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 창업 3편 ➋인터뷰
조성은 에스포랩㈜ 대표
반도체 원자층 증착 장비 개발·공급
가격 낮춘 장비로 연구자들 부담 덜어

기술은 뛰어나지만 그 기술을 실현할 장비는 경제적 장벽이 높다. 반도체 증착(Deposition·웨이퍼 위에 박막을 입히는 공정) 시장의 현실이다. 이러니 작은 실험실에선 실험 하나 하려고 해도 골치가 아프다. 조성은(28) 에스포랩㈜ 대표가 실험용 연구장비를 개발해 창업 시장에 뛰어든 이유다.

조성은 에스포랩㈜ 대표는 이공계 전공자로서 자신의 기술로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고 싶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사진=천막사진관]
조성은 에스포랩㈜ 대표는 이공계 전공자로서 자신의 기술로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고 싶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사진=천막사진관]

✚ 반도체 증착이란 말이 낯섭니다. 
“증착은 반도체 공정 중 하나인데요. 쉽게 설명하면, 웨이퍼 위에 얇은 박막을 입히는 공정을 증착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증착 기술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을 정도로 뛰어납니다.”

✚ 그렇군요. 놀라운 성과네요.
“다만, 숙제가 좀 있습니다.” 

✚ 숙제라니요.
“우리나라 증착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 그걸 생산하는 설비 또는 장비가 상당히 비쌉니다. 장비만 고가인 게 아니라 유지 비용도 만만찮고요. 중소기업은 우수한 반도체 증착 기술을 갖고 있더라도 그 장비를 설치하기 힘들죠.” 

✚ 그건 대학 실험실도 마찬가지겠네요.
“그렇습니다. 대학 실험실이나 중소연구소에서도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연구장비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 역시도 실험실에서 연구하다가 이 문제와 맞닥뜨리게 된 거고요.”

✚ 그래서 실험용으로 사용할 연구장비를 직접 개발하신 건가요?
“맞습니다. 우리는 실험도 해야 하고, 장비를 만들 기술력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으니까 ‘우리가 한번 만들어서 써보자’ 했던 겁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런 수요가 꽤 많더라고요.”

✚ 어떤 수요였나요?
“실험을 하기 위해선 연구장비가 필요한데, 말씀드린 것처럼 양산장비를 사기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 실험용 연구장비로 간이 실험을 해보고, 그 뒤에 투자를 결정하고 싶다는 연구자들이 제법 많았습니다.”

✚ 서비스 대상을 대학 실험실이나 중소 연구소로 특정한 게 그런 이유였군요.
“네, 맞아요. 에스포랩은 샘플만 넣어 실험할 수 있는 연구장비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상용장비 대비 3분의 1 가격으로 연구장비를 공급하고 있어 연구자들의 부담을 확 줄였습니다.”

2021년 창업한 에스포랩은 반도체 증착 공정에 사용되는 실험용 원자층 증착 장비를 개발·공급하고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술 스타트업이다. 에스포랩이란 사명은 Science, System, Solution, Service의 앞글자와 실험실(Lab)을 타깃으로 한다는 의미를 담아 만들었다. 

✚ 소규모 실험실엔 큰 도움이 되겠네요.
“그럼요. 장비 구입비는 물론 유지비용도 크게 줄일 수 있으니까요.”

✚ 공급 가격이 3분의 1이라고 하지만 개발하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들지 않았나요?
“설계는 돈 드는 일이 아니니까 얼추 진행해놓은 상태로 호기롭게 창업에 도전했습니다. 다행히 정부 지원사업에 선정돼 초기 개발비용을 해결할 수 있었고요. 그 후엔 지원사업 등을 통해 돈이 들어오는 대로 장비 만드는 데 전부 쏟았습니다.”

✚ 실제 납품한 실적도 있나요?
“2022년 A대학 실험실에서 요청이 와서 장비를 설치했습니다. 그 후로도 종종 문의가 오는데, 아직 여력이 안 돼서 거절해왔습니다. 조만간 한군데 더 구현해볼 계획입니다.”

✚ 장비만 판매하는 게 아니라 컨설팅 서비스도 함께 제공한다고요.
“이게 약간 빵 굽는 것과 비슷해요. 식빵을 굽느냐 크루아상을 굽느냐에 따라 재료 비율, 빵 굽는 온도와 시간이 다 다르잖아요. 증착도 장착하는 프로세스가 다 다릅니다. 그만큼 사용자의 숙련도와 전문성이 필요하죠. 그런데 우리의 타깃이 대학 실험실과 중소연구실이잖아요. 학생 연구자들이 많을 테니까, 아무래도 숙련도나 전문성 부분에선 부족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 장비공급과 함께 교육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 대표님께서도 현재 석사 학위를 밟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연구와 회사 운영을 병행하기가 쉽지 않을 거 같은데요.
“다행히 제 석사 학위 연구와 사업 방향이 크게 다르지 않아서 오히려 윈윈(win-win) 효과가 있습니다. 연구 기술을 바로 시장에 적용해볼 수 있는 플랫폼이 있는 셈이니까요.”

✚ 그래도 연구와 실제 사업은 엄연히 다를 텐데요.
“그래서 더 흥미로운 부분도 있습니다.”

✚ 흥미롭다고요?
“연구만 하면 매너리즘에 빠졌을지도 몰라요. 온종일 실험실에만 있어야 하니까요. 물론 창업을 하고 보니 행정적으로 손이 가는 일들이 많아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바쁘긴 해요. 그래도 학교 내에서 여러 지원을 받아 감사한 마음으로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일찍 현실과 부딪혀본 것도 나중에 도움이 될 거 같고요.”

✚ 실제 부딪혀보니 어떤가요?
“실험실 창업 교육을 받으면서 ‘기술이 완벽하다고 시장에서 살아남는 건 아니다’란 냉정한 조언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게 당연하더라고요. 학교에서 뛰어난 기술이 꼭 산업에서 인기 있으란 법은 없잖아요. 둘은 분명 다른 얘기죠. 좋은 아이디어 100개 중 시장에 나가는 건 그중 일부이고, 거기서도 성공하는 건 1개 정도라는 걸 창업을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겁니다. 교과서엔 없는 내용이잖아요. 그런 현실들을 하나둘 배워나가고 있습니다.”

✚ 실패하더라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죠.
“실리콘밸리에선 벤처캐피털(VC)이 투자를 결정할 때 처음 물어보는 게 ‘몇 번 망해봤냐’라고 합니다. 다양한 시도를 ‘용기’로 보는 거죠. 하지만 한국 사회에선 ‘망했네’ 이렇게 보잖아요. 숱한 실패와 마주하는 점에선 연구자로서의 경험이 좋은 밑거름이 될 거 같아요.”

✚ 어떤 경험이요?
“실험은 사실 99.9% 실패하거든요. 성공확률이 극히 낮아요. 그러면서 실패해도 낙담하지 않는 법을 배우지 않았을까 해요. 성과가 마음에 들면 비록 실패했더라도 그건 실패가 아니라 다음에 통과할 가능성이 생긴 거라고 여기는 마음가짐을 갖게 됐습니다.”

✚ 2022년의 에스포랩은 어땠나요?
“회사를 설립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아 2022년 목표는 살아남는 거였습니다. 이렇게 인터뷰를 하고 있으니 그 목표는 달성한 셈이네요(웃음).”

✚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꾸준히 기술을 개발해 국내 연구장비뿐만 아니라 해외 연구기관에도 장비를 공급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이공계 종사자로서 제가 보유하고 있는 기술로 다른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품고 있거든요.”

✚ 연구자와 사업가 둘 중 어느 쪽이 더 끌리시나요?
“훌륭한 연구자로 성장해 좋은 논문을 쓰거나, 사업자로 성장해 세상에 좋은 기술을 제공하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습니다. 저는 아직 그 중간에 있는 듯합니다. 연구자로서의 조성은도, 사업가로서의 조성은도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 편집자 주-

☞ 실험실 창업은 대학과 연구소의 공공기술을 사업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해마다 천문학적인 예산을 연구개발(R&D)에 투입하지만 그만큼의 경제적 효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고민에서 출발했습니다. 더스쿠프는 실험실의 연구 성과를 사업으로 잇고 있는 ‘실험실 창업팀’을 소개합니다. ❶편에선 그들이 뛰어든 시장을 분석하고, ➋편은 험난한 창업기를 써내려가고 있는 창업팀 인터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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