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표의 기록

누가 나오든 결과는 뻔했다. 그냥 특정당의 간판을 달고 출마한 이를 무턱대고 찍었다. 모든 선거가 그랬다. 인물에 따라 지지율이 오르내릴 뿐이었다.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목전에 왔다.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 그 어느때보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치러질 거다. 제대로 된 ‘리더’를 뽑아야 한다는 여론도 형성되고 있다. 이번에도 ‘무턱대고 몰표’를 던지겠는가. 이번만은 그들의 민낯을 봐야 하지 않겠는가.

▲ 역대 대선과 서울시장 선거 당시 후보자들의 구별 득표율을 보면 특정 구역에서 표를 받는 양상이 똑같이 나타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세월호 침몰 사고로 지방선거 분위기가 한풀 꺾였다. 그렇다고 이번 선거가 국민적 관심을 받지 못하는 건 아니다. 세월호 참사의 수습 과정에서 ‘관官피아’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선거를 통해 이 나라의 진짜 주인은 국민’이라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기류가 흐른다. 지방선거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의 중간평가라는 점도 분위기를 띄우는 데 한몫하고 있다.

그럼 이번 지방선거가 ‘심판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희망적이지 않다. 지역행정을 제대로 펼칠 수 있는 후보를 뽑으려면 후보자가 무슨 생각을 갖고, 무슨 정책을 펼치려 하는지 알아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공약을 살펴보는 거다. 당선 이후의 객관적인 평가 방법도 공약이행률을 따져보는 거다. 유권자가 공약을 유심히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지금껏 공약 중심으로 투표하고, 공약을 근거로 평가를 해온 적이 거의 없다.

물론 중앙선관위가 지난 지방선거를 조사해 내놓은 ‘선거별 유권자 지지후보 선택 고려요인’을 보면, 2006년 당시 정책ㆍ공약을 보고 투표한다는 유권자는 23.7%에 달했다. 이 비율은 2010년 29%로 5.3%포인트나 높아졌다. 정책ㆍ공약을 보고 투표하는 성향이 높아지고 있다는 얘기인데, 실제 선거 결과를 놓고 보면 그렇지도 않다.

더스쿠프는 표본을 서울지역으로 한정해 대선과 지방선거의 득표율을 비교해 봤다. 표심票心의 흐름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결과를 보면, 새정치민주연합(옛 민주당)은 관악ㆍ금천, 새누리당(옛 한나라당)은 강남ㆍ서초ㆍ송파 강남3구를 중심으로 지지율이 높게 나타난다. 

 
 
1997년 김대중 후보(새정치국민회의ㆍ이하 당시 직함)와 이회창(신한국당) 후보의 대결에서 이회창 후보는 용산ㆍ서초ㆍ강남ㆍ송파 등에서 지지율이 높았고, 김대중 후보는 강북ㆍ금천ㆍ관악 등에서 높게 나타났다.

이회창(한나라당) 후보와 노무현(열린우리당) 후보가 맞붙었던 2002년 대결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회창 후보는 영등포ㆍ서초ㆍ강남 등에서 지지율이 높았던 반면 노무현 후보는 강북ㆍ금천ㆍ관악 등에서 지지율이 높았다. 2007년 대선에서도 후보자간 평균지지율 편차가 심해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이명박 후보는 서초ㆍ강남ㆍ송파에서 높은 지지를 받았고, 정동영 후보는 금천ㆍ관악 등에서 지지를 받았다. 2012년 18대 대선에서도 박근혜 후보는 용산ㆍ서초ㆍ강남ㆍ송파에서, 문재인 후보는 관악ㆍ금천ㆍ마포 등에서 지지율이 높게 나타났다.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다르지 않다. 2002년 지방선거 당시 김민석(새천년민주당) 후보는 관악ㆍ강북ㆍ금천에서 이명박(한나라당) 후보는 강남ㆍ송파ㆍ서초ㆍ용산에서 지지율이 높았다. 2006년 평균지지율 편차가 심하게 났던 강금실(열린우리당) 후보와 오세훈(한나라당) 후보의 대결에서도 강금실 후보는 관악, 오세훈 후보는 강남ㆍ송파ㆍ강동ㆍ서초ㆍ용산에서 압도적이었다.

2010년 오세훈 후보와 한명숙(민주통합당) 후보와의 대결에서도 한명숙 후보는 관악ㆍ금천, 오세훈 후보는 2006년과 비슷한 강남3구 중심이었다. 2011년 나경원(한나라당) 후보와 박원순(무소속) 후보의 대결에서는 지역별로 나뉜 투표 양상이 확실하게 드러났다. 박원순 후보는 관악ㆍ구로ㆍ동작ㆍ금천ㆍ강북ㆍ성북 지역에서 압승했고, 강남ㆍ서초는 나경원 후보의 압승이었다. 역대 대통령 선거와 서울시장 선거에서 후보자의 정책이나 공약보다 어떤 정당에 속해 있느냐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다.

“ 대선-지방선거 결과 ‘판박이’

또 하나 살펴볼 것은 후보자에 따른 평균지지율의 편차다. 2007년 대선 당시 서울지역의 정동영 후보와 이명박 후보의 평균지지율 편차는 28.2%였다. 비슷하게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강금실 후보와 오세훈 후보의 평균지지율 편차도 33.2%에 달했다. 1997년 대선은 4.6%, 2002년 대선은 6.6%, 2012년 대선은 3.4%의 편차를 보였고, 2002년 서울시장 선거는 8.7%, 2010년은 0.1%, 2011년은 9.1%의 편차를 보였다.

 
어떤 후보를 내느냐에 따라 평균지지율의 폭이 달라진다는 걸 보여주는 결과다. 지금까지 정권을 잡았던 양대 정당의 정책과 공약이 방법론을 제외하면 큰 차이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지없는 인물 중심 투표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 직선제를 되찾은 건 1987년이다. 올해로 28년째다. 지역 일꾼을 처음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기 시작한 건 1995년이다. 올해로 딱 20년을 맞는다. 이제는 정책과 공약을 중심으로 대결할 만하지만 특정 지역에 기반을 둔 특정 정당과 인물 위주의 선거는 여전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책과 공약이 제 역할을 할 수가 없다. 유권자들이 정책과 공약으로 후보자를 평가하지 않는데, 후보자가 굳이 힘들여가며 공약을 개발할 이유가 없어서다. 정책과 공약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이 작다 보니 당선자들은 공약 이행에 대한 책임감은 사라지고, 당선만 되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생긴다는 것도 문제다. ‘공약公約’은 그야말로 ‘공약空約’일 뿐이라는 목소리도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약 이행에 대한 평가가 지지율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박근혜 정부가 2012년 대선 당시 내놨던 공약들 대부분은 수정ㆍ폐기되는 등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당시 그토록 외쳤던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싹 사라졌다. 경실련에 따르면 현 정부의 전체 공약이행률은 27%에 불과하다. 게다가 세월호 침몰사고에 대한 미흡한 대응까지 겹쳤다. 지지율이 떨어질 만하다. 그럼에도 선거를 앞두고 나온 박 대통령의 ‘눈물’은 50%대로 떨어지던 박 대통령 지지율을 60%대로 다시 올려놨다. 당연히 정책ㆍ공약 평가가 이뤄질 수 없다.

국민이 후보자들의 정책과 공약에 관심을 갖고 제대로 검토해 공약 남발을 막고, 당선 후에는 이를 철저히 평가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이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도적 보완이 우선이라는 지적도 많다.

▲ 유권자가 후보자의 정책과 공약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 될 가능성이 크다.[사진=뉴시스]
고계현 경실련 사무총장은 “유권자들이 후보자들의 공약에 관심을 갖고 이를 선택의 기준으로 하는 정책선거로 만들기 위해서는 유권자로 하여금 후보들의 공약이 당선되면 실행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먼저 선거기간 중에 공약이나 정책 등에 대한 자유로운 검증과 토론이 치열하게 전개되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후보자의 토론회 참석 의무화해야”

“우리나라가 공약 중심의 정책지향 선거를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조건 당선되고 보자는 후보자들이 공약空約을 남발해서다. 후보자는 선거공약을 통해 국가와 지역발전에 대한 분명한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고 이에 근거한 결과를 제시해 유권자의 선택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유권자들이 공약公約을 공약空約으로 불신하지 않도록 장밋빛 공약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공약을 제시하고 잘못된 공약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유권자들이 공약검증을 할 수 있도록 예비후보에게 등록기간부터 선거일까지 예비후보자 홍보물, 예비후보자 공약집, 선거공약서 등을 단계적으로 발간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또 유권자들이 선거에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유권자들의 자유로운 참여와 토론 속에서 후보들의 공약이 검증되는 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 선거기간 중 후보자의 토론회 참여를 의무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