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담합 고질병’ 고치려면…

▲ 건설사들의 입찰담합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사진=뉴시스]
건설사들이 최근 ‘입찰담합을 근절하겠다’고 나섰다. 입찰담합으로 상당한 과징금을 부과 받자 ‘쇼’를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건설사들이 이렇게 나온 이상 ‘담합고리를 반드시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린다. 다만 입찰담합을 근절하기 위해 어디서부터 손을 봐야 하는지가 관건이다.

“입찰담합 불공정 행위로 국민의 불신을 초래하고 건설인들의 자부심에 상처를 줬다.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려 깊이 반성한다. 선처를 부탁드린다.” 올 7월 2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입찰담합 근절 및 경영위기 극복 방안 토론회’에 참석한 한국건설경영협회 회원사 CEO들이 선언문을 통해 밝힌 내용이다. 4대강 사업 입찰담합(2012년)을 비롯해 호남고속철도 공사 입찰담합(2013년), 경인아라뱃길 공사 입찰담합(2014년) 등 잊을 만할 때마다 대규모 입찰담합 사건이 터지자 건설사 CEO들이 고개를 숙인 것이다. 올해 공정거래위원회가 건설사들에 부과했거나 부과하게 될 담합 과징금만 해도 1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날 건설사들은 입찰담합 근절과 환골탈태를 약속했다. 과연 가능할까.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회의적이다”고 말한다. 입찰담합을 막기 위해서는 건설사의 의지가 중요하지만 구조적인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일단 건설사 입장에서 입찰담합은 ‘걸리지만 않으면’ 그만이다. 혹여 적발돼도 솜방망이로 살짝 맞으면 ‘끝’이다. 건설사들이 “남긴 것도 없이 과징금 폭탄을 맞아 오히려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4대강 사업을 예로 들어 보자. 공정위는 4대강 사업 입찰담합이 확인된 17개 건설사에 약 111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건설사 별로 적게는 수십억원, 많게는 200억원이 넘는 과징금이 부과됐다. 액수가 큰 것 같지만 따져보면 그렇지도 않다. 건설사들이 가져간 이익보다 적다. 

 
수천억 이득에 과징금은 쥐꼬리

지난해 10월 국정감사를 통해 문병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수자원공사가 자체 시행한 13개 공구의 ‘도급 대비 하도급 비교표’를 분석한 자료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11개 대형 건설사의 총 수주액은 2조5073억원 규모였지만 실제로 공사에 들어간 비용은 1조4567억원에 불과했다. 대형 건설사들이 1조506억원의 차익을 남긴 셈이다. 단가를 후려쳐 하도급업체에 공사를 떠넘긴 결과다. 원급수주액 대비 평균 하도급액은 46.3%에 불과했다. 1000억원짜리 공사를 수주받았다고 하면 537억원은 대형 건설사가 가져가고, 하도급업체에는 463억원으로 공사를 하라고 했다는 얘기다. 하도급액 비율이 최저 25.5 9%에 불과한 곳도 있었다. 대형 건설사는 중간마진으로만 막대한 이윤을 챙긴 거다. 특히 삼성물산은 2991억원짜리 공사를 1399억원에 하도급업체에 맡겨 1591억원을, 현대건설은 2741억원짜리 공사를 978억원에 넘겨 1763억원을 챙겼다. SK건설은 1828억원짜리 공사를 수주받아 768억원을 챙겼다.

과징금은 어떻게 부과됐을까. 삼성물산은 103억원, 현대건설은 220억원, SK건설은 178억원을 부과받았을 뿐이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사만 따내면 입찰담합이 발각돼도 ‘남는 장사’다. 건설사로선 입찰담합의 유혹을 떨쳐내기 어렵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따르면 공정위가 부과한 대부분의 과징금은 해당 기업 관련 매출액의 5% 범위 내에서 결정됐다. 제재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권오인 경실련 국책사업팀장은 “과징금이 경영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도록 과징금을 상향조정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관급공사의 경우 건설사의 하도급 행위를 규제해서 자체시공을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손 안 대고 이득을 취하는 하도급 구조가 유지되면 건설사가 돌아가면서 공사를 나눠먹기하는 담합이 깨질 수 없어서다. 자체시공을 하면 책임소재도 분명히 할 수 있다.

 
건설사들이 일감을 따기만 하면 ‘땅 짚고 헤엄치기’로 중간마진을 가져갈 수 있다는 것도 그렇지만 공사 수주액이 비현실적이라는 점은 더 큰 문제다. 지금껏 입찰담합 문제가 불거진 공사들은 대부분 대규모 국책사업들이고, 정부가 발주한 것들이다. 정부는 최저가낙찰제로 공사 업체를 선정한다. 건설업체는 공사를 할 수 없는 수준의 가격으로 입찰할 수 없으니 담합을 하는 거다. 건설업계가 관행적으로 행해 온 입찰담합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는 동시에 억울함을 호소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정부도 그 가격에 공사를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며 “추후 비싼 값에 공사를 맡겼다는 지적을 피하기 위해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술평가를 통해 ‘싼 가격’이 아니라 ‘제대로’ 공사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건설사의 정의’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좋은 건설사’는 낮은 가격에 공기를 단축해 공사를 해치우는 건설사가 아니다. 100년 혹은 200년을 넘게 버틸 수 있는 튼튼한 교량을 지을 수 있는 곳이 ‘좋은 건설사’다. 종합심사낙찰제가 주목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종업원 지주제 컨설팅 업체 ESOP컨설팅의 손호영 이사는 “100% 경쟁입찰을 통해 공사를 따낸다고 해도 가격적인 측면만을 고려하기 때문에 건설사들은 계약조건에 나온 것보다 값싼 자재를 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변별력을 떨어뜨려 좋은 건설사를 선정할 수 없도록 하는 가격경쟁은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종합심사낙찰제를 적용한다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다. 종합심사낙찰제는 입찰자격을 갖춘 건설사의 공사수행 능력과 입찰금액, 기업의 사회적책임(CSR)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최고 득점자를 낙찰자로 결정한다. 

전문 시공인력 보유도 중요해

문제는 건설사들의 시공능력이 비슷비슷하게 평가받는 상태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삼느냐다. 하도급업체가 실제 공사에 투입되고 있어 대형 건설사보다 현장 경험이 더 풍부하다는 지적도 많다. 실제로 건설사 도급순위 상위업체나 하위업체의 수행능력 평가 수준은 비슷하다. 최근 경기도 수원의 호매실지구 B8블록 아파트 공사에 종합심사낙찰제를 적용했지만 입찰에 참가한 50개 건설사 중 20개사가 수행능력 평가에서 만점을 받았다. 변별력이 없는 셈이다.

▲ 건설사들은 관급공사가 득이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4대강 사업에 입찰담합한 대형 건설사들은 과징금을 떼이고도 상당한 이득을 취했다.[사진=뉴시스]
전문가들은 건설업계에 진입장벽이 될 만한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변별력을 키울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시공인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기술평가 기준으로 삼는 것도 한 방법이다. ‘공사현장에는 사람 떠나면 남는 게 없다’는 말이 나올 만큼 건설업계에서 인력은 중요한 자원이다. 시공인력을 고정비용이 아닌 기술력이라는 시각으로 보면 전문시공인력이 많다는 건 자산을 많이 갖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건설인력, 특히 일용직 건설노동자에 대한 인식과 지위를 높일 수도 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실제로 건설사들이 ‘우리가 예전에 무슨 공사를 수주해서 완벽하게 공사를 마무리했다’며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그건 그냥 기록으로 남을 뿐”이라며 “정작 그 공사 현장에 있었던 사람은 건설사에 많지 않다”고 말했다.

물론 이처럼 건설사의 입찰담합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전략들도 건설사가 싫으면 못하는 거다. 하지만 많은 건설사가 입찰담합을 반성하고 있다. 중요한 건 어떤 것부터 손을 대느냐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정부가 발주하는 관급공사만이라도 종합심사낙찰제로 바꾸고, 기술평가를 올바르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거다. 건설업계에서 관급공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30~40%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좋은 건설사’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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