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 창업 3편 ❶ 반도체 장비 시장
반도체 소부장 자립화율 현저히 낮아
장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현실
2030년까지 자립화율 50% 목표

수요가 감소하면서 반도체 시장이 혹한기에 접어들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수요가 감소하면서 반도체 시장이 혹한기에 접어들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활황이던 반도체 시장이 다시 혹한기에 진입했다. 2023년은 2022년보다 더 어려울 거라는 전망이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혹한기를 슬기롭게 보내야 하는 게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 모두에게 주어진 숙제라면, 한국 반도체 산업엔 숙제가 하나 더 있다.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의 자립이다. 

2021년 공급은 부족하고 수요가 폭발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유례없는 위기를 맞았던 수많은 산업들과 달리 반도체는 활황이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규모는 그해 6000억 달러(약 760조원)에 달했다. 전년 대비 24.2%나 성장한 규모였다. 반도체 설계·공급·제조·판매 관련 16개 미국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를 지수화한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SOX)도 큰 폭으로 성장했다. 2020년 1월 2일 1887.9였던 SOX는 2021년 12월 27일 4039.5까지 치솟기도 했다. 

이런 활황 속에서 한국 반도체도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9년 연속 수출 1위 산업이란 찬사를 받으면서 한국경제를 이끌었다. 그런데 2022년부터 분위기가 완전히 급반전했다. 수요가 꺼지면서 반도체 산업이 급격하게 하향 곡선을 탔다.

특히 우리나라의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차갑게 식었다. 반도체 활황을 틈타 너나 할 것 없이 실탄을 여기저기 쏟아부었는데, 그 투자는 경기침체가 좀처럼 풀리지 않으면서 악재로 전락했다. PC와 모바일 수요가 급감한 게 결정타로 작용했다. 여기에 미국을 비롯한 주요 반도체 수출국들이 ‘중국 수출 제한’에 나서며 패권 싸움을 하고 있는 것도 악재라면 악재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2023년 반도체 전망 보고서’에서 “팬데믹 기간 PC 출하량은 2년 연속 10% 중반에 달하는 성장세를 기록했지만 2022년 18% 감소한 데 이어 2023년에 13%가량 더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하며 “PC와 마찬가지로 스마트폰도 2023년 수요를 견인해줄 모멘텀이 매우 약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2023년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의 매출은 약 30% 감소할 것”이라며 “일부 업체는 적자에 진입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는 30% 수준인 반도체 소부장 자립화율을 2030년 5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사진=뉴시스]
정부는 30% 수준인 반도체 소부장 자립화율을 2030년 5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사진=뉴시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 역시 2023년 글로벌 반도체 매출이 전년 대비 4.1% 역성장할 거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으며 2022년 12.6% 역성장했던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더 깊은 침체(17.0%)에 빠질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런 시장 상황과 전망을 반영하듯 SOX는 지난해 2532.11로 한해를 마무리했다. 1년 전 3946.17과 비교하면 무려 35.8%나 하락했다. 올해 역시 2500.99(1월 3일 기준)로 부진한 출발을 알렸다. 전세계적으로 반도체 시장의 혹한기가 깊어지고 있다는 걸 방증한다. 

우리도 안심할 순 없다. ‘반도체 산업 9년 연속 종합 2위’ ‘메모리 반도체 1위’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한국 반도체이지만 언제까지 이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대표적인 예로 대만의 TSMC는 2022년 3분기 삼성전자를 넘어 반도체 매출 1위를 기록했다. 게다가 중국은 ‘반도체 굴기’를 내세워 2030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다.

더욱이 국내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글로벌 반도체 장비 시장 순위(매출)에서 국내 기업은 10위 안에 한곳도 없다. 미국(AMAT·램리서치), 네덜란드(ASML), 일본 도쿄일렉트론(TEL) 점유율이 70%에 육박한다(2021년 기준). 글로벌 시장에서 선전하는 국내 기업으론 세메스와 원익IPS가 있지만 각각 13위, 14위에 머물렀다.

반도체 소부장 자립화율도 현저히 낮다. 2021년 기준 30%대에 머물러 있다. 그중에서도 반도체 장비는 20% 수준에 머물러 있다. 반도체 장비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반도체 장비는 미국·일본·네덜란드 3국 수입 의존도가 77.5%(2021년도 기준)에 달한다.

2022년 1~8월엔 총 161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장비를 수입했는데, 그중 미국에서 41억5000만 달러, 일본에서 36억5000만 달러, 네덜란드에서 36억4000만 달러를 수입해왔다. 여전히 70%를 넘는다는 얘기다.[※참고: 외산장비들은 가격도 비싸다. 일부 반도체 대기업은 부담이 적겠지만 중소기업이나 연구소, 실험실에선 상용장비를 마련하는 게 쉽지 않다.] 

산자부는 2022년 7월 ‘반도체 초강국 달성전략’을 발표하며 ‘견고한 소부장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안정적인 소부장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30% 수준인 자립화율을 2030년 50%까지 끌어올린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이를 위해 ‘제3판교 테크노밸리’ ‘경기용인플랫폼시티’ ‘글로벌비즈센터’ 등 반도체 소부장 클러스터를 추진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한국 반도체는 눈앞에 놓인 이 숙제를 풀고 반도체 강국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편집자 주-

☞ 실험실 창업은 대학과 연구소의 공공기술을 사업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해마다 천문학적인 예산을 연구개발(R&D)에 투입하지만 그만큼의 경제적 효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고민에서 출발했습니다. 더스쿠프는 실험실의 연구 성과를 사업으로 잇고 있는 ‘실험실 창업팀’을 소개합니다. ❶편에선 그들이 뛰어든 시장을 분석하고, ➋편은 험난한 창업기를 써내려가고 있는 창업팀 인터뷰로 이어집니다.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