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행정에 필요한 가치
법은 사람 위해 존재

세금을 잘 내오던 선량한 사업가 A씨는 얼마 전 기소를 당했다. 검찰이 A씨에게 ‘탈세 혐의’를 적용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A씨는 ‘탈세 혐의’를 벗어버렸다. 그런데 이번엔 과세관청이 ‘사실상 탈세’라고 우기면서 가산세율 40%를 적용했다. A씨는 구제기관에 항변했지만, 누구도 들어주지 않고 있다. A씨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는 ‘착한 사마리안법’에서 답을 찾고자 한다. 

송바우 국세청 기획조정관이 2022년 하반기 국세행정 운영방안을 발표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송바우 국세청 기획조정관이 2022년 하반기 국세행정 운영방안을 발표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의사분이 계시면 승무원실로 와주세요.” 닥터를 부르는(call) 긴급한 기내 방송이 승객에게 전달됐다. ‘의사 승객’의 도움으로 위기에 처한 ‘환자 승객’의 생명을 구했다면 천만다행일 거다. 하지만 의사가 탑승했는데도 나타나지 않아 그 환자가 사망에 이르렀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착한 사마리안법(Good Samaritan Law)’은 이 질문에 답을 준다. 이를 크게 나누면 긴급한 위기에 처한 자를 선의로 구조한 자에게는 과실過失이나 책임을 면책하는 유형(❶)과 손쉬운 구조가 가능함에도 이를 거부한 자를 처벌하는 유형(❷)이 있다. 전자는 영미법 계통의 국가에서, 후자는 대륙법 계통의 국가에서 도입하고 있다. 

프랑스는 “자신의 즉각적인 행동으로 타인 신체의 완전성에 대한 중죄의 실행을 막을 수 있음에도 이를 고의로 막지 아니한 자는 5년의 구금형에 처한다”는 규정(형법 제223-6조)을 두고 있다. 

1997년 영국 황태자비 다이애나가 파리 센 강변 지하차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긴급구조 활동을 하지 않고 사진만 찍은 파파라치가 이 조항에 따라 처벌받았다.

세법과 세무행정의 출발점은 ‘신의성실원칙信義誠實原則(bona fide)’이다. 이는 사회 구성원 모두(세무공무원과 납세자 포함)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상대방의 신뢰에 반하지 않도록 성의 있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법 원칙이다(민법 제2조, 국세기본법 제15조). 그러나 현실에선 “법대로 집행했으니 억울하면 소송하시라”는 ‘친절한’ 안내를 듣는 납세자가 부지기수다.

예를 들어보자. 법원이 검찰이 주장한 ‘탈세 혐의’를 받아들이지 않았음에도 과세관청이 이를 무시하고 탈세 행태라고 침소봉대해서 높은 가산세율 40%를 적용하는 경우가 있다. 

다른 행정기관의 법령 해석을 믿고 신고했는데(특히 재산세 분야), 과세관청이 이를 무시하고 자체적으로 판단해 과세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국세청은 행정부 소속 기관이 아닌가.

이뿐만이 아니다. 과세관청의 ‘부당한 처분’을 꼬집는 성실 납세자의 아우성에 귀를 기울여야 할 구제기관(이의신청·심사청구·심판청구)도 귀를 막은 채 ‘기계적’으로 기각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그럴 요량이라면 이들 기관이 존재할 가치는 있기나 한가. 성실한 납세자가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는 행위를 했을 경우엔 가산세 부담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그게 ‘착한 사마리안법’의 정신이다(❶의 원칙). 그 연장선상에서 ‘(과세 여부가)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납세자)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라는 법 격언을 세무행정에도 적용해야 한다. 납세자와 세무공무원 모두 성실하다면 자연스럽게 도달할 수 있는 원칙과 규범이다.


또 다른 고질적인 병폐는 ‘세무조사권 행사의 남용’이다. 이를 막기 위해 “누구든지 세무공무원의 공정한 세무조사를 저해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국세기본법 제81조의4)을 두고 있긴 하다. 누구든지에 ‘대통령 등 권력기관’이 포함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과세관청의 수장이 임명권자인 권력층으로부터 자유로울까. 군사정권 시절 등 현대사의 변곡점에 ‘털면 먼지 안 나는 기업이 있나’라는 식의 합법의 탈을 쓴 비겁하고 치졸한 세무조사의 흑역사가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외부의 압력을 받은 경우, 해당 공무원은 이 사실을 공개함으로써 사주한 자를 법적 절차에 따라 처벌받도록 하고, 이를 숨기는 공무원도 처벌해야 한다(❷의 원칙). 비행기 기장이 음주 운항을 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2000여년 전, 중동 어느 지방에서 성실한 사람이 강도를 만나 죽을 지경에 몰렸다. 눈만 뜨면 입을 열어 ‘이웃을 사랑하라’고 외쳤던 종교인들은 애써 눈을 감고 현장을 지나쳤지만, 그들에게 멸시를 받았던 사마라아인이 측은한 맘이 들어 강도를 만난 사람을 치료해줬다(누가복음 제10장 30- 33절). 

이는 인류가 지향해야 할 최고선最高善이리라. “법은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세법과 세무행정에 ‘착한 사마리안법’의 도입을 주저할 필요는 없다. 그래야 착한 경제가 되살아난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 | 더스쿠프
acnanp@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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