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인사 영입한 롯데의 변화
중간 성적표 긍정적이지만…
‘그로서리 1번지’ 갈 길 멀어
신동빈의 선택, 성과와 과제

# 트렌드에 가장 민감한 산업 중 하나가 유통이다. 한국처럼 소비자가 까다롭고 변덕스러울 땐 더욱 그렇다. 한국의 유통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선 카멜레온처럼 변신해야 하는 이유다.

# 하지만 그동안 변화에 둔감했던 유통기업이 있다. 롯데그룹이다. 롯데는 온라인 격변기에 대응이 뒤처졌고, 그 때문에 실적 악화란 부메랑을 맞았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그 원인 중 하나로 ‘순혈주의’를 꼽은 듯하다. 신 회장이 최근 1~2년 사이에 순혈주의를 깨부수는 인사를 직접 단행한 걸 보면 그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럼 신 회장의 한수는 어떤 결과를 맺고 있을까. 

롯데쇼핑은 온라인 대응에 뒤처지면서 실적 부진을 겪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 더스쿠프 포토]
롯데쇼핑은 온라인 대응에 뒤처지면서 실적 부진을 겪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 더스쿠프 포토]

롯데그룹이 순혈주의를 다시 한번 혁파했다. 롯데는 2023년 정기 임원인사에서 ‘롯데맨’이 아닌 외부 전문가를 대거 영입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그룹의 모태 격인 롯데제과 대표에 이창엽 전 LG생활건강 부사장을 선임했다는 점이다. 외부 인사가 롯데제과의 키를 잡은 건 1967년 설립 이래 처음이다. 롯데의 금융 계열사 롯데멤버스의 대표 자리엔 삼성전자·KT 등을 거친 김혜주 전 신한은행 상무를 앉혔다. 변화와 혁신에 방점을 찍은 인사인 셈이다. 

롯데에 이같은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한 건 2020년부터다. 오랜 시간 전문경영인 역할을 해온  황각규 부회장(롯데지주 대표이사)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다. 그 이후 롯데의 핵심 사업 부문인 롯데쇼핑에서부터 외부 인사 수혈이 적극적으로 이뤄졌다.

2021년 4월엔 이커머스 사업을 담당하는 롯데온의 선장으로 이베이코리아 출신의 나영호 대표를 영입했다. 롯데백화점 수장은 경쟁사인 신세계에서 30년간 몸담은 정준호 대표(이하 2021년 12월 취임)가 맡았다. 롯데호텔의 키 역시 LG 출신인 안세진 대표에게 전했다. 

순혈주의라는 롯데의 전통을 깬 파격 인사는 2022년에도 이어졌다. 롯데의 유통 사업을 총괄하는 롯데쇼핑 대표(부회장) 자리에 P&G 부사장, 홈플러스 대표를 지낸 김상현 대표가 부임했다. 김 대표는 신동빈 회장이 ‘구원투수’로 영입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동안 ‘롯데백화점 입사’ ‘상품본부장’ 출신이 수장에 오른다는 공식을 신 회장이 직접 깨버린 셈이었다. 

신 회장이 이같은 충격요법을 들고 나올 수밖에 없던 건 업계 1~2위를 다투던 롯데쇼핑이 최근 수년간 굴욕적인 실적을 맛봤기 때문이다.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조치로 중국 시장에서 쓴맛을 본 데다, 코로나19 여파에 이어 온라인 전환작업까지 더디게 진행되면서 실적이 악화일로를 걸었다. 2019년 17조6220억원이던 롯데쇼핑의 매출액은 지난해 15조5736억원으로 11.6% 줄었다. 지난 3년(2019~2021년) 동안 쌓인 적자(당기순이익)는 1조7761억원에 달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신 회장은 능력주의 쇄신을 강조하고 있다. “연공서열, 성별, 지연·학연과 관계없이 최적의 인재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철저한 성과주의 문화가 안착해야 한다(2022년 신년사).” “영구적 위기의 시대… 끊임없이 변화하고 혁신해 ‘새로운 롯데’를 만들어야 한다(2023년 신년사).” 

[자료|롯데쇼핑 ‧ 더스쿠프, 사진 | 뉴시스]
[자료|롯데쇼핑 ‧ 더스쿠프, 사진 | 뉴시스]

그렇다면 외부 영입 인사들의 성적표는 어떨까. 현재로선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무엇보다 수익성이 개선되고 있다. 롯데쇼핑의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하 누적 기준)은 2931억원을 기록했는데, 전년 동기(982억원) 대비 198.2% 증가한 수치다. 당기순이익도 올해 흑자(826억원·네이버증권 전망치)로 전환할 전망이다.[※참고: 매출액은 소폭 감소했다. 롯데쇼핑의 2022년 3분기 매출액은 11조6859억원으로 전년 동기(11조7892억원) 대비 0.9% 줄었다.] 

무엇보다 신세계 출신인 정준호 대표가 이끄는 백화점 실적이 개선됐다. 롯데백화점은 ‘리오프닝’ 효과와 ‘MD 경쟁력’ 강화 등으로 3분기 매출액(누적 기준)이 전년 동기 대비 14.1% 증가했다. 점포 구조조정을 마친 대형마트에선 점포 리뉴얼(2021년 8곳·2022년 5곳) 효과가 나타났다. 2021년 3분기 140억원 적자를 기록했던 대형마트 부문은 2022년 3분기 420억원 흑자를 기록하면서 롯데쇼핑 실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새로운 수장을 바라보는 내부 평가도 나쁘지 않다. 다소 경직된 롯데의 조직 문화를 바꾸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례로 김상현 롯데쇼핑 대표는 수평적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 타운홀미팅 등 직원들과 접점을 확대하고 있다. 

정준호 롯대백화점 대표는 MD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인사이트 투어’ 제도를 도입했다. 인사이트 투어의 취지는 일본 등 해외 백화점을 ‘보고서 없이’ 자유롭게 투어하고, 안목을 기른다는 거다. 이런 변화가 직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셈이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김상현 대표는 롯데쇼핑 계열사 직원들과도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지속적으로 만들고 있다”면서 “대표가 나서 적극적으로 소통한다는 점에서 직원들의 반응이 긍정적이다”고 말했다.

경영 전문가들의 견해도 좋다. 오세조 연세대(경영학) 교수의 평가를 들어보자. “기업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게 매너리즘이다. 롯데 역시 국내 유통업계에서 군림해 왔지만 온라인화에 뒤처지면서 위기를 겪었다.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선 기존 것을 벗어나 새로운 조직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혁신을 이끌 경쟁력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외부 인사 영입은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성과는 어디까지나 1년여의 결과물일 뿐이다. 갈 길은 아직 멀고, 풀어야 할 숙제는 적지 않다. 무엇보다 롯데쇼핑의 통합 온라인 플랫폼 롯데온의 성과가 부진하다. 

언급했듯 롯데온 역시 이베이코리아 출신의 나영호 대표를 영입했지만, ‘적자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다. 롯데온은 2022년 3분기 영업적자(이하 누적 기준) 378억원을 기록했다. 적자 규모(2021년 3분기 463억원)는 줄이는 데 성공했지만, 흐름을 바꾸진 못했다.

롯데온 관계자는 “수익성 중심으로 사업을 개편하고, 오픈마켓을 강화하는 등의 효과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심각한 문제는 또 있다. 같은 기간 거래액이 3.6%(7856억원→7574억원) 감소했다는 점이다. 2022년 9월 롯데온의 ‘첫 화면’을 개편하면서 쇄신에 나섰지만 결과적으로 소비자를 끌어들이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김상현 대표가 직접 이끄는 ‘그로서리 1번지’ 전략이 성과를 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오프라인 유통의 경쟁력인 ‘신선식품’을 온라인에서도 강화해 소비자의 ‘첫번째 쇼핑 목적지’로 발돋움하겠다는 게 김 대표의 플랜이다. 2022년 11월 영국 리테일테크 기업 ‘오카도’와 협업 계획을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다. 롯데쇼핑은 2030년까지 1조원을 투자해 오카도와 자동화물류센터(CFC) 6곳을 구축할 계획이다. 첫 자동화물류센터는 2025년 가동 예정이다. 

[자료|롯데쇼핑 ‧ 더스쿠프, 사진 | 뉴시스]
[자료|롯데쇼핑 ‧ 더스쿠프, 사진 | 뉴시스]

특히 롯데쇼핑이 기대를 거는 건 오카도의 ‘오카도 스마트 플랫폼(OSP)’ 서비스다. OSP는 인공지능(AI)·빅데이터 기술 등을 활용한 일종의 고객 관리 프로그램이다. 개개인을 분석해 고객 수요를 예측하고, 최적화한 상품을 추천하는데, 롯데쇼핑으로선 매출을 늘리고 쓸데없는 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관건은 막대한 투자 대비 효과를 거둘 수 있느냐다. 마종수 한국유통연수원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고성장 시기를 지나,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균형을 잡는 시기에 다다르고 있다. 수조원대 매출만으로는 손익분기점을 넘을 수 없는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는 리스크가 될 우려가 있다. 특히 오카도에 OSP 사용 수수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점도 온라인 사업이 적자인 상황에선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결국 롯데쇼핑의 ‘그로서리 1번지’라는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선 상품과 서비스의 차별화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마 교수는 “고도화한 물류 시스템보다 중요한 게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것”이라면서 “소비자가 쿠팡이나 마켓컬리가 아닌 롯데를 선택해야 하는 차별화한 상품과 서비스를 갖추는 작업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순혈주의를 깨기 위해 신동빈 회장이 선택한 롯데의 수장들은 온라인 시장에서도 롯데의 위상을 높일 수 있을까. 결과를 확인하는 덴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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