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누적 적자 심각한 상황
전기요금 정상화가 해법
전기요금 인상 국민 설득 필요해
한전 내부 혁신하고 있는지 의문

한국전력공사의 적자가 심각하다. 전력시장의 이상한 가격 결정 구조 탓인데, 쉽게 말하면 ‘전기요금 정상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한전이 흑자든 적자든 ‘전기요금 정상화’는 풀어야 할 숙제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살펴봐야 할 점도 있다. 적자 속에서도 성과급 잔치를 벌인 한전 스스로도 혁신의 고삐를 조여야 한다. 그게 없다면 ‘전기요금 정상화’는 명분을 갖기 힘들다. 

한전 회사채 발행 한도 조정으로 채권시장이 더욱 경직돼 대기업들조차 회사채 발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사진=뉴시스]
한전 회사채 발행 한도 조정으로 채권시장이 더욱 경직돼 대기업들조차 회사채 발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사진=뉴시스]

한국전력공사가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전은 올해 3분기에만 7조5309억원의 적자를 냈다. 2022년 1~3분기 누적 적자는 21조8342억원으로 늘어났다. 일부에선 ‘4분기에도 3분기 못지않은 적자가 날 가능성이 높다’면서 올해 누적 적자가 30조원을 넘길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막대한 적자에 운영자금까지 부족해진 한전은 지난 11월 4조3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1981년 한전 설립 이후 한달에 4조원이 넘는 회사채를 발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때문에 한전의 누적 회사채 규모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올해 10월 기준 누적 회사채는 약 27조원으로 지난해(11조7700억원)보다 2배 이상 늘었다. 갚아야 할 돈이 늘고, 이자 부담이 커져서 재무구조가 나빠지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와 국회에선 다양한 해법을 모색 중이다. 우선 지난 11월 24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선 한전 회사채의 발행 한도를 늘리는 한전법 일부 개정안을 의결했다. 기존 발행 기준 ‘자본금과 적립금을 더한 금액의 2배’를 5배로 늘렸다. 쉽게 말해 빚을 더 낼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셈이다.

하지만 회사채 발행 한도를 늘리더라도 한전의 적자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채권시장에서 한전채 발행 한도 조정을 달갑게 여기는 것도 아니다. 한전채가 가뜩이나 경직된 채권시장의 자금을 모조리 빨아들일 수 있어서다. 

그러자 금융당국은 한전채 발행을 줄이기 위해 은행들이 한전에 대출을 해주도록 종용했다. 채권 발행 한도는 늘리면서 실제 채권은 발행하지 못하게 막은 거다. 채권시장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이상한 정책이다.[※참고: 이런 이유에서였는지 긴급 시 최대 6배까지 한전채를 발행할 수 있도록 한 한전법 개정안은 12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그러자 국회 산자위 소속 국민의힘 위원들은 본회의 직후 성명서를 통해 산자위에서 합의하고 법사위 야당 의원들도 반대하지 않은 개정안이 부결됐다면서 “12월 임시국회에서 한전법 개정안을 다시 발의해 처리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정부는 전력도매가격(SMP) 상한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SMP 상한제는 한전이 발전사의 전기를 살 때, 그 기준이 되는 SMP에 상한선을 두는 제도다. 지난 11월 25일 국무조정실 규제개혁위원회를 통과한 ‘전력거래가격 상한에 관한 고시ㆍ규칙 개정안’이 전기위원회 심의(29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승인(30일) 절차를 끝내면서 12월부터 실시하게 됐다. 개정안의 골자는 ‘직전 3개월 평균 SMP’가 ‘10년 평균 SMP’의 상위 10%보다 높으면 1개월간 SMP 상한을 제한하겠다는 게 개정안의 골자다.

한전으로서는 지출을 줄일 수 있는 제도다. 다만 SMP 상한제는 1년 후 사라지는 일몰제다. 한전의 회사채 발행 한도 조정과 마찬가지로 한전의 적자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은 아닌 셈이다. SMP 상한제에 따른 신재생에너지 업계의 불만도 적지 않다. 

이익을 더 가져갈 수 없으니 당연하다. 특히 겨울철은 전력 수요가 급증해 SMP가 오르는 시기다. 그런데 SMP 상한제 때문에 기존 SMP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전기를 판매해야 하니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다. 민간 발전업계는 행정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일시적인 SMP 상한제 실시가 한전 적자 해소에 얼마나 도움을 줄지는 의문이다.[사진=뉴시스]
일시적인 SMP 상한제 실시가 한전 적자 해소에 얼마나 도움을 줄지는 의문이다.[사진=뉴시스]

 

이처럼 정부와 국회가 내놓은 조치들은 한전의 짐을 덜어줄 수는 있지만, ‘눈덩이 적자’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안은 아니다. 그럼 뭘 바꿔야 할까. 전문가들은 전력시장의 이상한 가격 결정 구조부터 손봐야 한다고 지적한다.[※참고: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한전 적자의 원인이라는 일부의 주장은 ‘한국전력 적자와 ‘기승전 탈원전’의 오류(통권 499호)’ 기사를 통해 반박했다.] 

‘이상한 가격 결정 구조’에는 다양한 내용이 포함된다. 무엇보다 정부의 전기요금 인상 억제책은 살펴봐야 한다. 한전이 발전사로부터 전기를 살 땐 연료비 변동을 가격에 반영한다. 하지만 전기를 팔 때는 연료비 변동 상황을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게 쉽지 않다. 정부가 국민의 반발을 우려해 전기요금의 상승을 정책적으로 막고 있어서다. 

전력생산 원가가 불투명하다는 점도 문제다. 사회적 비용을 포함하지 않은 전력생산 원가는 에너지원별 전력 단가에 왜곡을 불러 ‘싸게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원자력 에너지를 이용한 전력생산 원가에 원전폐기물 처리 비용을 포함하지 않아 원전을 ‘값싼 전력생산원’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이상한 건 또 있다. 전력사용량이 많을수록 전기요금도 비싸져야 하는데,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지난 9월 이동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산업용 전력사용량 상위 기업 현황’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지난해 전기를 가장 많이 사용한 상위 20개 기업은 8만7794GWh의 전기를 사용하고, 8조2810억원의 요금을 냈다. 그런데 일반 국민(1572만8000가구)은 7만9915GWh의 주택용 전기를 사용하고, 8조7232억원의 요금을 냈다. 

일반 국민이 전기를 많이 사용한 상위 20개 기업들보다 전기는 9.8% 적게 썼는데도 요금은 5.3% 많이 낸 셈이다.홍종호 서울대(환경대학원) 교수는 “‘전기요금 정상화’ 얘기가 나온다는 건 현재의 전기요금 체계가 매우 비정상이기 때문인데, 정부도 국회도 이런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온 게 사실”이라면서 주장을 이어갔다. 

“전기요금을 올린다 하면 국민이 싫어하니까 정치권에서 나서지 않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한전의 적자 위기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우린 최근 채권시장을 통해 한전의 대규모 적자가 한전의 위기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실감했고, 지금은 기후변화 대응까지 고려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전기요금 정상화’를 통해 전력시장 구조를 바꾸자고 국민을 설득할 좋은 시점이다.”

문제는 ‘전기요금 정상화’ 주장에 힘이 실리려면 한전 역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한전이 내놓은 대안은 자산 매각과 지난 6월 전기요금 일부 인상을 앞두고 임직원들이 성과급 일부를 반납한 게 전부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조여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면서도 8625억원의 성과급을 나눠 가진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어떤 희생도 하지 않았다.[※참고: 지난 9월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실이 한전과 11개 자회사로부터 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른 것으로, 2017~2021년 한전과 자회사들에 지급된 성과급은 총 2조4869억원이다.]

적자가 3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올해도 한전의 자구 노력은 없다. 한전의 분기당 직원 평균급여는 2134만원(올 3분기 기준)인데, 2021년(2109만원)이나 2020년(2095만원)보다도 더 증가했다. 

이래서는 전문가들의 ‘전기요금 정상화’ 주장에 힘이 실릴 수 없다. 익명을 원한 전력시장 관계자는 “한전이 흑자가 났든 적자가 났든 왜곡된 가격구조는 개선하는 게 맞다”면서도 “하지만 한전이 ‘전기요금 정상화’를 위한 분위기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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