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개성공단 입주기업 CEO 3명
동남아서 불량에 골머리 앓는 A사
메인공장도 없이 고군분투하는 B사
사옥에 공장까지 내다 판 C사
개성공단 “재개든 청산이든 마무리했으면”

지난 8월 1일은 개성공단이 멈춰선 지 딱 2000일 되는 날이었다. 너무도 긴 시간이 흘렀지만 개성공단의 재개는 기약이 없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이듬해에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개성공단 재개의 희망이 싹트기도 했지만 결국 공염불에 그쳤다. 그러는 사이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들의 가슴은 시커멓게 탔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곧 재개되겠지’란 희망고문을 겪는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 세명을 만났다. 

폐쇄 전 개성공단에서 근무 중인 북한 노동자들.[사진=더스쿠프 포토]
폐쇄 전 개성공단에서 근무 중인 북한 노동자들.[사진=더스쿠프 포토]

■ 불량품과 악전고투 = “일단 기존 물량들 실어서 보내고, 나머지는 다시 생산해주세요. 방법이 없잖아요. 고객사는 무슨 수를 쓰든 설득해 볼게요.”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A사를 방문했을 때 이용석(가명ㆍ62) 대표는 전화 통화를 하느라 바빴다. 내용을 들어보니 해외에 있는 공장에서 불량품이 쏟아져 나온 모양이었다.[※참고: A사는 속옷을 제조한다. 국내 최초로 접착브라와 접착팬티를 상용화한 기업이다.]

이 대표는 통화를 끝내고 앉자마자 한숨을 내뱉으며 이렇게 말했다. “개성공단만 살아 있었어도 이런 고생은 안 해도 될 텐데….” 

✚ 뭔가 중대한 문제가 생긴 것처럼 보입니다만.
“불량이 크게 났어요. 수습 못 할 정도는 아닌데 이런 일이 심심찮게 생기니까 힘이 빠집니다.”

✚ 개성공단 폐쇄 후에 해외로 공장을 옮긴 모양이죠?
“국내엔 샘플을 제조할 수 있는 공장만 있고, 모든 게 개성에 있었어요. 2000년대 중반에 중국 공장을 완전히 처분하고 개성공단에 분양을 받아 입주했죠. 2008년부터 가동한 개성공장이 메인공장이었어요. 이후 개성공장을 발판 삼아 2012년엔 캄보디아에도 공장을 지었어요. 개성공단 폐쇄 후엔 어쩔 수 없이 베트남으로 메인공장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최근 베트남 공장에서 불량제품이 나왔어요.” 

✚ ‘개성공단만 살아 있었어도’라면서 혼잣말을 하던데, 무슨 의미인가요?
“개성공단이었다면 이런 불량이 안 나왔을 거라는 거죠.”

✚ 개성공단이 동남아 지역 공장보다 월등히 낫다는 말인가요?
“당연하죠. 우선 현장을 자주 오갈 수 있어서 컨트롤이 됐을 겁니다. 언어 장벽도 없으니 지시한 대로 제품이 나왔을 거고요. 이직률이 낮아 숙련공을 키우기도 좋았죠. 숙련공을 키우면 생산성과 품질이 올라가니까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이 어디 있겠어요.”

✚ 개성에 비해 동남아 공장들은 손이 많이 가는 모양이네요?
“말도 마세요. 베트남 사람들은 1~2달러에도 직장을 옮깁니다. 심지어 캄보디아 사람들은 5진법을 써요. 숫자가 커지면 계산을 못 해요. 물론 계산이 가능한 이들이 현장을 지휘하지만, 쉽지가 않죠. 개성에선 3~6개월만 교육해도 충분히 시장 경쟁력이 있는 제품이 나오지만, 베트남이나 캄보디아에선 1년 이상을 교육해도 모자랍니다.”

개성공단이 가동 중이던 당시 설 합동차례를 지내는 개성공단 입주기업인들.[사진=더스쿠프 포토]
개성공단이 가동 중이던 당시 설 합동차례를 지내는 개성공단 입주기업인들.[사진=더스쿠프 포토]

✚ 그래도 임금이 낮아서 비용은 좀 줄일 수 있지 않나요?
“그리 낮지 않습니다. 노동집약적인 산업이라도 어느 정도 머리를 써야 하는데, 그런 인력을 구하려면 어느 정도는 비용을 지불해야 하죠. 게다가 시간이 지나도 생산성이나 품질이 크게 개선되지 않으니 별 이득이라고 할 게 없어요. 그러니 입버릇처럼 개성공장 타령이 나오는 거죠.”

개성공단이 폐쇄될 당시 정부를 비롯해 많은 이들은 “개성이 아니더라도 인건비가 낮은 지역은 얼마든지 있지 않느냐”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개성공단은 단순히 낮은 인건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장점들을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 그럼 개성공단 폐쇄 후 사업 규모가 많이 줄었겠네요. 
“개성공단 입주 초기 매출이 30억원 수준이었는데, 폐쇄 직전인 2015년 기준으로 매출 100억원을 넘겼습니다. 3배 이상 성장한 거죠. 게다가 저희는 완제품이 아니라 임가공을 주로 하는 곳입니다. 완제품을 생산한다면 4배의 부가가치가 더 붙습니다. 결국 완제품 기업으로 따지면 매출이 400억원인 셈이죠. 하지만 현재 매출은 40억원 수준으로 확 줄었습니다.” 

✚ 정부 지원이 좀 있지 않았나요?
“단어가 좀 잘못됐다고 봅니다. 우리 정부가 폐쇄 결정을 하는 바람에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 터전을 다 잃었잖아요. 그럼 지원이 아니라 보상을 해줘야죠. 그런 의미에서 정부의 보상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남북경협보험금이 있는데, 28억원 정도 받았어요. 개성에 설비투자한 돈만 78억원인데, 보상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 베트남 공장은 무슨 돈으로 지었나요?
“보험금에다 사재를 털고, 대출까지 받아서 지었죠. 총 40억원 넘게 들어갔습니다. 자의에 의한 대출도 아닌데 이자까지 내야 하니 갑갑합니다. 매출이 잘 안 나와서 투자비도 회수 못 하고 있는 상황이죠.”

✚ 개성공단이 재개된다면 다시 들어갈 생각이 있나요?
“내 재산이 거기에 다 있는데, 안 갈 이유가 있나요. 사실 설비를 쓸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가 아니에요. 그것보다 중요한 건 정부가 개성공단을 재개할 의지를 갖고 있느냐 같아요. 개성공단 재개를 위한 방법론은 전문가들이 이미 다 갖춰놓고 있는 걸로 압니다. 의지의 문제란 거죠. 개성공단 재개가 공약이었음에도 정권 말기까지 선언적인 말 한마디 없으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만약 재개하지 않을 거라면 이렇게 방치할 게 아니라 청산이라도 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기업들이 합당한 보상이라도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 메인공장 없이 방황 = A사와 달리 서울 왕십리에 있는 B사는 한가했다. B사는 환경친화적 의류 생산을 회사 설립이념으로 삼고, 각종 유니폼과 특수복 등을 생산해온 곳이다. 기자가 찾아갔을 때 B사 박영민(가명ㆍ60) 대표는 4층짜리 작은 사옥의 주차장을 개조하기 위해 건설업자와 얘기 중이었다.

박 대표는 “지금처럼 한가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면서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개성공단 폐쇄 후 제대로 된 공장을 갖추지 못한 B사는 협력업체를 운영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유지하고 있었다. 

✚ 개성공단 폐쇄 후 제대로 공장을 짓지 못한 이유가 있나요?
“자금 문제도 있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업하는 사람이라면 될 것 같은 일에는 어떻게든 돈을 투자하니까요. 그보다 개성공단만 한 곳을 찾을 수가 없어서죠.” 

✚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겠어요?
“공단 폐쇄 후에 공장을 다시 지으려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어요. 동남아와 아프리카 등 13개 나라를 다닌 것 같네요. 하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어요.”

✚ 인건비를 고려하면 충분히 해외로 갈 것 같은데 의외네요. 
“많은 이들이 노동집약형 산업은 인건비만 싸면 다 되는 것 아니냐고 착각을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예컨대 베트남의 경우, 예전엔 중소형 공장 위주였는데 이제는 대규모 공장 중심으로 바뀌고 있어요. 산업도 노동집약형에서 기술집약형으로 바뀌고 있죠. 많은 중소기업이 중국에서 철수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저도 중국에서 철수하고 2005년에 개성공단으로 들어갔죠. 결국은 타이밍인데, 개성공단 폐쇄 이후엔 너무 늦었던 겁니다.” 

북한 노동자들은 단순히 인건비가 싼 인력이 아니라 숙련공이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북한 노동자들은 단순히 인건비가 싼 인력이 아니라 숙련공이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 그래도 동남아 등으로 많이 나가지 않았나요?
“그렇게 나가서 고생만 하다 돌아온 경우가 많죠. 야반도주를 하는 기업들도 있어요. 개성공단 기업 중에 성공한 기업은 손에 꼽습니다. 임금 대비 개성공단만큼 품질과 생산성을 받쳐 줄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뭔가요?
“일례로 물류도 비용인데, 개성공단은 지리적으로도 최고의 효율성을 갖추고 있어요. 치안도 고려해야 합니다. 개성공단엔 자체 경비도 있고 펜스도 쳐 있어요. 반출입은 경비가 다 체크하죠. 북한이 제멋대로 하면 어떡하느냐고 걱정하는데, 겪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금세 알아차려요. 그들도 상식이란 게 있어요. 반면 아프리카 같은 데선 공장을 지으려면 일단 담이 3m 이상이어야 하고, 경비는 실탄을 장전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비용 측면에서 배(인건비)보다 배꼽(부수적 비용)이 더 큰 상황인 거죠. 언어가 통한다는 것도 매우 유용합니다. 게다가 북한 노동자들은 기계를 닦고 기름칠하는 게 습관화돼 있어요. 사업가는 그런 걸 다 고려해야 해요. 개성공단은 그런 면에서 월등한 이점이 있습니다.”

✚ 메인공장 없이 사업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어쩔 수 없이 동남아 현지에 협력업체를 두고 일을 맡기고 있는데, 툭하면 후회할 만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니 불량도 많고, 생산성도 늘 제자리고요.”

✚ 거래처는 계속 유지가 되는 건가요?
“말도 마세요. 지난 2014년에 매출 100억원을 기록했는데, 지금은 사업 명맥만 겨우 유지하는 수준입니다. 개성공단이 폐쇄되면서 납품을 제대로 다 못했잖아요. 거래처들이 그때 대거 정리됐어요. 유형의 손실 외에 무형의 손실을 크게 본 셈입니다. 그뿐인가요. 실컷 키워놓은 양질의 기술인력들까지 다 잃었어요.”

근거 없는 억지 주장의 폐해

이런 이유들로 인해 지난 5년간 박 대표는 다른 사업을 알아보기도 했다. 건축자재 업체를 인수할지 타진하기도 했고, 의료기기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시제품을 만들기도 했다. 리사이클링 사업도 고민했다. 하지만 박 대표는 “이젠 나이를 먹어서인지 뭔가 새로운 걸 도모하기가 쉽지 않더라”고 털어놨다. 

✚ 개성공단이 재개해서 다시 들어가라면 갈 의향이 있나요?
“아마 사업을 접지 않고 있다면 누구라도 다시 들어가려고 할 겁니다. 제 나름 젊은 시절을 바쳐서 일군 공장인데 하루아침에 날리게 됐으니 안타깝고 억울하잖아요. 공장을 돌릴 수 있느냐 없느냐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근거도 없는 정부의 억지 주장 때문에 우리 기업인의 명예도 실추됐는데, 그런 것들도 어떤 식으로든 다 회복하고 싶지 않겠어요?”

여기서 박 대표가 말하는 억지 주장이란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 폐쇄의 빌미로 삼았던 내용을 말한다.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 기업들이 북한 노동자들에게 지급한 임금을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쓴다고 주장하면서 개성공단을 폐쇄했다.

하지만 그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개성공단 폐쇄 직후인 2016년 2월 15일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증거가 있느냐”는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당시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확증은 없다”고 답했다. 이후 홍 장관은 “오해를 일으켜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문제는 국민 상당수가 여전히 박근혜 정부의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 개성공단이 재개될 수 있을 거라 보나요?
“그래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이는 개성공단 입주기업들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개성공단이 폐쇄되면서 포장재를 대던 방산시장, 원부자재를 공급하던 동대문시장, 개성공단 제품의 판로였던 동대문 패션타운이 다 죽었어요. 코로나19로 인한 소비 침체가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에요. 지금도 동대문 패션타운의 임대업자들이 툭하면 목숨을 끊습니다. 신문에도 안 나요. 그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재개돼야 합니다.”

✚ 재개를 위해 필요한 게 뭐라고 보시나요?
“정부가 잘못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볼 때 개성공단 폐쇄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에요.”

✚ 그게 무슨 말인가요?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8년 3월에 김하중 통일부 장관이 개성공단 기업인들을 모아놓고 ‘북한이 핵포기를 하지 않으면 개성공단과 금강산의 유지와 발전은 없다’고 했어요. 이전까지의 모든 남북합의를 모조리 무시하는 발언이었죠. 당시 북한에서 비난 성명도 냈습니다. 이후에 출입제한과 출입정지가 반복됐죠. 한 기업인은 2011년 김정일 사망으로 노동자들이 식음을 전폐하자 사기 진작을 위해 조문을 다녀왔는데, 이후 통일부로 불려가서 반성문을 쓰고 호되게 혼이 났어요. 그런 후에 한두달 있다가 세무조사를 받았고, 결국 공단 폐쇄 후인 2019년에 폐업했죠. 정치적 입장에 따른 접근방법의 차이가 이런 결과를 냈다고 봅니다.”

■ 생존 위한 결단 = 개성공단 기업 중에서도 노동집약형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그나마 노동자를 찾으면 뭐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기술과 연구개발(R&D)로 먹고사는 기업은 인재를 구하는 게 그리 쉽지 않다.

개성공단이 폐쇄된 지 5년이 훌쩍 흘렀다.[사진=연합뉴스]
개성공단이 폐쇄된 지 5년이 훌쩍 흘렀다.[사진=연합뉴스]

그래서 경기도 시흥의 자동차부품 제조사인 C사는 개성공단 폐쇄 후 기존 직원들 중 한명도 잃지 않으려 모든 걸 내다 팔아야 했다. 유정기(가명ㆍ64) C사 대표는 그렇게 살아남았고, 결국 단 한명의 직원도 내보내지 않았다. 오히려 직원이 더 늘어났다. 그렇다고 개성공단 폐쇄 후 별 피해를 입지 않은 건 아니다. 유 대표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모두 잃고 처음부터 시작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 개성공단 폐쇄 후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력 구조조정도 불가피했을 것 같은데요. 
“일반적으로는 그렇죠. 하지만 우리의 주요 사업은 자동차 부품을 만들고, 개성공단 진출 기업들에 IT서비스도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R&D가 매우 중요했고, 기술 분야에 전문지식을 가진 인력이 필요했죠. 그래서 우리는 김일성종합대학이나 김책공업종합대학을 졸업한 북한의 고급인력 100여명을 연구원으로 고용했습니다. 나머지는 생산직으로 400여명 고용했죠. 그런데 공단이 폐쇄된 후 그 인력을 모두 잃었습니다. 인재를 더 잃어선 안 되는 상황이었죠. 안 그러면 성장을 할 수가 없으니까요.”

✚ 인력 유지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한 건가요?
“어떻게든 현금을 마련해야 했죠. 그래서 공단 폐쇄 직후 인천에 있던 사옥과 공장, 부천공장, 시화공단 내 공장 등을 다 팔았어요. 그렇게 팔아서 마련한 현금이 100억원쯤 됐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회사를 정리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어요. 어떻게 일궈온 기업인데….”

처분 가능한 자산을 모두 매각한 C사는 현재 한국산업기술대학교 산학융합관에 입주해 있다. 

✚ 어쩔 수 없이 개성공단에 두고 온 설비나 자재보다 북한 고급인력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클 듯합니다. 
“그런 면이 없지 않습니다. 저는 개성공단 설립 초기에 입주했습니다. 당시 인프라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는데, 가장 먼저 한 일이 양질의 노동력을 양성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직접 교육을 했죠. 북한에서도 처음엔 의아해 했는데, 제가 ‘5~10년 앞을 내다보고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적극적으로 응대하더군요. 그렇게 어렵게 키운 인력을 한순간에 잃었으니 오죽했겠습니까.” 

✚ 개성공단이 재개된다면 재입주할 계획이시죠. 
“그렇습니다. 내 재산이 모두 개성에 있는 셈이잖아요. 200억원 정도를 투자했는데, 남북경협보험금으로 40억여원을 받았어요. 정부는 장부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들만 손실로 인정한다고 했는데, 사실 정부가 인정한 내역조차 보상해주지 않았어요. 그러니 어떻게든 활용해야죠. 지금 사업을 안정화해 놓으면 개성공단 재개는 플러스 알파로 작용할 것이라 봅니다.”

✚ 손실 복구는 좀 됐나요?
“그럴 리가 있나요. 아직도 복구 중입니다. 인력 외에 중요한 건 거래처였는데, 아쉽게도 많이 끊겼어요. 개성에서 생산한 제품들은 주로 중국에 수출했는데, 공단 폐쇄로 납품을 못 해서 중국 고객사가 청산되기도 했습니다. 그 바람에 우리도 약 400만 달러를 날려야 했죠. 돈을 받을 수 없었으니까요. 지금은 신뢰 회복에 중점을 두고 차근차근 회사를 되살리고 있습니다.”

✚ 개성공단 재개가 가능할 거라 보나요?
“사실 큰 기대를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기업가는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냅니다. 개성공단도 그렇게 생겨난 거니까요.”

✚ 개성공단이 재개된다면 어떤 전제조건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전제조건보다 중요한 건 ‘정부가 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인 듯합니다. 정부는 개성공단을 그냥 방치하고 있어요. 개성공단을 재개하려는 움직임도, 청산하려는 움직임도 전혀 없습니다. 이 때문에 개성공단 기업인들이 모든 손실을 감당하고 있죠. 원치 않는 빚까지 내가면서요. 일부에선 그동안 개성공단을 발판으로 돈 좀 벌지 않았느냐고 꼬집는데,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비용을 다 잃은 것도 맞습니다. 기업인에게 그것만큼 큰 손실은 없습니다. 개성공단 폐쇄는 절차상의 하자가 있었어요. 그런 만큼 재개를 하든 청산을 하든 법 절차에 따라 기업인들을 구제할 방안을 내놨으면 좋겠어요. 우린 남한과 북한 당국이 만든 엄격한 법률을 다 지켰어요. 그런데 왜 국가가 보호해주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국민재산권 왜 보호하지 않나

개성공단 폐쇄 후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헌법소원을 냈다. 정부의 결정이 헌법상 재산권을 침해했다는 이유에서다. 헌법재판소는 다툴 여지가 있다고 보고 회부 결정을 내렸는데, 이게 바로 유정기 대표가 개성공단 폐쇄에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근거다. 하지만 최종 결정은 아직 나오지 않았고, 쉽게 나올 것 같지도 않다. 그러는 사이 개성공단 입주기업 125곳 중 20여곳이 폐업을 하거나 잠정적으로 사업을 중단했다.

그런데도 통일부는 개성공단 기업의 실태조차 파악하지 않고 있다. 개성공단 문제에 손을 놓고 있다는 기업인들의 지적이 볼멘소리가 아니란 얘기다.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시계는 5년째 멈춰 있지만 얼마나 더 움직이지 않을지 모른다. 기약 없는 기다림은 ‘희망고문’이다. 정부는 지금 뭘 생각하고 있는 걸까.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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