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탐구생활-사각사각
시각장애인 재석이 이야기
교통약자 울리는 교통 편의시설
울타리 벗어나면 장애물투성이

더스쿠프(The SCOOP)와 전문가가 함께하는 ‘같이탐구생활-사각사각’의 네번째편은 시각장애를 가진 이재석(22)군의 이야기입니다. 장애를 갖고 태어나 아주 어릴 땐 그것이 장애인지 인식하지 못하다가 몸과 마음이 커지면서 하나둘 불편함을 인식하게 됐다는 재석이의 10대 시절로 들어가 봤습니다. 그 시절 재석이가 겪은 불편함은 우리 사회 장애인 복지의 뼈아픈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장애인 편의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사진은 ‘키오스크 내돈내산 권리찾기 캠페인’ 중인 시각장애인들.[사진=뉴시스]
장애인 편의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사진은 ‘키오스크 내돈내산 권리찾기 캠페인’ 중인 시각장애인들.[사진=뉴시스]

모든 게 흐릿했습니다. 엄마 얼굴이 또렷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재석이는 저시력 장애를 갖고 태어난 시각장애 1등급 장애인입니다. 경증의 뇌병변 장애도 있습니다. 걸음걸이가 약간 자연스럽지 않지만 겉으론 크게 드러나지 않아 장애를 가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시각장애인의 필수품인 ‘흰지팡이’를 사용하지 않아 더욱 그럴 수도 있습니다.

사실 재석이는 자신의 장애가 ‘남들과 다른’ 불편함인지 잘 모르고 살았습니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 노란선이 없으면 넘어지기 일쑤였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것이 장애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처음부터 그랬으니까, 남들도 다 그런 줄 알았어요.” 성인이 되기 전까지 시각장애인들이 다니는 특수학교를 다닌 재석이에게 크고 작은 불편함은 오히려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재석이가 불편함을 조금씩 인식한 건 행동반경이 넓어지기 시작한 고1 무렵이었습니다. 아들이 대학에 진학하길 바란 어머니가 재석이를 보습학원에 보낸 게 ‘변곡점’이 됐습니다. 그전까지 재석이의 활동 영역은 학교와 교회가 전부였습니다. 학원수강생이 되면서 재석이는 서울 강북구 맹인학교에서 학원이 있는 종로구를 오갔습니다.

재석이의 주요 이동수단은 장애인콜택시였습니다. 하지만 매번 그 택시를 탈 순 없었습니다. 장애인콜택시는 운영 대수가 많지 않아 여의치 않을 땐 일반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고, 재석이는 그제야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특히 시내버스(일반)는 재석이 같은 시각장애인은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2003년 정부가 교통약자들의 편의를 위해 저상버스를 도입했지만, 장애인콜택시처럼 원한다고 언제든 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정부의 당초 목표치에 한참 못 미칠 정도로 도입률이 지지부진하기 때문입니다.[※참고: 저상低床 버스는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탄 채 버스에 쉽게 오를 수 있도록 바닥이 낮고 출입구에 경사판을 설치한 것입니다.] 

정부는 2005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을 제정하고 저상버스 도입률을 2011년 31.5%, 2021년 41.5%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도입률은 목표치를 한참 밑돕니다. 통계에 따르면 저상버스 도입률은 2012년 12.8%에 불과했고, 2021년엔 30.6%에 그쳤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전문가들은 운송사업자가 저상버스를 도입할 때 정부가 일부 비용을 지원해주는 방식으로 사업을 운영해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강제성이 없는 탓에 도입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해외에선 어떨까요? 영국의 고속버스회사인 내셔널 익스프레스는 95%가량의 고속버스에 휠체어 리프트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에선 장애인들이 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차체 바닥을 낮추고 정차할 역을 소리와 화면으로 알려줍니다. 일본에서도 차체 높이를 낮춰 지면과 버스의 높이 간격을 줄인 ‘논스텝 버스’를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국토부는 “시내버스 저상버스 도입률을 2026년 62.0%까지 높이겠다”는 ‘제4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2022~2026)’을 확정·고시했습니다. 2021년 30.6%에서 갑자기 두배 이상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입니다만, 그 목표치를 4년만에 달성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사실 2021년 도입률 30.6%도 서울 등 수도권에서 평균치를 끌어올려서 가능했던 것입니다. 농어촌버스, 마을버스, 광역버스의 도입률은 평균치를 한참 밑도는 게 현실입니다. 

그럼 정부의 목표대로 저상버스의 도입량이 늘어나면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성이 개선될까요? 해외 사례를 보면,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만합니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숙제가 더 많다는 걸 잊어선 안 됩니다.

다시 재석이의 환경을 살펴보시죠.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재석이는 저상버스를 이용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멀리서 오는 버스의 차량번호를 보고 탑승해야 하지만그걸 빠르게 인식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버스정류장의 안내방송도 소음에 섞여 알아듣기 힘들 때가 잦습니다.  

그렇다면 재석이가 장애인콜택시 대신 이용하곤 했던 일반콜택시는 어떨까요? 이 역시도 난관이 많습니다. “택시를 호출하면 ‘차량번호 ○○○○인 택시가 어디어디에 도착했다’는 문자메시지가 와요. 그런데 저를 비롯한 시각장애인들은 그 위치를 찾는 것부터가 숙제입니다. 차량번호를 볼 수 없고요.”

장애인콜택시는 운영 대수가 부족해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사진=뉴시스]
장애인콜택시는 운영 대수가 부족해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사진=뉴시스]

게다가 재석이는 앞서 말했듯 겉으로 보기에 비장애인과 크게 다르지 않아 먼저 도움을 주는 이들이 많지 않습니다. “자주 다니는 길은 익숙하니까 괜찮습니다. 하지만 낯선 곳은 좀 힘들어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다녀 내집처럼 편안한 특수학교와 장애 이해도가 높은 선생님의 품을 벗어나는 순간 재석이에겐 모든 게 장애물었던 셈입니다. 

청소년기에 재석이가 겪었던 불편은 성인이 된 재석이에게 숙제로 남았습니다. 그래서 재석이는 요즘 비장애인이 놓치기 쉬운 점들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어떻게 하면 장애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고민하고 또 고민합니다. 설사 그게 비장애인에겐 사소한 일이더라도 말이죠. 다음편에선 성인이 된 재석이가 바라본 현실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박현홍 러빙핸즈 대표
lovinghands@lovinghand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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