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층간소음 당근책 무용론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접수되는 층간소음 민원 건수는 한해 4만건 이상이다. 월 3000여건, 하루 100건이 훌쩍 넘는 민원 건수다. 층간소음으로 살인사건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예민하게 받아들여야 할 통계다. 국토부 역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면서 ‘공동주택 층간소음 개선 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10여년 전 실패한 정책을 그대로 답습한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층간소음 문제로 접수되는 민원 건수는 한해 4만건이 넘는다.[사진=뉴시스]
층간소음 문제로 접수되는 민원 건수는 한해 4만건이 넘는다.[사진=뉴시스]

“국민들의 층간소음 걱정을 확실히 덜어드리겠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8월 18일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의 세부대책으로 ‘공동주택 층간소음 개선 방안’을 내놓으면서 이렇게 밝혔다. 올해 2월 국회가 주택법을 개정해 아파트 완공 직후 층간소음 측정을 의무화하는 ‘사후확인제도’를 도입했는데, 국토부가 이에 따른 추가 조치들을 발표하며 층간소음을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다진 거다. 

이번 층간소음 개선 방안은 ‘지어진 주택’과 ‘지어질 주택’으로 구분돼 있다. ‘지어진 주택’을 대상으로 한 개선 방안은 ▲소음저감매트 설치 비용 지원(저소득층 대상ㆍ무이자 융자) ▲층간소음관리위원회 설치 의무화 ▲층간소음 우수관리단지 선정(우수사례 확산) 등이다. 

‘지어질 주택’을 대상으로는 ▲사후확인(성능검사) 결과 공개로 국민 알권리와 기업 건전 경쟁 유도(우수 시공사 선정ㆍ공개) ▲공사단계 품질점검 강화(바닥구조 시공확인서 단계별 3회 이상 제출) ▲층간소음 우수기업 인센티브 확대(분양보증 수수료 최대 30% 할인, 바닥두께 추가 확보 시 분양가 가산 허용, 용적률 제한 완화 등) ▲사후확인제 시범단지 운영을 통한 제도 내실화 등을 방안으로 내놨다.

[※참고: 국토부는 사후확인제도 도입에 따라 지난 3월 바닥충격음 성능검사를 위해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및 규칙’과 ‘공동주택 바닥충격음 차단 구조 인정 및 관리기준’을 새로 마련했다. 사후확인제도는 8월 4일 이후 신규로 사업계획승인을 신청한 사업부터 적용되기 때문에 2~3년 후에 준공되는 주택에 적용된다.]

언뜻 봐도 지어진 주택의 층간소음 개선 방법엔 한계가 적지 않다. 이에 따라 지어질 주택의 층간소음을 어떻게 잡느냐가 관건으로 떠오를 게 분명하다. 하지만 지어질 주택의 층간소음 개선 방법에도 한계가 뚜렷하다. 

무엇보다 그 방안이 건설사를 위한 혜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예컨대 사후확인 결과 층간소음 우수기업으로 선정되면 분양보증을 받을 때 내는 수수료를 최대 30% (중량충격음 등급별로 10~30% 차등 할인)까지 환급해준다. 1000가구 규모 아파트단지라면 최대 5억원의 비용을 아낄 수 있다. 또한 건설사가 바닥 두께를 210㎜ 이상 확보하면 분양가를 높일 수 있고, 용적률 제한도 완화해준다. 중량충격음 2등급 이상을 받아도 분양가 가산을 허용한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아파트 층간소음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지만 건설사들만 혜택을 입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사진=뉴시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아파트 층간소음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지만 건설사들만 혜택을 입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사진=뉴시스]

물론 이런 혜택엔 그 나름의 명분이 있다. 8월 4일 실시된 사후확인제도에 따르면, 건설사들은 아파트 완공 직후 의무적으로 층간소음 측정을 해야 한다. 사용승인을 받는 단계에서 전체 가구의 2%(향후 5%로 상향 예정)를 무작위로 선정해 바닥충격음 차단 성능을 평가받는데, 기준치를 충족하지 못하면 지방자치단체가 건설사에 보완 시공을 요청하거나 손해배상을 권고할 수 있다. 규제책을 내놓은 만큼 건설사들이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층간소음을 저감하도록 유인해주는 당근책도 필요하지 않느냐는 거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규제책의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하게 인센티브를 내걸었다는 거다. 10여년 전부터 층간소음 문제를 정부가 적극적으로 해결할 것을 강조해온 강규수 소음진동피해예방시민모임 대표는 “강제력 없는 규제책이 제대로 작동하겠느냐”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사후확인제도는 2%의 샘플을 측정해서 정해진 층간소음 기준치를 통과하면 전체 주택을 ‘합격’ 처리하겠다는 거다. 그럼 역으로 샘플이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전체 주택이 불량 판정을 받는가. 그렇지 않다. 불량 판정을 한다면 처벌 규정이 있어야 하는데, 보완 시공 요청이나 손해배상 권고가 전부다.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을 때 제대로 된 페널티가 없는 상황에서 인센티브를 준다는 게 말이 되는가.”

강 대표는 “사후확인제도에 숨어 있는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면서 말을 이었다. “게다가 사후확인제도의 중량충격음 차단 성능 측정 방식은 7.3㎏짜리 타이어를 1m 높이에서 떨어뜨리는 ‘뱅머신’ 방식에서 2.5㎏짜리 고무공을 떨어트리는 ‘임팩트볼’ 방식으로 변경됐다. 건설사들에 유리한 조건이다. 사후확인제도를 빌미로 오히려 건설사들에 특혜를 주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후확인제도의 중대한 허점

강 대표의 주장은 기우杞憂가 아니다. 건설사들이 인센티브만 챙기고 정작 층간소음은 해결하지 않은 전례가 숱해서다. 시계추를 2004년으로 돌려보자. 그해 정부는 바닥충격음 관리기준을 제정하고 사전인정제도를 도입했지만 층간소음 문제는 좀처럼 해결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2013년 3월 국토부는 층간소음을 줄여 사회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튼튼한 아파트를 짓는 건설사에 2015년부터 ▲용적률 제한 완화 ▲조달청 입찰참가 자격심사 가점 부여 ▲기본 건축비 가산 반영 등 다양한 혜택을 부여하기로 했다. 이후 건설사들은 자신들이 개발한 다양한 층간소음 저감기술을 홍보했다. 일부 건설사는 정부지원금을 받아 층간소음 저감기술을 개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기대치를 한참 밑돌았다. 2019년 감사원은 사전인정제를 통과한 총 28개 현장 191세대 공동주택의 층간소음을 측정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에 따르면 184세대(96.3%)가 사전인정을 받을 당시보다 등급이 하락했다. 

이 가운데 114세대(40.3%)는 최소 기준에도 미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사들이 혜택만 챙기고 층간소음 문제 개선에는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강 대표의 우려에 설득력이 적지 않은 이유다. 층간소음은 사회문제로 비화한 지 오래다. 단순한 층간소음 탓에 ‘살인사건’이 벌어지기도 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또다시 ‘인센티브’에 초점을 맞춘 정책으로 층간소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미 수년 전 실패한 정책이다. 강 대표는 “층간소음 문제는 건설사가 시공을 얼마나 제대로 했느냐에 달려 있다”면서 “이런 맥락에서 지금 필요한 건 엄정한 처벌규정을 만드는 것이다”고 꼬집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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