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경제 7편
저성장 국면서 필요한 조치

낙수효과든 분수효과든 모두 검증되지 않은 이론이다. 기업의 세금을 깎아줬더니 투자는 하지 않은채 현금만 잔뜩 쟁여놓은 사례는 흔히 볼 수 있다. 구조적 저성장 국면에서 탈출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정도正道’다. 재정 확장 정책을 통해 탈출구를 마련할 수 있을진 모르지만, 이내 악순환만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당장의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꾀를 부렸다간 더 큰 화를 초래한다.[사진=뉴시스]
당장의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꾀를 부렸다간 더 큰 화를 초래한다.[사진=뉴시스]

재정의 시각에서 우리나라를 보면 실로 위태롭기 그지없다. 올해 나라빚은 1068조8000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49.7%에 달한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재정 투입을 확대한 결과라고 하지만 2017~2021년 연평균 국가채무 증가 속도는 3.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8%)의 두배 수준에 이른다. 이대로 가다간 제2의 IMF 사태가 올 수도 있다.

재정은 세입(A)과 세출(B)로 구분한다. 재정의 건전화란 A=B인 상태를 의미한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300조원(B)을 쓰려면 300조원(A)을 세금으로 거두면 되고, 감세를 하려면 동시에 지출을 줄이면 된다(Pay Go 원칙).

이런 단순 공식이 강의실에서 정치권으로 옮겨가는 순간, 이상한 논리가 지배한다. A를 깎아 주면 경제가 활성화돼서 B의 재원이 증가한다(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거나 B를 늘리면 소비가 진작돼 A가 자동적으로 늘어난다(분수효과·trickle-up effect)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모두 검증되지 않은 얘기다. 세금을 깎아줬더니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개인 빚을 갚은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는 결국 세금만 도둑맞는 셈 아닌가.

물론 국가재정의 건전을 유지토록 하는 법(국가재정법)이 있긴 하다. 하지만 강제 규정이 아니라 공자님 말씀 수준의 훈시 규정에 그친다. “정부는 건전재정을 유지하고 국가채무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제1조)”와 “해당 연도에 예상되는 초과 조세수입을 이용해 국채를 우선 상환할 수 있다(제90조 제1항)”는 정도다.

정치권서 판치는 이상한 논리

노력하지 않아도 처벌 규정이 없고 어쩌다 세수입이 예상보다 넘쳐 세계잉여금歲計剩餘金이 발생해도 빚을 갚기보단 표를 의식해서 추경을 편성해 쓰기에 바쁜 것이 우리네 수준이다. 역대 정부 대부분이 그래 왔다.

구조적인 저성장 추세, 저출산과 고령화 등을 감안하면 재정 확장 정책을 통한 탈출구를 마련할 필요도 있다. 그렇다고 당장의 어려움을 피하고자 정도正道를 걷지 아니하고 꾀를 부리다 보면(적자재정의 지속), 이는 마치 미꾸라지가 솥이 뜨거워지자 열기를 피해 두부 속으로 들어가는 꼴과 같다.

피땀 흘려 가꾼 알토란 같은 국내 기업이 IMF 외환위기 시절 깜냥도 안 되는 외국 투기자본에 그저 보양식으로 한입에 삼켜진 게 엊그제 일이다. 재정이 탄탄해야 이웃국가로부터 얕보임을 당하지 않는다.

현 세대의 빚을 미래 세대에게 어물쩍 떠넘기는 것은 시정잡배들에게도 통하지 않을 불공정행위다. 이를 방지하고자 유럽연합(EU)은 회원국들로 하여금 연간 재정적자는 GDP 대비 3% 이내로 하고, 국가채무는 GDP 대비 60% 이하를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독일은 아예 헌법에 수입과 지출은 원칙적으로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명시했다.

프랑스는 헌법에 국회의원은 지출을 수반하는 법률안을 제출하지 못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법률로 지출은 명목 GDP 증가율(물가상승률) 이상으로 증가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참고: 우리나라는 2020년 재정준칙 법제화를 추진하려다 정치권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그런데 지난 7일 정부와 여당의 재정전략회의에서 재정정책 기조를 확장재정에서 건전재정으로 전환하고 ‘재정준칙(fiscal rules)’을 법제화(legally provided)해 구속력을 확보하겠다고 발표했다.

재정준칙은 재정수지, 재정지출, 국가채무 등 재정지표의 구체적인 목표 수치를 법으로 규정해 그 이상으로 재정을 지출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말이 쉬워 법제화이지 이는 국회와 정부의 손과 발을 스스로 묶는 것이다. 선거가 다가와도 돈을 재정준칙이 규정한 이상으로 풀지 못한다.

이 때문에 지금껏 그 어떤 정부도 이 난제를 풀어내지 못했다. 윤 정부 역시 벽에 부닥칠 가능성이 높다. 경기침체의 늪이 깊어지거나 정치적 이벤트가 다가오면 돈을 풀고 싶은 유혹에 휩싸일 게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은 물가는 오르고 경기는 침체하는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이다. 정치적 계산으로 돈을 풀었다간 민생뿐만 아니라 나라경제가 망가질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윤 정부엔 ‘이전 정부와 다른 길’을 걸어야 할 의무가 있을지 모른다.

과연 이번에는 정부와 여당 스스로 고양이 목(재정 건전화를 방해하는 요인)에 방울(재정준칙의 법제화)을 달아서 나라 곳간을 알차게 지킬 것인가. 방울을 다는 것은 가장 ‘지혜롭고 용감한’ 쥐의 몫이다.

힘은 이런 곳에 써야 한다. 재정준칙이 법제화되고 국회와 정부가 스스로 준수한다면 이는 현 정부의 치적으로 삼을 만하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 | 더스쿠프 
acnanp@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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