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해전에서 이순신은 거북선이란 ‘비책’을 꺼내 들었다. 그렇다고 거북선을 마냥 믿은 건 아니었다. 거북선 위에 ‘쇠못’을 달아서 왜군이 뛰어내리지 못하도록 했다. 근접전을 즐기는 왜군의 습성을 미리 파악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조치였다. 이처럼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지만, 적을 모르면 백전백패다. 지난 5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을 다녀온 ‘시찰단’은 얼마만큼 준비가 돼 있었을까.거북선이 적진을 헤집고 다니자 왜군은 등선육박전으로 대응했다. 지푸라기와 거적때기로 위장한 거북선의 지붕 위로 일제히 뛰어내렸다. ‘으악! 으아악!’ 거적 아래
이순신 장군은 배의 속도가 느려지자 다양한 방법으로 이를 보완했습니다. 첫째, 정보의 질과 양을 늘렸습니다. 적의 위치를 먼저 파악하면 적이 접근하기 전에 전투를 개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수히 많은 탐망선과 척후선을 동원해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둘째, 노 한개에 붙는 격군의 수를 늘렸습니다. 노의 동력을 증가시켜 배의 속도를 올린 것입니다. 하나의 노에 네명이 붙는 것과 다섯명이 붙는 것은 분명 다를 테니까요. 셋째, 평저선인 판옥선과 거북선의 회전력을 극대화하는 전술을 펼쳤습니다. 대표적인 전술이 바로 학익진입니다.
임진왜란 해전에서 왜군은 주로 등선육박 전술을 사용했습니다. 등선육박이란 적의 배로 건너가서 백병전을 하는 전술입니다. 100여년 지속된 내전으로 단련된 왜군들은 백병전에서 두려울 게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조총이라는 무기도 있었죠. 사실 등선육박이 왜군의 전유물이었던 건 아닙니다. 서구에서도 당시엔 등선육박이 기존 전술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조니뎁 주연의 영화 ‘캐리비언의 해적(Pirates of the Caribbean)’에 나오는 해상전투 장면을 떠올려 볼까요? 이 영화에서도 선박 간 함포전이
군함 5척 대 5척으로 싸운다면 서로 치고 받느라 승리한 쪽에도 피해가 발생합니다. 그러나 5척대 50척이 싸울 경우, 그것도 근접전이 아닌 원거리 함포전에서는 화포가 없거나 부실한 쪽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순신은 이 모든 상황을 생각하고 전투에 임했습니다. 싸우기 전에 이미 이겨 놓고 싸운 셈입니다. 그런데 이순신이 이런 전략을 사용하지 못한 경우가 두 번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명량해전입니다. 임진왜란 초기와 달리 명량해전 당시에는 일본군도 이순신 해전의 특성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