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탐구생활-행복한 복지 | 임금피크제 담론 2편
실제 퇴직 시기는 정년보다 훨씬 빨라
연금수급 전까지 기업이 일정 책임져야

“임금피크제 대신 안정적 고용을 유지하는 점진적 퇴직 시스템으로 연금고갈을 대비할 수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통권 502호 ‘행복한 복지’ 3편에서 살펴본 내용입니다. 문제는 ‘점진적 퇴직’을 도입하려면 일정한 재정이 필요하다는 점인데, 그 재원은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요? 그래서 이번에는 점진적 퇴직 시스템을 갖춘 국가들의 사례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독일은 2000년대 초, 하르츠 개혁을 통해 기업에 고용 의무를 부담지우는 제도를 만들었다.[사진=뉴시스]
독일은 2000년대 초, 하르츠 개혁을 통해 기업에 고용 의무를 다하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었다.[사진=뉴시스]

한국에서 노동자의 법적 정년은 60세입니다. 하지만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이 아닌 이상 정년을 채우기는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정년을 채우기 전에 명예퇴직을 합니다. 기업들이 임금피크제를 근거로 임금을 확 깎아버리니 견디지 못하고 퇴사를 하는 거죠.

문제는 명퇴한 이들이 국민연금을 수령하려면 적어도 60세 이상(출생연도별로 최대 65세)이 돼야 한다는 겁니다. 정년을 다 채운다고 해도 연금을 받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니까 명퇴(또는 은퇴) 후 생활은 힘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상당수의 유럽국가는 연금을 받기 전까지 고용을 계속 유지하는 ‘점진적 퇴직’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연금수급 연령이 되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일을 하도록 지원하고, 수입이 일정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거죠. 그럼 그 재원은 어떻게 마련하는 걸까요? 이정우 인제대(사회복지학) 교수의 얘기를 들어보시죠. 

✚ 노동자 입장에선 ‘점진적 퇴직’이 좋아 보이기는 합니다. 고용 안정을 꾀할 수 있으니까요. 사례를 들어줄 수 있나요?
“독일 얘기부터 해보죠. 독일에서 기업은 노동시간을 줄이는 방식으로 노동자의 임금을 깎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절반 이상을 깎지는 못합니다. 노동자의 해고는 곧 사회적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이죠.” 

✚ 연금수령 시기까지 적어도 고용은 유지하라는 의미인가요.
“그렇습니다.”

✚ 임금을 절반밖에 못 받는다면 수입이 줄어드는 건 마찬가지일 텐데요.
“정부가 실업수당이나 연금 재원으로 부족분을 채워줍니다. 물론 노동자가 일을 하지 않는다면 정부 보조는 줄어들고요.”

✚ 정부 보조를 제대로 받아서 수입을 맞추려면 일을 하게 되고, 그럼 연금 보험료를 계속 내게 되니까 결국 연금 재정에는 지장을 주지 않겠네요.
“그렇죠. 근로시간 저축제도라는 것도 있습니다.”

✚ 그건 뭔가요.
“예컨대, 기업에 일이 많아서 노동자가 초과근무를 하면 이를 수당으로 받지 않고 적립합니다. 그러다 퇴직해야 할 때, 혹은 부득이한 사정으로 일을 쉬어야 할 때 꺼내 씁니다. 만약 노동자가 정년을 채우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면 초과근무 시간만큼 국민연금 보험료를 더 낼 수도 있습니다. 나중에 좀 더 높은 연금으로 돌려받는 거죠.”

근로시간 저축제도는 2002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시절 진행된 하르츠 개혁을 통해 탄생했다. 1993년 폭스바겐은 심각한 경영난으로 수만명의 직원을 감원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당시 페터 하르츠라는 폭스바겐의 인사담당 임원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단계별로 고령 노동자를 퇴직시키고 신규 노동자를 고용하는 아이디어를 냈고, 결국 폭스바겐은 위기를 돌파했다. 이후 슈뢰더 총리가 하르츠를 고용대책위원장으로 등용해 그 사례를 정부 노동정책에 반영했는데, 이게 바로 하르츠 개혁이다. 

✚ 또 다른 나라의 사례도 있나요. 
“이번엔 스웨덴의 예를 들어볼까요. 스웨덴도 노동시간을 줄이는 정책을 갖고 있는데, 기업이 임금의 절반을 보장해줍니다. 나머지 부족한 수입은 부분연금제도를 통해 보충하죠. 점진적 퇴직을 위해 국민연금과는 다른 별도의 보험료를 내고, 퇴직을 앞둔 시기에 연금을 받아 수입에 충당하는 방식입니다.”

✚ 언뜻 보기에 고용보험의 연장선처럼 보입니다.
“맞습니다. 스위스에도 이런 방식의 연금제도가 있습니다. 가교연금제도라는 건데요. 퇴직연금을 담보로 개인의 국민연금 계좌에서 연금을 빌리는 방식입니다.”

노동자들의 실제 퇴직 연령과 연금수급 연령 간 갭은 매우 크다.[사진=뉴시스]
노동자들의 실제 퇴직 연령과 연금수급 연령 간 갭은 매우 크다.[사진=뉴시스]

✚ 그럼 나중에 갚아야 한다는 건가요.
“네. 하지만 직접적으로 돈을 갚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보험료를 좀 더 내는 방식입니다. 긴 시간을 두고 갚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담이 적죠. 흥미로운 건 당사자가 사망하면 권리도 부채도 소멸한다는 겁니다. 유가족에게 연금을 주지도, 부채를 갚으라고 하지도 않죠.”

우리나라는 연금에 가입한 당사자가 사망하면 유족에게 연금을 준다. 이 때문에 연금 가입 당사자가 연금수령 전까지 제대로 혜택도 못 받고 사망할 수도 있다. 스위스의 제도는 이런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 유럽 국가들의 복지제도를 두고 ‘정부가 퍼준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은데, 그게 아니네요.
“연금 지출이 더 큰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연금의 승계가 이뤄지지 않으니 연금재정은 부족해지지 않습니다.”

✚ 또 다른 나라의 사례도 있나요. 
“네덜란드의 얘기를 해볼까요. 네덜란드는 노동자가 연금 등 정부에서 제시한 ‘특정 목적’의 보험에 보험료를 내고 있으면, 일정액의 세금을 공제해 줍니다. 그게 꽤 적지 않은 금액인데, 노동자는 그렇게 모아둔 돈을 점진적 퇴직을 위한 목적으로 쓰기도 하고, 새로운 직업교육을 받는 데 쓰기도 합니다. 때로는 안식년을 갖기도 하죠.”

✚ 예전 모 다큐멘터리에서 네덜란드나 이탈리아 직장인은 휴가를 한달 혹은 두달씩 다녀오기도 한다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일종의 사회보험 제도로 가능한 거였군요. 
“맞습니다.”

✚ 그런데 의문이 하나 듭니다. 퇴직을 늦추든, 보험료를 더 내든 기업에 뭔가 사회적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보험료는 노동자만 내는 게 아니니까요. 기업으로선 불만이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옳은 지적입니다. 스위스의 경우, 기업의 잘못으로 노동자가 조기퇴직하면 기업이 가교연금 보험료를 100% 내야 합니다. 노동자 소득이 떨어져 연금 보험료를 내지 못하니까요. 다만, 노동자가 잘못한 거라면 보험료는 반반씩 부담하죠. 독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 기업이 그런 부담을 지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나요. 
“그 정도의 사회적 의무도 이행하지 못하는 기업이라면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하는 게 좋습니다. 그럼 시장에서 퇴출되는 거죠. 독일의 강소기업은 그런 시스템 위에서 탄생한 겁니다.”

✚ 우리나라에선 ‘기업에는 과중한 부담’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저도 그런 이들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산재보험을 생각해보세요. 산재가 발생하면 그게 노동자의 잘못이든, 기업의 잘못이든 산재보험으로 처리하잖아요. 유럽에선 퇴직 역시 비슷하게 보는 겁니다. 심지어 스웨덴은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임신ㆍ출산ㆍ육아)조차 부모가 일정 기간 ‘위험’을 부담하는 것으로 보고, 부모사회보험제도라는 걸 통해 대응합니다.”

✚ 유럽국가들의 사회보험이 무척 다양한 듯합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를 단선적으로 봐선 안 됩니다.” 

✚ 무슨 말인가요?
“여기서 중요한 건 유럽 국가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대안을 놓고 자국 상황에 맞게 재조합을 한다는 겁니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일본도 여러 해결책 중에서 하나를 택한 거예요.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면서 기업에 어떤 부담도 지우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대안도 꽉 막혀 있을 수밖에 없고요. 과연 그게 맞는 걸까요. 고민해볼 문제입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이정우 인제대 교수
socwjw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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