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자의 探스러운 소비
MZ세대 스포츠 트렌드
고물가에 골프 인기 주춤
접근성 좋은 테니스 인기몰이

초록이 넓게 펼쳐진 골프장을 배경으로 화보를 찍듯 한껏 포즈를 취한 사람들이 SNS에 넘쳐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하나둘 그 수가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기분 탓일까, 추워진 날씨 탓일까. 그 자리를 테니스가 하나둘 꿰차고 있는 듯한데, 그건 기분 탓이나 날씨 탓만은 아닌 것 같다. 이 변화엔 어떤 이유가 있는 걸까.

MZ세대의 플렉스 수단이던 골프 인기가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MZ세대의 플렉스 수단이던 골프 인기가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골린이(골프+어린이)’는 지난 2년(2021~ 2022년)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신조어다. 골프에 입문한 초보자를 뜻하는 이 신조어는 SNS는 물론 포털, 뉴스, 블로그에서 넘쳐났다. 한 빅데이터 분석 회사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년 동안 약 4만번 ‘골린이’가 언급됐다.

최근엔 여기에 단어 하나가 더 추가됐다. 바로 ‘테린이’다. 짐작하듯 테니스에 입문한 이들이다. 테린이 키워드는 2년간 1만5000여번 언급됐고, 점점 증가 추세다.

스포츠 업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골프 인구는 500만명, 테니스 인구는 60만명이다. 거의 국민 스포츠에 가까워졌다. 그러니 입문하는 이들이 갈수록 느는 건 놀라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소비하는 이들의 연령이 한참 낮아졌다는 건 주목할 만하다.

그동안 골프나 테니스는 경제력을 갖춘 중장년층이 즐기는 스포츠였다. 그도 그럴 것이 골프장을 한번 이용하려면 1인당 못해도 20만~30만원은 깨진다. 테니스는 그보다 적지만 다른 스포츠 대비 레슨비 가격이 높고, 테니스 라켓 등 용품 가격도 그리 낮은 편이 아니다. 그런 이유로 골프와 테니스는 ‘귀족스포츠’ 대접을 받아왔다. 그런데 최근 2년 사이 골프와 테니스에 젊은 MZ세대, 그중에서도 여성 소비자가 급증했다. 이유가 뭘까. 

골프와 테니스에 MZ세대 소비자의 유입이 증가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스포츠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체력과 면역력을 기르려는 욕구가 증가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실내 시설들은 접근이 어려워지자 자연에서 호흡할 수 있고, 실내운동 대비 규제가 덜한 실외운동으로 눈을 돌린 거다.

둘째는 MZ세대의 경제적 여유다. 주식과 코인 투자 등으로 또래가 갖지 못한 경제력을 단시간에 얻은 MZ세대가 골프와 테니스로 플렉스(flex·자신의 부와 위치를 뽐내는 행위)를 시작한 거다. 특히 두 스포츠는 레슨과 연습을 통해 실력을 키워야 해서 시간적 여유, 무엇보다 경제력이 필수다.

세번째 이유는 ‘패션’이다. 지난 10여년간 한국 스포츠 패션 시장은 등산복이 휩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등산 인구가 늘어나면서 등산복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스포츠 패션업체들은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는데, 그곳이 골프와 테니스다. 그 결과, 골프·테니스 복장이 이전보다 더 패셔너블해졌고, MZ세대의 시야에 들어갔다. 

실제로 골린이와 테린이를 키워드로 한 빅데이터를 분석해보면, ‘레슨’ ‘초보’ ‘연습장’과 같은 기본 용어 외에 패션 용어가 전체 언급량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이건 골프와 테니스가 조금 다르게 나타나긴 했는데, 골프는 ‘고급’ ‘디자인’ ‘명품’ ‘럭셔리’ 등 하이엔드 등급과 관련된 연관어가 많다. 반면, 테니스는 ‘스커트’ ‘팔찌’ ‘니트’ ‘가방’ 등 패션 아이템과 관련된 연관어가 많은 게 특징이다.

다만, 지난 2년간 트렌드를 주도했던 골린이와 테린이의 운명은 2022년 후반기부터 운명이 갈리고 있다. 주식시장이 약세로 돌아서고 물가가 상승한 영향을 피할 수 없었던 탓일까. 비싼 돈 들여 장만한 골프채와 골프의류가 중고마켓에서 왕왕 거래되고 있다. 골프는 1회 이용료가 비싸서 MZ세대가 자주 즐기기엔 쉽지 않다. 게다가 필드에 나가려면 시간적인 여유도 필요하다. 두가지에서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테니스로 전환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거다. 

접근성이 좋은 것도 테니스 인구가 느는 이유 중 하나다. 골프장은 넓은 면적이 필요해 대부분 교외에 있다. 반면 테니스장은 시내 곳곳에 마련돼 있다. 최근엔 피부 자극에 민감한 여성들을 위한 실내 테니스장도 증가하고 있다. MZ세대 골린이보다 MZ세대 테린이가 오래 살아남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골프도, 테니스도 체력을 키우고 관계를 쌓아가는 덴 더없이 좋은 스포츠다. 하지만 골프는 여유를 플렉스할 때 더 적합하고, 테니스는 센스를 키우는 데 좋다. 어느 스포츠나 실력을 키우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나마 테니스에서는 빠른 발과 체력이 부족한 실력을 보완해줄 수 있다. 

[사진|뉴시스, 자료|더스쿠프]
[사진|뉴시스, 자료|더스쿠프]

이제 와 고백하건대 필자는 테른이(테니스+어른)다. 테니스와 꽤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이런 테른이가 한가지 조언하자면, 사실 골른이(골프+어른)가 되는 것보다 테른이가 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일러야 6개월, 대개는 1~2년이 지나야 제대로 된 게임에 낄 수 있다. 하지만 한번 발을 들이면 쉽게 빠져나오기 어렵다. 빨리 시작할수록 오래 즐길 수 있는 운동이기도 하다. 추위가 좀 풀리면 코트에 나가보는 건 어떨까. 지난 3년 동안 웅크린 몸과 마음을 펼 수 있을 것이다. 

김경자 가톨릭대 교수
kimkj@catholic.ac.kr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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