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위협하는 ‘환율경고등’

▲ 원‧달러 환율이 4월이후 가파른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원ㆍ달러 환율이 수출기업을 위협하고 있다. 엔저 공포가 채 가시기도 전에 ‘원고高’가 한국경제를 벌벌 떨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원고 공포를 해결할 만한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유로존이 돈을 풀면서 약달러 현상이 약화될 공산이 커졌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거리다.

원ㆍ달러 환율의 하락세가 뚜렷하다. 환율시장의 심리적 지지선으로 작용하던 1030원이 속절없이 무너졌고, 1020원대 마저 위태로워 보인다. 환율의 하락 속도 역시 빠르다. 1월 2일 1050.50원을 기록했던 원ㆍ달러 환율은 6월 3일 1023.50원까지 떨어졌다. 국제통화 가운데 가장 큰 하락폭 중 하나다. 원화강세(원ㆍ달러 환율 하락)의 요인은 세가지다. 무엇보다 외환보유고가 풍부해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5월말 기준 3609억1000만 달러에 달한다. 지난해 7월 3297억1000만 달러를 기록한 이후 11개월 연속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특히 4월 외환보유액은 한달 만에 50억7000만 달러나 늘어났다. 지난해 10월 63억 달러가 늘어난 이후 7개월 만에 가장 큰 증가폭이다. 외환보유고는 환율방어의 수단으로 사용되지만 지나친 보유액은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외환보유고가 원화강세를 지속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사상 최대 수준의 경상수지 흑자다. 우리나라의 경상수지는 26개월 연속 흑자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4월 경상수지는 71억2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56.5% 증가한 것으로 4월 기준 역대 최대다. 올해 경상수지 흑자는 연간 최대치였던 지난해 799억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마지막 요인은 달러화 약세다. 경기회복세를 기록하던 미국의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1%를 기록했다. 2011년 1분기 이후 3년만의 마이너스 성장이다. 이에 따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ㆍFed)의 조기금리인상 우려가 약화되면서 달러화 약세가 지속되고 있다. 원화강세 현상이 꺾이지 않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수출기업의 수익성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어서다. 각 기관이 원화강세의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분주한 이유다. 전국경제인현합회의 조사에 따르면 제조업 분야 대기업 120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제조업의 손익분기점인 원ㆍ달러 환율은 1052.3원으로 조사됐다. 업종별로는 ‘조선업(1125원)’ ‘석유화학(1066.7원)’ ‘전자ㆍ통신(1052.3원)’ ‘자동차 부품(1050.0원)’ 등의 순이었다. 현재 환율을 기준으로 대부분의 제조업체가 손익분기점을 밑돌고 있다는 얘기다. 전경련 관계자는 “조선업의 손익분기점은 현재 환율과 100원이 넘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며 “주력 수출 업종 전반에서 수익성이 나빠지고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손익분기점에도 못 미치는 환율

 
한국무역협회가 대기업 30개와 중소기업 310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도 비슷하다. 결과를 보면, 수출기업의 88.5% (복수응답)가 원ㆍ달러 환율 하락으로 수익성이 악화됐고 28.2%는 ‘수출물량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손익분기점 환율은 달러당 평균 1045원, 적정 이윤 보장환율은 달러당 평균 1073원으로 분석됐다. 특히 중소기업의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대기업과 달리 환리스크를 관리하는 중소기업은 소수에 불과하다”며 “원ㆍ달러 환율 하락의 영향으로 신규 수주가 감소하고 있어 중소기업의 사정이 더욱 어려워 질 것”이라고 전했다.

더 큰 문제는 수출기업의 발목을 잡았던 엔저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원ㆍ달러 환율이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6월 3일 원ㆍ엔 환율은 100엔당 1000원을 기록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올해 원ㆍ엔 환율이 100엔당 연평균 1000원을 기록할 경우 우리나라의 총수출이 지난해보다 7.5%, 950원을 기록하면 9.1% 줄어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엔저와 마찬가지로 원ㆍ달러 환율 하락을 막을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 경상수지의 과도한 흑자로 외환당국은 시장에 개입하기 어렵다. 기준금리가 12개월째 동결돼 금리인하책을 활용해도 별다른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희박하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원ㆍ달러 환율과 원ㆍ엔 환율의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하지만 직접적인 개입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환율의 안정을 위해서는 내수소비가 확대되고 기업의 투자가 증가해야 한다.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는 수출기업을 지원하는 정책도 펼쳐야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원론적인 해결책일 뿐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환율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기업에는 원가절감, 환헤지용 상품 확대를, 정부에는 확장적 통화정책 강화와 수출기업의 지원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며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이 적극적인 통화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극적이고 원론적인 대책만 나오고 있다”고 꼬집었다.

금융당국이 정확한 전망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로 한국은행은 엔저 영향이 크지 않다고 내다보고 있다. 지난 4월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원ㆍ엔 환율이 100엔당 1000~800원으로 떨어져도 우리 기업의 매출영업이익률은 0.14~ 0.35% 하락하는 데 그친다. 엔저 영향으로 수출은 감소하지만 수입원자재 가격하락에 따른 원화절감 효과로 이를 상쇄할 수 있다는 분석이었다.

원ㆍ달러 환율 1000원대 붕괴 가능성

한국은행은 “원ㆍ엔 환율이 하락하면 수출 비중이 높은 일부 제조업의 수익성이 다소 악화 될 수 있지만 수익성 하락폭은 전반적으로 크지 않았다”며 “엔저의 부정적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일본과 경합도가 높은 수출 업종을 중심으로 신용위험의 증대 가능성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며 “하지만 엔저 요인에 의한 금융시스템의 잠재 리스크는 크지 않다”고 전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원화 강세를 진정시킬 수 있는 정책이 시급한 시점이지만 한국은행은 안전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며 “경기가 좋아질 것이란 낙관론만 펼치고 있어 정책시행 시점을 놓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다”고 강조했다.

다행히 원ㆍ달러 환율이 1000원 이하로 하락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 경상수지 흑자폭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4월까지는 수출 증가를 수입이 따라가지 못하는 불황형 흑자가 이어졌지만 수출개선이 자본재 등의 수입의 증가요인으로 작용하면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감소할 수밖에 없어서다. 안기태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경상수지 흑자와 환율의 상관관계가 크게 떨어졌다”며 “수출 개선이 시차를 두고 수입 증가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지난해보다는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6월 이후 유럽중앙은행(ECB)가 통화완화정책을 발표할 가능성이 높고 미국은 테이퍼링(양적완화) 종료로 자산 규모를 줄이고 있다”며 “하반기 이후 달러 강세가 재개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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