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력 넘친다는 논현동 영동시장 가보니…

▲ 영동시장은 시장 현대화가 되지 않아 손님은 줄고, 빈 점포가 많아지고 있다.(사진=김정덕 기자)
‘품질로 버텼다’는 강남 복판에 있는 재래시장이 화제를 끌었다. 대형마트는 물론 내로라하는 백화점 식품관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았다는 찬사가 잇따랐다. 강남 영동시장 얘기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시장의 현대화가 늦어져 손님은 줄고 빈 점포는 늘었다. The Scoop가 영동시장의 진짜 속살을 들춰봤다.

대한민국 부촌富村 강남구에도 시장이 있다. 11곳이나 된다. 물론 상가형 시장이 대부분이다. 강남역지하쇼핑센터도 시장으로 분류돼 있다. 재래시장 냄새가 나는 곳은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영동시장뿐이다. 다닥다닥 붙은 170여개의 상가와 노점, 듬성듬성 드리운 차광막이 재래시장 이미지를 물씬 풍긴다. 영동시장이 왠지 어색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촌의 핵심부에 둥지를 틀고 있는 전통재래시장(재래시장)이라서다.

사실 영동시장도 상가형이었다. 2006년 9월 강제 철거된 동화상가 일부 상인이 골목으로 밀려나면서 지금의 영동시장이 생겼다. 현재 동화상가 자리에는 주상복합건물인 동화히스토리가 들어서 있다. 동화상가 상인들은 원래 동화히스토리에 입주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입주권을 받은 상인들 중 동화히스토리에 들어간 이는 거의 없다. 가격도 비쌌지만 건물주가 상인들에게 입주정보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화상가 재개발 당시 골목에 잠시 자리를 잡았던 상인들이 눌러앉으면서 지금의 영동시장이 됐다. 강남의 다른 시장이 재래시장에서 상가형으로 탈바꿈하는 동안 영동시장은 상가형에서 재래시장으로 바뀐 셈이다. 그만큼 영동시장 상인들은 아픔을 안고 있다.
그로부터 7년여가 흐른 지금, 영동시장은 또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손님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어서다. 이곳에서 17년째 국수를 팔고 있는 유은영(가명)씨는 “젊은 손님보다 나이든 손님이 훨씬 많다”며 “나이든 손님은 대부분 단골이라서 그들이 찾지 않으면 손님이 뚝 끊길 판”이라고 푸념을 늘어놨다.

 
그는 “젊은층의 가족이 많아야 시장에 활기가 도는데 주변에 유흥업소가 많고 교육환경이 좋지 않은 탓에 그렇지 않다”며 “명절 대목만 보고 장사를 해왔는데 이젠 대목도, 특수도 없다”고 말했다.

영동시장이 ‘시장 현대화’에 소극적이였던 것도 손님이 줄어드는 원인 중 하나다. 영동시장의 골목은 너무 비좁다. 유모차나 카트를 끌고 다니기 어려울 정도다. 차광막은 어지럽게 얽혀 있고, 비나 눈이 올 땐 제구실을 못한다. 시장골목길은 군데군데 파여 넘어지기 십상이다. 마땅한 주차시설도 없다. 시장에 들르기 위해 갓길에 주차를 해놨다가 자칫 딱지라도 끊기는 날이면 벌금 4만원이 고스란히 날아간다. 지금 영동시장에 필요한 건 ‘시장 현대화’ 작업밖에 없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 상인들의 이해관계가 너무 달라서다. 강남구청은 지난해 상인들을 대상으로 ‘시장 현대화’ 관련 조사를 실시했는데, 반대표가 더 많이 나오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건물을 소유한 상인은 가만히 있어도 임대료를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시장 현대화를 반대했다. 동화상가에서 쫓겨나는 아픔을 겪은 상인들은 현대화 사업 이후 또 밀려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었다. 시장현대화를 둘러싸고 상인들끼리 옥신각신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영동시장의 위기, 손님이 없다

20년째 침구류를 팔고 있는 고명희(가명)씨는 이렇게 말했다. “시장을 현대화하려면 공사가 필요하지 않은가. 그러면 그동안 장사를 할 수 없다. 더구나 현대화된 시장에 재입주할 수 있다는 것도 확실하지 않다. 재입주해도 문제가 남는다. 현대화를 빌미로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릴 게 뻔하기 때문이다. 상인 입장에서 ‘시장 현대화’를 무조건 찬성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 강남의 유일한 전통재래시장인 영동시장이 변화의 과정에서 삐걱대고 있다.(사진=지정훈 기자)
시장의 미래를 위해 현대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상인들은 좀더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30년가량 속옷매장을 운영해온 윤선숙(가명)씨는 “도로포장만 해도 시장환경이 좀 나아질 텐데 (골목)도로를 불법으로 점용한 상인들이 현대화를 하면 자리가 좁아질 가능성이 있어 반대한다”고 말했다.

강남구청이 영동시장 현대화 지원사업을 결정하고도 정작 추진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떤 상인의 손을 들어줘도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강남구청 지역경제과 관계자는 “영동시장은 상인들의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아서 현대화가 미뤄진 측면이 크다”며 “상인교육을 먼저 한 다음 현대화를 추진하는 방향으로 해법을 찾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영동시장 상인을 자극하는 문제는 또 있다. 영동시장 주변엔 중소형 마트가 3개나 있다. 약 5년 전 둥지를 틀었다. 상인들은 “시장 입구를 막은 마트 3곳이 돌아가면서 세일을 하는 통에 매출이 뚝뚝 떨어져 죽을 맛”이라고 한탄했다. “이미 들어선 걸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지켜보기만 하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는 상인도 많았다.

지난해 12월 마트 맞은편에 들어선 축협의 축산물판매장도 상인들의 심기를 자극하고 있었다. 영동농협 강남지점이 축협에 점포마련 비용을 대준 게 갈등의 씨앗이 됐다. 상인들은 “영동농협이 축협을 밀어 준 탓에 시장 안에 있는 13개 정육점의 매출이 심각할 정도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들의 주장은 대략 이렇다.

1993년 개점한 영동농협 강남지점은 설립 당시만 해도 상인들에게 예금을 부탁하고 다녔다. 그런데 축협이 들어온다고 하자 ‘돈벌이’를 위해 대출을 해줬다는 것이다. 권기원 영동전통시장상인회 회장은 공공성을 띠고 있는 농협이 책임을 져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영동농협 강남지점은 오랫동안 시장 상인들과 함께 컸다. 그런데 상인들의 생계는 고려하지 않은 채 축협이 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시장 안에 있는 정육점은 다 죽으라는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향후 다른 품목이 정육점 같은 타격을 입지 말란 법은 없다.” 영동농협 강남지점 측에서 상인들의 뒤통수를 때렸다는 지적이다. 

 
마트에 이어 축산물판매장까지 경쟁 가세

영동농협 강남지점 관계자는 “지금까지 상인들과 상부상조를 해왔는데, 축협에 대출을 해주면서 사이가 조금 어색해진 것 같다”며 “상인들의 ‘뒤통수를 때렸다’는 주장을 들어보니 깊이 생각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축산물판매장이 시장에 그렇게 큰 영향을 끼칠 줄 몰랐고, 만약 알았다면 대출을 해주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렇다고 이미 입주한 판매장을 농협이 철수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대안이 있다면 상인회의 입장을 반영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상인회는 영동농협 강남지점과의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1인 시위로 맞설 방침이다.

하지만 이 문제가 잘 풀린다고 해도 영동시장에 활력이 돌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영동시장이 상인간 갈등, 마트와 축협판매장의 공격으로 곪아가는 사이, 다른 재래시장은 대형마트에 뒤지지 않는 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어쩌면 단골손님마저 영동시장이 아닌 다른 재래시장에 갈지 모른다. 한 상인은 “영동시장이 강남스타일에 어울리는 시장으로 거듭나려면 상인간 신뢰부터 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juckys3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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