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14 상위모델에 힘 준 애플
애플식 등급 나누기 전략 분석

애플의 아이폰14 판매량이 시장 기대치를 밑돈다는 분석이 나온다.[사진=뉴시스]
애플의 아이폰14 판매량이 시장 기대치를 밑돈다는 분석이 나온다.[사진=뉴시스]

아이폰은 새 모델이 나올 때마다 늘 ‘시험대’에 오릅니다. 지금까지는 숱한 우려를 이겨내고 성공신화를 써 왔습니다만, 이번 아이폰14의 경우는 상황이 좀 다릅니다. 판매량이 저조하다는 분석과 통계가 이곳저곳에서 나오고 있어서입니다. 무엇이 바뀌었길래 애플이 고전하고 있는 걸까요? 더스쿠프(The SCOOP)가 애플의 새 아이폰을 자세히 들여다봤습니다.

애플이 아이폰14를 국내에 출시(10월 7일)한 지 한달이 지났습니다. 애플이 구체적인 판매량을 공개하진 않지만, 론칭 한달여가 흐르면 업계에 도는 이런저런 소문으로 신제품의 흥행 여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통신사에서 공개하는 사전예약 판매량이나 오픈 첫날 애플 스토어(오프라인 매장)의 분위기, 증권사에서 추측하는 아이폰14 추가 생산량 등을 통해서죠.

사전예약에선 일단 합격선을 넘어선 듯합니다. SK텔레콤 1차 사전예약은 첫날에 모두 마감됐습니다. KT도 “아이폰13 때보다 사전예약 주문량이 90% 늘었다”고 밝혔습니다. 정식 출시일 때도 반응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애플 스토어에 대규모 인파가 몰리면서 준비해둔 수량이 모조리 동났고, 애플 공식 사이트에서도 3~4주가 지나야 제품 수령이 가능할 정도로 인기가 뜨거웠죠. 이때까지만 해도 아이폰14의 흥행을 의심하는 이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의문’이 커졌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아이폰14의 판매량이 저조하다는 분석과 통계가 나오면서입니다. 시장조사기관 마켓워치에 따르면 중국 내 아이폰14 론칭 이후 3일간 판매량은 98만7000대로 아이폰13 때보다 10.5% 감소했습니다. 아이폰의 중국 시장점유율이 46%(2분기 기준·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달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무시할 수 없는 통계입니다.

아이폰의 인기가 이전보다 시들하다는 분석은 또 있습니다. 미국의 디스플레이 시장조사업체 ‘디스플레이 서플라이 체인 컨설턴츠(DSCC)’의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애플은 아이폰14 기본모델에 쓰이는 디스플레이 패널을 아이폰13 때보다 38% 적게 주문했습니다. 이는 판매량이 부진한 아이폰14의 생산량을 줄이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럼 아이폰14를 두고 이런 시그널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요? 가장 큰 이유는 애플이 아이폰14에 ‘등급 나누기 전략’을 도입했다는 겁니다. 아이폰14는 기본모델인 아이폰14 외에 아이폰14 플러스·아이폰14 프로·아이폰14 프로 맥스 등 총 4가지로 나뉩니다.

지금까지 애플은 디스플레이 크기나 화질, AP(스마트폰의 모든 명령을 처리하는 핵심 부품·Application Processor) 사양 등에 따라 아이폰 종류를 분류해 왔습니다. 핵심적인 기능은 모든 모델이 공통으로 갖추고 있었죠.

이번엔 좀 다릅니다. 애플은 ‘아이폰14의 정수’로 꼽히는 기능들을 상위모델인 아이폰14 프로에만 추가했습니다.[※참고: 여기서부터는 독자분들의 편의를 위해 아이폰14와 아이폰14 플러스는 ‘아이폰14’로, 아이폰14 프로와 아이폰14 프로 맥스는 ‘아이폰14 프로’로 묶어 설명하겠습니다.]

‘프로’에만 힘 싣는 애플

상위 버전인 아이폰14 프로에만 적용한 기능을 하나씩 살펴볼까요? 대표적인 건 ‘다이내믹 아일랜드’입니다. 이는 아이폰 디스플레이 전면에 있는 검은색의 카메라 주변 공간을 활용한 UI(사용자 인터페이스)입니다. 디스플레이가 아닌 공간을 마치 UI의 일부인 것처럼 활용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검은 공간이 알약 모양으로 커지면서 날씨를 알려주거나 지금 재생 중인 음악을 보여주는 등 다양한 정보를 이용자에게 제공하는 방식이죠.

다이내믹 아일랜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경계를 허물었다” “기술의 한계를 디자인으로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아이폰14의 혁신 요소로 떠올랐습니다. 사례 하나를 더 볼까요? 스마트폰을 활성화하지 않고도 시간과 배경화면을 볼 수 있는 ‘상시표시형 디스플레이’ 기능도 호평을 받고 있는데, 애플은 이 역시 아이폰14 프로에만 적용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기본모델인 아이폰14가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받는 건 당연해 보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애플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메인을 장식하는 건 아이폰14가 아닌 아이폰14 프로입니다. 구매 페이지에서도 아이폰14 프로가 아이폰14보다 먼저 소개됩니다. 애플이 상위모델에 힘을 제대로 싣고 있다는 얘긴데, 이는 기본모델을 강조해 온 애플의 기존 입장과 확연히 다릅니다.

그럼 애플은 왜 이런 전략을 내세운 걸까요? 익명을 원한 한 스마트폰 판매자는 “프리미엄 전략을 구사하는 애플이 ‘등급 나누기’로 프리미엄 전략을 한층 더 강화했다”면서 “이는 소비자에게 더 비싼 상위모델을 강요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아이폰14 프로의 가격은 155만원으로 아이폰14(125만원)보다 30만원 더 비쌉니다. 전작인 아이폰13의 기본모델 가격이 109만원이었으니, 아이폰 이용자들은 이전보다 46만원 더 비싼 값을 주고 아이폰14 프로를 구매해야 합니다. 아이폰14의 ‘혁신’을 제대로 즐기려면 말이죠.

문제는 이런 판매전략이 소비자들에게 반발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은희 인하대(소비자학)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시죠. “요즘 스마트폰 가격이 100만원을 우습게 넘으면서 소비자 피로도가 많이 쌓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더 비싼 스마트폰 판매를 강요하면 소비자들은 제조사의 경영방침에 불만을 품게 된다. 최종적으론 브랜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물론 애플의 ‘한층 더 강화된 고급화 전략’이 실패했다고 말하기는 아직 이릅니다. 아이폰14 대신 아이폰14 프로를 선택하는 소비자들이 늘었기 때문입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사전예약 단계에서 아이폰14 프로와 아이폰14 프로 맥스에 수요가 크게 쏠렸다”면서 “예약자의 절반 이상이 상위 모델을 선택했다”고 귀띔했습니다. 가격이 190만원에 달하는데도 일찌감치 품절됐던 아이폰14 프로 맥스는 중고 시장에서 웃돈까지 붙어 팔리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고급화 전략 통할까

그럼에도 우려는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스마트폰이 아이폰13 기본모델(5.5%·카운터포인트리서치 4월 기준)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기본모델 대신 상위모델을 밀어주는 애플의 전략이 효과적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아이폰14의 흥행을 막는 ‘예상치 못한 변수’도 있습니다. 지난 2일 아이폰 생산량의 85%를 차지하는 중국 폭스콘 공장에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이유로 7일간의 봉쇄 조치가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업계에선 이번 봉쇄 조치로 인해 11월 아이폰 생산량이 절반으로 줄어들 거란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아이폰14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 애플로선 꽤나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애플은 모든 우려를 딛고 이번에도 ‘흥행신화’를 써 내려갈 수 있을까요? 전망이 그리 밝지는 않습니다.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