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정부도, 尹 정부도 강 건너 불구경
예산 있는데 쓰지 않은 문 정부 
남는 예산 삭감해버린 윤 정부
내팽개쳐진 개성공단 기업들 

# 남북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한미연합훈련, 보수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윤석열 정부의 대북 기조 등에 불만을 품은 북한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인 5월 12일부터 10월 14일까지 총 15차례 탄도미사일과 방사포를 쏴대며 위협했다. 군용기로 무력시위를 하는가 하면, 전술핵 사용 가능성도 언급했다. 

# 윤석열 정부와 집권여당은 강경 일변도다. 군용기 무력시위에 전투기로 맞대응한 정부는 14일엔 대북 독자제재책을 내놨다. 북한 핵ㆍ미사일 개발과 자금 조달에 관여했다고 판단되는 북한의 개인(15명)과 기관(16개)을 독자제재 대상에 추가한 거다. 정부는 한미공중연합훈련도 계획 중이다. 여당에선 ‘9ㆍ19 남북군사합의 파기’ ‘1991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파기’ ‘NPT 탈퇴와 핵무장’ 등의 얘기가 거침없이 나온다. 

# 국민에게 남북한 긴장 고조 상황은 반가울 리 없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더욱 허탈하게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 개성공단에 입주했다가 공단 폐쇄와 함께 벼랑으로 내몰린 기업들의 사장과 직원들이다. 긴장이 고조될수록 개성공단 재개의 가능성도 줄어들 게 뻔해서다. 

# 남북경제협력의 상징이던 개성공단은 이미 과거의 유물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개성공단 기업들에 그곳은 여전히 ‘기회의 땅’이다. 문제는 이전 정부도 현 정부도 개성공단 재개를 위한 노력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 더스쿠프가 개성공단 폐쇄 후 2450일의 기록을 살펴봤다. 개성공단의 멈춘 시계는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개성공단을 폐쇄한 지 6년 8개월이 흐른 지금도 개성공단 기업들은 폐쇄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개성공단을 폐쇄한 지 6년 8개월이 흐른 지금도 개성공단 기업들은 폐쇄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지난 10월 24일로 개성공단이 폐쇄된 지 2450일이 됐다. 6년 하고도 8개월이 흘렀다. 하지만 개성공단 기업의 시계는 여전히 멈춰 있다. 우여곡절 끝에 미얀마에 생산설비를 다시 마련한 개성공단 기업 A사의 이용석(가명ㆍ62) 대표는 “지금이라도 개성공단이 재개되면 다시 돌아갈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지난해 2월 중소기업중앙회가 개성공단 기업들을 대상으로 ‘개성공단 재개 시 재입주 의향’을 물어본 결과, 재입주 의사가 있는 기업은 91.9%에 달했다.

이 대표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정부가 리스크 관리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전제가 있지만, 개성공단의 재개를 바라는 마음은 여전하다”면서 “하지만 지금의 남북한 상황을 보면 이룰 수 없는 희망을 품고 있는 것 같아 답답하다”고 털어놨다.

그는 “개성공단 기업들을 위한 정부의 지원책이 거의 전무해서 더욱 안타깝다”고도 했다. 남북 갈등이 고조되면서 개성공단 기업들이 애써 붙잡고 있던 ‘희망의 끈’마저 약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을 이렇게 둬도 괜찮은 걸까. 

개성공단 폐쇄 이후 100여개(현재 125개사)가 넘는 개성공단 기업들은 각자도생의 길로 접어들었다. 박근혜 정부의 결정에 따른 폐쇄였지만 정부로부터 피해보상을 받는 건 쉽지 않았다.

당시 개성공단기업협회는 개성공단 기업들의 실질적인 피해액을 1조5000억원 이상으로 집계했다. 하지만 정부는 그중 절반인 7860억원만을 인정했다. 형식적인 계산과 인위적인 감가상각의 결과였다. 영업손실 예상액, 영업권 상실피해액 등은 포함되지도 않았다. 

개성공단 기업에 거듭된 악재들

그렇다고 정부가 자신들이 인정한 피해액을 온전히 보상한 것도 아니었다. 개성공단기업협회에 따르면 정부가 2017년 11월까지 개성공단 기업들에 지원한 금액은 5498억원에 불과했다. 협회가 파악한 실질피해액의 36.7%, 정부가 인정한 피해액의 69.9% 수준이다. 

개성공단에 모든 걸 놔두고 사실상 쫓겨난, 게다가 피해보상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이들의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상당수는 어쩔 수 없이 대출에 기댔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2013년 4월 개성공단 가동이 일시 중단된 후 65개사가 총 653억원의 정책자금(대출)을 받았다. 2016년 2월 공단이 폐쇄된 후에는 120개사가 총 1297억원(누적 기준)의 정책자금을 받았다. 공단 가동 중단과 폐쇄로 대출기업과 대출액이 각각 두배씩 늘어난 셈이다. 그나마 개성공단 기업들에 위안을 준 건 ‘시중은행보다는 낮은 정책자금 금리’였다.

문재인 정부는 개성공단 기업들의 정책자금 지원 요구에 응하지 않다가 임기 말에야 일부 대출 예산을 내놨다.[사진=뉴시스]
문재인 정부는 개성공단 기업들의 정책자금 지원 요구에 응하지 않다가 임기 말에야 일부 대출 예산을 내놨다.[사진=뉴시스]

하지만 이들이 정책자금으로 재기하는 건 쉽지 않았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특성에서 기인한 문제 때문이었다. 익명을 원한 개성공단 기업 관계자의 얘기를 들어보자. “단순히 운영자금만 필요한 거였다면 정책자금만으로도 도움이 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설비를 다시 꾸려야 했다. 맨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이 때문에 은행권에서도 돈을 빌려야 했다.”

대출을 통한 재기는 개성공단 기업들의 발목을 잡았다. 2020년 코로나19란 몹쓸 바이러스가 어렵게 재기의 발판을 만들어가던 개성공단 기업들을 덮쳤다. 최근엔 원자잿값 인상, 금리인상 등 재기의 숨통을 조이는 변수까지 밀려들었다. 개성공단 기업들이 ‘공단 폐쇄(2016년)→대출(정책자금+시중은행)→설비투자와 잃은 거래처 확보→코로나19 팬데믹(2020년)→원자잿값 인상과 금리인상(2021~2022년)→경영난 가중’이란 악순환의 늪에 빠진 셈이다.

개성공단기업협회 관계자는 “개성공단 기업들이 시중은행을 통해 마련한 자금을 얼마만큼 융통하고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면서 “다만, 설비투자까지 다시 해야 했으니 꽤 많은 기업이 시중은행에서 돈을 빌렸을 것으로 짐작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협회도 코로나19 사태와 금리인상 등으로 자금난을 겪는 기업들이 상당할 것으로 보고,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참고: 협회에서조차 상황 파악이 잘 안 되는 이유는 뭘까. 일부 개성공단 기업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개성공단 기업들은 문재인 정부조차 개성공단을 다시 열지 못했다는 점을 두고 실망스러워했다. 이런 게 학습되면서 정부에 도와달라고 해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문 정부가 그랬는데, 이번 정부는 더하지 않겠나. 그래서인지 이젠 어렵다는 얘기조차 쉽게 꺼내지 못한다.”]

중요한 건 정부를 믿고 개성공단에 입주했다가 되레 경영난이란 늪에 빠진 기업들을 위해 정부는 무얼 해줬느냐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해준 게 거의 없다. 사실 개성공단 기업들이 경영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는 건 자금조달이다. 거래처를 잃고 실적 악화를 경험한 데다 거듭된 대출로 신용도까지 떨어졌으니 더더욱 그랬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개성공단 기업들이 기업 유지에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분도 ‘부채 누적에 따른 추가 자금조달 곤란(38.7%ㆍ2021년 2월 조사)이었다. 개성공단 기업들이 정부에 정책자금 대출을 줄기차게 요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참고: 남북경협 참여 기업과 일부 개성공단 기업들로 구성된 한반도교역투자연합회는 지난 18일 ‘대북 투자금 전액 보상과 채무 면제’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역시 개성공단 기업들의 어려움을 대변하는 목소리인 건 맞다. 하지만 개성공단기업협회 측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협회 관계자는 “정책자금 대출, 대출 기한 연장, 금리 조정 등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만, 채무 면제는 조금 다른 문제”라면서 “채무 면제는 무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공식 입장도 아니다”면서 선을 그었다.]

윤석열 정부는 개성공단 관련 예산을 죄다 줄였다.[사진=뉴시스]
윤석열 정부는 개성공단 관련 예산을 죄다 줄였다.[사진=뉴시스]

하지만 정부는 개성공단 기업의 호소를 신중하게 살펴보지 않았다. 예산만 살펴봐도 짐작할 수 있다. 2017~2021년 문재인 정부에서 이들을 위해 집행한 정책자금 대출은 단 한건도 없었다. 대통령 임기가 끝나기 직전인 올해 2월 남북협력기금에서 152억500만원의 예산(세부사업명 개성공단 운영대출(융자))으로 41곳에 대출해준 게 전부다.[※참고: 이 사업의 예산은 애초 144억8900만원이었다. 개성공단 기업들의 대출 요구가 쏟아지자 다른 예산을 끌어다 쓴 것으로 보인다.] 

벼랑에 몰린 개성공단 기업들

예산이 없었던 걸까. 그렇지 않다. ‘개성공단 운영대출(융자)’ 사업의 경우, 2017년 이후 매년 150억원 내외의 예산을 책정해왔다. 하지만 집행액은 연간 26억원 수준에 머물렀다. 개성공단 기업에 지원할 수 있는 자금이 매년 남아돌았지만, 쓰지 않았다는 거다.

개성공단기업협회 관계자는 “올 초 대부분의 개성공단 기업들이 대출을 신청했는데, 41곳만 선정됐다”면서 “물론 대출을 해주는 정부 입장에선 돈을 갚을 수 있는 기업에 대출해주기 위해 선별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는 어떨까. 상황은 더 심각하다.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2023년 예산안에서 개성공단 관련 예산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통일부의 개성공단 관련 예산은 ‘개성공단 등 남북경제협력’ 프로그램에 속해 있다. 이 프로그램의 예산은 2022년 5974억원에서 2023년 4600억원으로 1374억원(23.0%) 감액됐다.

총 11개 세부사업이 있는데, 예산이 거의 동결된 2개 세부사업(개성공단 운영 제도와 개성공단 전자출입체계 운영ㆍ8억8300만원)을 제외한 9개 세부사업의 예산이 줄었다. 일례로 개성공단 기업들의 운영자금을 정책자금 형식으로 대출해줄 수 있는 세부사업인 ‘개성공단 운영대출(융자)’ 사업의 예산은 2022년 144억8900만원에서 2023년 82억8200만원으로 62억700만원 깎였다. 

통일부 관계자는 “남는 예산은 개성공단이 재개될 때를 대비해 책정해 놓은 것”이라면서 “다만 그 남는 예산도 대출을 위한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참고: 하지만 ‘개성공단 운영대출(융자)’ 사업은 개성공단 기업들의 경영정상화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올해 2월 이 사업 예산에서 대출이 진행된 것만 봐도 대출로 돌려 쓸 수 없는 예산이 아니다.]

‘이 예산이 줄었다는 건 윤석열 정부가 개성공단 재개 가능성을 희박하게 보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해도 되느냐’는 질문엔 “그렇게 봐도 무방하다”고 답했다. 

사실 윤석열 정부의 예산 삭감은 명분이 없지 않다. 재정건전성을 확보한다는 이유에서 수많은 예산을 삭감해서다. 그런데 더 중요한 명분이 있다. ‘개성공단 등 남북경제협력’ 프로그램 예산 중에는 불용액不用額이 많았기 때문이다.[※참고: 불용액은 세출 예산액 중 당해 회계 연도 내에 사용하지 못한 금액을 말한다.]

앞서 언급했던 ‘개성공단 운영대출(융자)’ 사업의 예산 불용은 단적인 예다. 쓰지 않는 돈을 깔고 앉아있던 문재인 정부가 차기 정부에 삭감의 명분을 준 것이나 다름없다.  

공단 폐쇄의 여파 끊어 내야

이런 상황의 함의는 뼈아프다.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로 시작된 개성공단 기업들의 어려움을 문재인 정부는 제대로 보듬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런 방침이 윤석열 정부에서 바뀔 것 같지도 않다. 이게 과연 옳은 걸까. 

개성공단 기업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개성공단 기업들도 이익을 좇아 개성공단으로 들어갔다. 그러니 개성공단 기업들에 특별한 혜택을 달라고 할 수도 없고, 그런 주장을 해서도 안 된다. 다만, 개성공단 기업들의 선택은 생명과 자산이 안전하게 보호된다는 신뢰에서 비롯된 거다. 그 신뢰를 무너뜨린 건 정부다. 그럼 정부엔 개성공단 기업들을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지 않은가. 그런데 개성공단 재개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고, 예산이 없는 것도 아닌데 지원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 우리 보고 먼 산만 보고 있으란 건가.” 

북한을 두고 화해 무드를 강조했던 문재인 정부나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윤석열 정부나 이런 실상을 알고 있을까. 쉽게 답을 하긴 어렵다. 보수든 진보든 강 건너 불구경할 땐 태도가 똑같은 법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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