 그림들도 순차적으로 NFT로 만들 계획입니다. 그림을 조각으로 나누어 랜덤 민팅으로 판매하는 방식을 유지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간송미술관은 “정해진 건 없다”고 답했습니다.

물론 간송미술관의 NFT 프로젝트가 대중의 관심을 문화재로 돌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선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조각 판매, 랜덤 민팅 등 판매 효율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춘 판매방식은 ‘상술 논란’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습니다.

김선곤 아트데이터 분석가(미술전문기자)는 “미술사적으로 깊은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를 가진 고미술 작품을 대할 땐 그 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면서 “간송미술관이 어떤 방식으로 혜원전신첩을 NFT화해 판매했는지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시죠. “예술작품엔 그 자체가 가진 ‘힘’이 있다. 조각을 내지 않고 전체 그림에 고유번호를 부여하는 식으로 NFT를 만들었어도 수요가 높았을 것이다. 그러면 실제 미술품을 거래하는 것과 유사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어 거래 자체가 활발하지 않은 고古미술작품의 판매 데이터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혜원전신첩 NFT는 여러 지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그림을 조각으로 쪼개고 여러 해석을 넣어 고미술 작품의 원본을 흔들었다. NFT 시장과미술시장 양쪽에서 좋은 선례로 남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 셈이다.”

NFT는 이제 피할 수 없는 흐름일지 모릅니다. 세계 미술시장에서도 NFT를 속속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보를 맘대로 쪼개 NFT로 만든 뒤 ‘뽑기 방식’으로 판매하는 것까지 수용해야 할지 의문입니다. 어쩌면 세상은 이를 ‘지나친 상술’이라고 꼬집을지 모릅니다.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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