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 코로나19 전용 잘못됐나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 환자 치료, 백신 접종 등에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갖다 쓴 사실이 드러나 비판을 받고 있다. 국민이 낸 보험료로 정부가 생색을 냈으니 당연하다. 그런데 일부에서 재정 전용 논란에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덧붙여 비판하고 있다. 정부가 재정 지원을 더 해야 할 판에 재정을 갖다 썼다는 거다. 과연 타당한 주장일까.

보험료율 조정을 통해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충당해야 하지만 정부는 지원금을 통해 해결해왔다.[사진=뉴시스]
보험료율 조정을 통해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충당해야 하지만 정부는 지원금을 통해 해결해왔다.[사진=뉴시스]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건강보험 재정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을 빚고 있다. 코로나19 검사와 치료, 백신 접종 등에 국민이 납부한 보험료를 쌈짓돈처럼 갖다 쓰고선 왜 생색은 정부가 냈느냐는 거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 8일 발표한 ‘코로나19 환자 치료 비용 지출 경과’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2022년 6월까지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에 쓴 비용은 7조5887억원이었고, 이 가운데 건보공단이 5조6933억원(75.0%)을 담당했다. 나머지는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분담했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코로나19가 확산하는 비상시국에 국민건강을 위해 건강보험 재원을 썼는데 뭐가 문제인가. 원래 그러려고 만든 것 아닌가.” 하지만 정부의 건강보험 재정의 사용을 그렇게 간단하게 볼 일이 아니다. 

정부가 돈을 쓸 때는 사용할 목적에 맞는 재원조달 원칙을 잡아 놓고, 그 원칙에 맞춰서 사용해야 한다. 재원조달처와 사용처가 일치해야 한다는 거다. 그래야 분석도 평가도 가능하다. 이런 원칙 없이 아무 사업에 아무 돈이나 가져다 쓰면 비리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그럼 건강보험 재정은 어디에 써야 하는 걸까. 국민건강보험제도의 목적은 ‘국민의 질병ㆍ부상에 관한 예방ㆍ진단ㆍ치료ㆍ재활, 출산ㆍ사망, 건강증진을 위한 보험급여 제공’이다. 얼핏 보면 코로나19도 질병이니까 건강보험 재정을 써도 되는 게 아닌가 싶지만 그렇지 않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건강보험도 ‘보험’이라는 사실이다. 보험은 미리 약속된 내용에 따라 보장(보험금 지급)을 한다. 자동차보험이 자동차와 무관한 사고를 보장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코로나19는 건강보험이 사전에 보장을 약속한 질병이 아니다.

게다가 보험은 보험료를 낸 사람들을 위한 장치인데,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조치는 전국민이 대상이다.[※참고: 국민연금, 건강보험, 산재보험, 고용보험이 모두 이런 특징들을 갖고 있다.] 코로나19 대응조치를 위한 재원은 별도로, 특히 세금으로 충당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정우 인제대(사회복지학) 교수는 “세금은 재산에도 부과하고 누진율이 적용되지만, 보험료는 소득에 따라 부과하고 정률이 적용된다”면서 “따라서 세금으로 충당해야 할 보건정책에 보험료를 기반으로 하는 건강보험 재정을 가져다 쓰는 건 부의 재분배 등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꼬집었다.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조치에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전용해 논란을 빚고 있다.[사진=뉴시스]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조치에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전용해 논란을 빚고 있다.[사진=뉴시스]

이처럼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건강보험 재정을 가져다 쓴 사실은 비판받을 만하다.  문제는 일부에서 정부의 건강보험 재정의 전용轉用 논란을 건강보험 재정의 건전성 논란으로 확대한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건강보험의 재정 건전성이 좋지 않은데, 정부지원금을 더 늘려주지는 못할망정 곶감을 빼 가느냐’는 식의 지적이다. 

개중에는 이런 주장도 나온다. “2007년부터 2021년까지 건강보험공단에 투입돼 온 정부지원금이 총 94조5000억원이다. 2021년 기준 건강보험공단의 누적 재정수지는 20조2000억원이다. 정부지원금이 없었다고 가정하면 74조3000억원의 적자인 셈이다.

그런데 정부지원금이 2022년 12월 31일을 기점으로 사라진다. 그럼 곧바로 공단도 적자로 돌아선다. 따라서 정부지원금을 유지해야 한다.” 곳간에 돈이 없으니 불안하다는 거다. 

하지만 이 주장은 크게 잘못됐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제대로 이해하려면 건강보험의 ‘재정 건전성’을 둘러싼 오해부터 풀어야 한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건강보험은 ‘보험’이다. 게다가 ‘공적보험’이다. 이윤을 남기기 위한 ‘사적보험’과는 차이가 있다. 

이런 공적보험은 수입과 지출이 제로(0)가 돼야 가장 이상적이다. 보험 가입자 가운데 건강보험에서 제시한 보장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제공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재정이 남아서도, 모자라서도 안 된다는 얘기다. 특히 건강보험 재정이 남아도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정형선 연세대(보건행정학) 교수는 “건강보험은 1년 단위로 보험료 수입과 보험급여 지출의 균형을 맞추는 단기보험인데, 적립금이 많다는 건 국가 재정이 비효율적으로 운영된다는 의미”라면서 “게다가 이는 국민이 혜택을 받는 것보다 더 많은 보험료를 내고 있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 교수는 “이렇게 되면 보험료 인상을 해야 할 때 국민적 저항이 커질 수 있고, 수가를 높여달라는 의사들의 요구를 피하기도 힘들어진다”고 강조했다. 건강보험 재정이 흑자를 냈다는 얘기가 나오면 “건강보험 보장성을 더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사실 보험에서 재정수지를 맞추는 도구는 보험료율 조정이다. 보험 가입자가 그대로일 경우 보험 재정이 부족하면 보험료율을 높이고, 재정이 남으면 보험료를 되돌려주면 된다는 거다. 애초에 건강보험제도는 그렇게 설계됐다. ‘흑자를 유지해야 한다’는 기조에 방점을 둔 ‘재정 건전성 확보’나 ‘정부지원금 확대’ 등의 주장이 설득력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정부지원금을 받으면 기관 운영의 독립성이 훼손될 가능성도 높다.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 대응 재원으로 건강보험 재정을 활용한 게 단적인 예다.

하지만 우리보다 먼저 사회보험제도를 만들어 운용하고 있는 국가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독일의 경우 1800년대 초반 건강보험과 산재보험을 만들면서 정부의 간섭과 통제를 배제하기 위해 정부지원금이 들어올 여지를 완전히 차단했다. 오로지 보험료율 조정만으로 재정을 감당하고 있다. 대신 보험료를 내기 힘든 이들을 정부가 지원한다. 

이정우 교수는 “보험료율을 조정하려 하면 국민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으니 정치인들이 정부지원금으로 건강보험 재정을 보조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상당히 잘못된 방식”이라면서 “건강보험 재정을 올바르게 운용하려면 이번에라도 보험료율 인상을 공론화하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뭐든 원칙이 흔들리면 불필요한 논쟁을 부채질한다. 건강보험이 ‘보험’이라는 원칙만 제대로 기억하면 불필요한 논쟁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부터 원칙을 지켜야 한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