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보관금 미환급 논란 이후
‘적극적인 환급’ 약속은 빈말
이메일로 소멸성 쿠폰 지급
환급 관련 보도자료조차 없어
전에도 ‘소극적 환급’으로 수익

지난해 6월 코레일이 철도회원에게서 받은 예약보관금 70억여원을 환급해주지 않고 수익으로 처리해 감사원 지적을 받았다. 논란이 불거진 지 1년 반이 흐른 지금, 코레일은 당시 약속처럼 ‘적극적인 환급 절차’를 진행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코레일이 철도회원의 예약보관금을 적극적으로 환급해줄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사진=뉴시스]
코레일이 철도회원의 예약보관금을 적극적으로 환급해줄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사진=뉴시스]

“고객의 예약보관금을 수익으로 처리해선 안 된다. 예약보관금의 반환 업무를 철저히 하라.” 지난해 6월 감사원이 코레일(한국철도공사) 정기감사 후 내놓은 지적이다. 이런 지적이 나온 이유는 뭘까.

1989년부터 2004년까지 철도청은 철도회원제를 운영했다. 인터넷을 통한 예약시스템이 자리 잡기 전이었는데, 철도회원이 되면 기차 예매를 쉽게 할 수 있었다. 다만, 철도회원이 되려면 예약보관금 2만원을 내야 했다. 고객이 승차권 예약을 해놓고 이용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위약수수료를 담보할 목적이었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 일종의 ‘보증금’이었다. 

2005년 1월, 철도청 업무가 새로 설립된 코레일로 넘어가면서 철도회원제 역시 고스란히 이관됐다. 코레일은 철도회원 206만명, 예약보관금 412억원을 넘겨받았다. 철도회원제는 코레일에 이관된 후에도 유지되다가 2007년 ‘코레일 멤버십’ 제도가 생기면서 폐지됐다.

이에 따라 코레일은 철도회원에게 회원 탈퇴를 안내하고, 예약보관금 환급 신청을 받았다.[※참고: 예약보관금을 환급받을 수 있는 대상은 2004년 이전에 예약보관금을 납부한 철도회원이다.]

하지만 코레일은 412억원 중 이자 8억원을 제외한 70억여원을 돌려주지 않고 잡수익으로 처리했고, 이게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됐다. 코레일 측은 “고객 정보가 바뀐 이들이 많아 모두 돌려주지 못했다”고 해명했지만 오류가 있었다. 

코레일은 사전에 ‘예약보관금을 수익으로 처리하면 법적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는 법률자문을 받았다. 예약보관금의 수익 처리가 옳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아울러 예약보관금을 환급받지 못한 철도회원 중 일부는 ‘코레일 멤버십’으로 재가입했는데, 이들의 예약보관금을 환급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도 코레일은 환급해야 할 고객의 돈을 수익으로 처리하면서 정작 2019년 자신들의 성과급은 지급 기준까지 무시한 채 더 많이 지급해 공분을 샀다. 논란이 커지자 코레일은 “적극적인 환급에 나서겠다”고 밝히면서 사태 진화에 나섰다. 

[사진 | 뉴시스]
[사진 | 뉴시스]

 

그럼 코레일은 예약보관금 환급 절차를 제대로 진행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우선 코레일의 예약보관금 환급 시스템을 잠깐 보자. 코레일은 홈페이지나 코레일이 운영하는 기차역 등에서 고객이 예약보관금을 현금으로 받을지 쿠폰으로 받을지 선택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문제는 코레일이 정보를 갖고 있는 철도회원 고객(코레일 멤버십으로 재가입한 회원) 중 예약보관금 환급 신청을 하지 않은 이들에겐 이메일을 통해 ‘소멸성 쿠폰’을 지급했다는 점이다.

코레일 측은 “법적 자문을 받아 유효기간이 1년이지만 최대 5년까지 자동연장되는 소멸성 쿠폰을 발행했다”면서 “쿠폰이 싫으면 현금으로 재요청도 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맹점이 있다. 쿠폰을 이메일로 받았지만, 고객이 여러 이유로 이메일을 확인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바람에 기한이 소멸됐을 경우엔 예약보관금을 돌려받을 수 없다. 

코레일이 적극적인 홍보를 한 것도 아니다. 코레일이 예약보관금을 환급하고 있으니 찾아가라는 보도자료를 낸 건 지난 2012년 3월 단 한차례뿐이다. 지난해 감사원 지적 후엔 관련 보도자료를 아예 내지 않았다.

‘적극적인 환급’ 하고 있나

이런 면에서 코레일이 책정한 소멸시효도 다퉈 볼 여지가 있다. 코레일이 ‘최대 5년’을 쿠폰 소멸시효로 잡은 건 상법상의 ‘채권 소멸시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 소멸시효는 채권자가 해당 기간에 권한을 적극 행사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김정수 한일법무법인 변호사는 “일반적으로 채권을 인지한 채권자들은 적극적으로 채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실제로 채권이 소멸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면서 “현실에선 시효가 끝나는 시점에 연장되는 게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코레일이 고객들에게 예약보관금을 받아가라고 적극적으로 알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코레일이 소극적인 홍보로 고객의 이익을 자신들의 수익으로 잡은 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설명했듯 코레일은 2005년에 철도청이 운영하던 철도회원제를 이관받았다. 코레일이 ‘코레일 멤버십’을 시작하면서 철도회원제를 없앤 건 2007년이다. 2005, 2006년에도 철도회원제를 운영했다는 얘기다. 

그사이에 운영된 철도회원제의 특이사항은 철도회원에게 예약보관금을 요구하지 않는 대신 카드발급비(1만원)와 가입비(1만원)를 받았다는 거다. 그러면서 코레일은 “가입비는 회원관리를 위해 필요한 운영비로 쓰이기 때문에 환급되지 않는다”고 공지했다.[※참고: 당시 회원제도의 명칭은 KTX종신회원제였다. 이름이 바뀌긴 했지만, 이전 철도청은 철도회원들에게 카드발급비와 가입비 등을 받지 않았다는 걸 감안하면 사실상 환급되지 않는 예약보관금을 받은 거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2007년 ‘코레일 멤버십’이 도입되면서 누구든 회원가입(무료)만 하면 모든 철도를 예약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철도회원의 혜택은 사라졌다. 이에 따라 코레일은 2005~2006년에 가입한 철도회원에게 위로금 명목의 쿠폰을 제공했다. 지급 방식은 그때도 이메일이었다. 

하지만 예약보관금처럼 이 쿠폰이 이메일로 지급된 사실조차 모르는 철도회원이 상당수였다. 뒤늦게 코레일이 쿠폰을 지급했다는 걸 확인한 이들이 문제제기를 했지만, 코레일 측은 “이미 지급된 쿠폰을 재발급하는 건 어렵다”면서 발을 뺐다. 이런 답변을 받은 한 고객은 “해당 쿠폰은 이벤트성이 아니라 기존 권리를 박탈당한 대가로 받은 것인데, 무작정 소멸됐다고 하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과거에도 ‘소극적 환급’으로 수익

어쨌거나 감사원 감사로 예약보관금이 도마에 오른 지 1년 반이 흘렀다. 코레일이 아직까지 반환하지 않은 예약보관금은 64억6000만원에 달한다. 그럼에도 코레일은 여전히 이메일로 소멸성 쿠폰만 지급할 뿐 약속한 것처럼 ‘적극적인 환급’을 하는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고객 돈 중 일부가 ‘눈먼 돈’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거다. 이래도 괜찮은 걸까.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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