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기사취조단 1기 ❺ NFT 1편
국보 NFT 판매하는 간송미술관
업계선 찬반양론 펼쳐져
참신한 접근 평가 있지만
원작 훼손한다는 반론 많아
신윤복 NFT에 숨은 문제

간송미술관은 신윤복의 작품 ‘주유청강’을 NFT화해 대중에게 판매했다.[사진=간송미술관 제공]
간송미술관은 신윤복의 작품 ‘주유청강’을 NFT화해 대중에게 판매했다.[사진=간송미술관 제공]

# ‘옛것과 새것의 만남’. 지난해 NFT 시장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슈가 있었다. 조선시대 풍속화의 거장 신윤복의 그림에 NFT 기술을 적용하겠다는 간송미술관의 프로젝트였다.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였기 때문인지 프로젝트의 ‘첫 단추’였던 단오풍정은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완판됐고, 두번째 NFT인 주유청강도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 하지만 이 프로젝트가 NFT 업계의 주목을 받은 게 국보를 NFT로 만들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국보 등 문화재를 다루는 방식이 과연 적절했느냐를 둘러싸곤 여전히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문화재에 접근하는 참신한 방식’이란 호평도 있지만, ‘상업적인 목적이 다분한 NFT가 자칫하면 문화재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과연 간송미술관은 국보의 위상을 지키면서도 문화재를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묘수’를 찾아낼 수 있을까.

# 김태겸 한국외국어대(이탈리아어학) 학생이 ‘쪼개기, 뽑기… 신윤복 혜원전신첩 NFT 상술 논란(더스쿠프 통권 507호)’ 기사를 읽고 신윤복 NFT를 다루는 간송미술관의 현재 행보를 다시 짚어봤다. 다시 보는 신윤복 NFT 논쟁 1편이다. [※참고: 이 콘텐츠는 대학생과 더스쿠프, 온라인 북 제작업체 북팟이 기사의 가치를 같이 만들어가는 ‘대학생 기사취조단’ 다섯번째 편입니다.]


그네를 타고 있는 여인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옆엔 또 다른 여인들이 웃으며 목욕을 즐긴다. 여인네들의 옷 속을 채운 빨강·파랑·노랑의 삼원색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다. 반라의 여인들에게선 시대상을 거스르는 대담함이 느껴지고, 이를 훔쳐보는 동자승을 통해 약간의 긴장감도 더해진다. 김홍도·김득신과 함께 조선 후기 3대 풍속화가로 꼽히는 신윤복의 풍속화 ‘단오풍정’에서 내가 느꼈던 아름다움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미술 교과서에서 단오풍정을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오풍정이 신윤복의 그림첩 ‘혜원전신첩’에 수록된 그림 중 하나란 걸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이 그림첩엔 선비들의 뱃놀이를 그린 주유청강, 기생의 검무劍舞를 담아낸 쌍검대무 등 우리가 잘 모르는 신윤복의 그림들이 가득 담겨 있다. 이런 걸작들이 빛을 보지 못한 채 박물관에서 잠들어 있다는 점은 안타까운 부분이다.

내가 혜원전신첩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지난해 6월 “혜원전신첩을 NFT화해 판매하겠다”는 간송미술관의 발표를 더스쿠프 기사로 접한 이후다. 당시 간송미술관 관계자는 “후손들에게 우리 문화재가 가진 우리만의 미적 감각과 문화를 알리고자 노력할 계획”이라며 NFT 판매 취지를 설명했다.

■ 국보 NFT화 찬반양론 = NFT가 뭐기에 문화재를 알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까. NFT(대체불가능한 토큰·Non Fungi ble Token)는 쉽게 말하면 블록체인 기술로 만든 ‘디지털 인증서’다. 현재 디지털 사진·게임 아이템·캐릭터 등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NFT마다 고윳값을 갖고 있어 현재 기술로는 거래 내역을 위변조하거나 해킹하는 게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NFT를 간송미술관은 ‘국보國寶’에 접목하기 시작했다. 2021년 8월, 한글의 창제 원리를 담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디지털화해 NFT로 판매한 게 시작점이다. 당시 1억원이란 높은 가격에도 훈민정음 NFT는 총 100개 중 80개(2021년 10월 기준)가 판매됐다. 국보 70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훈민정음 해례본이 갖는 역사적 가치에 주목한 투자자들이 NFT를 구매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자신감을 얻은 간송미술관은 이듬해 신윤복의 그림을 NFT화하는 데 착수했다. 총 355개로 제작된 단오풍정 NFT는 빠른 속도로 팔려나가 금세 매진됐다. 현재는 주유청강을 NFT화해 판매하고 있으며, 다른 작품들도 순차적으로 판매할 예정이다.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깊은 국보에 최신 IT 기술이 더해졌다는 점에서 간송미술관의 NFT 프로젝트는 업계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다. 그만큼 이 프로젝트를 둘러싼 논쟁도 뜨거웠다. 소유권이 간송미술관에 있긴 하지만, 국보를 NFT로 만들어도 괜찮냐는 게 논쟁의 골자였다.

프로젝트를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문화재에 접근하는 새로운 방식이라며 NFT를 추켜세운다.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신윤복의 그림들을 NFT를 통해 누구나 소유할 수 있으면 자연스럽게 문화재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이유에서다.

아울러 이미 뛰어난 가치를 인정받은 문화재에 NFT 기술을 덧붙이면 경쟁력 있는 지식재산권(IP)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반면 부정론을 펼치는 이들은 문화재의 가치가 훼손되는 걸 우려한다. 수익을 창출하는 게 목적인 NFT 때문에 문화재가 ‘상술의 수단’으로 전락하면 안 된다는 거다.

문제는 간송미술관의 NFT 제작 과정에서 원작의 가치를 변질시킬 만한 부분들이 눈에 띈다는 점이다. 간송미술관이 현재 판매 중인 주유청강 NFT를 예로 들어보자. 간송미술관은 주유청강을 촬영한 뒤 해당 사진을 인물 전신·반신·머리·얼굴·오브젝트(꽃·나무 등의 사물) 등 38개 조각으로 나눴다.

그런 다음 해당 조각에 프레임을 씌우고, 프레임의 형태·색상·폰트 등을 바꿔가면서 조합의 수를 30가지로 늘렸다. 이렇게 주유청강 조각(38개)과 프레임 수(30개)를 조합해 총 1140개의 NFT를 만들었다. 이전에 판매했던 단오풍정 NFT 개수가 355개였던 것도 이런 제작 방식을 거친 덕분이다.

이렇듯 간송미술관은 신윤복의 그림을 조각내 다양한 종류의 프레임을 씌워 가짓수를 늘리는 방식을 택했다. 이런 제작 방식은 원본의 가치가 달라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원작에 간송미술관의 해석을 더한 셈이라서다.


판매 방식에 관해서도 논란이 적지 않았다. 단오풍정 NFT를 판매할 당시 간송미술관은 ‘랜덤 민팅(random minting)’을 도입했다. 이는 무작위로 NFT를 지정해 판매하는 방식인데, 바꿔 말하면 구매자는 값을 치러도 원하는 그림 조각을 살 수 없다는 거다. 원하는 그림 조각이 나올 때까지 계속 구매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간송미술관이 문화재를 상업적 도구로 쓴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건 이런 이유에서다.

원작의 가치가 변질하는 걸 우려해서인지 간송미술관은 최근 NFT 판매 방식을 변경했다.[사진=뉴시스]
원작의 가치가 변질하는 걸 우려해서인지 간송미술관은 최근 NFT 판매 방식을 변경했다.[사진=뉴시스]

■ NFT에 숨은 문제와 탐욕 = 중요한 건 문화재의 가치가 훼손될 경우 대중의 공분을 사는 건 물론이고 NFT 판매에도 좋을 리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인지 간송미술관 역시 최근 주유청강 NFT의 판매 방식을 바꿨다. 현재 구매자들이 원하는 조각을 살 수 있도록 각각의 NFT를 개별 판매 중이다.

판매 방식을 바꾼 이유를 묻는 질문에 간송미술관의 NFT 제작·판매를 담당하고 있는 배경일 아톰릭스랩 부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 프로젝트는 수익 목적보다는 신윤복의 그림을 널리 알리려는 의도가 더 크다. 랜덤 민팅이 아니라 매출은 다소 줄었지만, 주유청강을 천천히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은 원래 목적에 더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간송미술관도 국보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고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NFT화 과정에서 원작을 훼손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이야기는 2편에서 상세히 다뤄보도록 하겠다.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김태겸 한국외국어대(이탈리아어학) 학생
taegyeomgim9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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