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진의 생각하는 골프

화려한 플레이만으로 대박 흥행을 거듭하던 우즈는 2009년 섹스 스캔들이 터지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100% 칭찬만 받아오던 우즈에게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비난이 쏟아졌다. 그래서 우즈는 더 화려한 샷을 했고, 그 결과 치명적 부상까지 입었다. 우즈에게도 변신이 필요했다.

타이거 우즈는 여전히 ‘황제’로 불린다. 그가 필드에 나타나기만 하면 잘하든 못하든 톱기사는 그의 몫이다. 그의 인터뷰ㆍ행동 등은 코디네이터ㆍ심리학자ㆍ의사로 구성된 중견기업 수준의 ‘우즈 회사’가 결정한 일종의 ‘상품’이다. 이런 우즈 마케팅이 최근 조금씩 바뀌고 있다. 특히 1996년 사용하던 스타마케팅과는 완전히 달라 흥미롭다.

우즈는 12월 5~8일 18명을 초청해 치러진 히어로 월드 챌린지(총상금 350만 달러ㆍ플로리다 주 아일워스GC)에서 1라운드부터 4라운드 18번홀까지 스트레이트로 꼴찌를 기록했다. 이런 성적은 그의 골프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일 게다. 그럼에도 이 대회의 메인 화면은 우즈가 차지했다. 2000년 창설 이래 최저타(26언터파)로 우승한 21살의 텍사스대 재학생 조던 스피스가 우승 직후 PGA 홈페이지 메인 화면을 장식한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의 행동이 언론을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물론 ‘우즈 회사’의 전략이겠지만 말이다.

▲ 황제는 초라했지만 그의 투혼이 팬심을 돌려 놓았다. [사진=뉴시스]
오로지 화려한 플레이만으로 대박 흥행을 거듭하던 우즈는 2009년 섹스 스캔들이 터지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100% 칭찬만 받아오던 우즈에게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비난이 쏟아졌다. 골프는 대표적인 멘털 스포츠다. 갤러리가 싸늘한 시선을 보내는데 화려한 샷이 나올리 만무하다. 그래서 우즈는 더 화려한 샷을 준비했고, 그 결과 치명적 부상까지 입었다. 골프를 시작한 이래 단 한번도 당하지 않았던 허리 등 부상을 최근 5년 동안 5번이나 입었다. 스윙코치를 3차례 바꿨지만 별 소용도 없었다.

여론의 지탄을 받는데다 부상까지 당한 ‘병든 황제’에게 돈을 댈 이유가 없어진 기업들이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자기들 대회에 참가해 달라고 ‘기본’ 400만 달러를 제시하며 애걸복걸하던 국가들도 일순간 사라졌다. 평생을 호화롭게 써도 남을 돈을 번 우즈지만 최근 몇년간의 정신적 고통은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 때문인지 우즈는 우승자와 무려 26타차 꼴찌를 기록했음에도 4라운드 내내 어떤 인터뷰에도 성실히 응했다. 사실 평소의 우즈라면 이번 대회를 무조건 포기했어야 한다. 대회 직전 고열에 시달리고, 연습량이 부족해 망신당할 게 확실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그랬다. 자신이 만든 타이거 우즈 재단이 주최한 대회이기도 했지만 그는 샷을 날릴 때 고통스런 표정을 지은 것을 제외하곤 밝고 성실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 8월 컷오프로 탈락한 PGA 챔피언십도 마찬가지다. 우즈는 이때도 도저히 참가해선 안 될 만큼 심각한 허리부상 중이었다. 그런 우즈는 출전을 강행했고, 샷이 끝날 때마다 고통을 이기지 못해 주저앉았다. 지팡이에 간신히 의지하는 모습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기도 했다. 그 상태로 2라운드를 치렀으며 탈락한 뒤 골프장에 대기하던 앰뷸런스에 실려갔다.

황제는 병들고 초라해졌지만 사람들은 그런 그를 보려 경기장을 찾았다. 섹스 스캔들 이후 냉랭했던 팬심이 흔들리기 시작한 거였다. 결국 그의 투혼이 팬심을 돌려 놓는 결정적 반전포인트가 된 셈이다. 4개월 투병 끝에 처음으로 필드에 나타난 게 이번 대회였다. ‘황제 우즈’의 잔상이 여전히 남아 있는 미국 골프팬이나 언론은 그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했고, 재기를 간절히 바라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마케팅 차원이었다면 이 얼마나 멋진 전략인가.
이병진 더스쿠프 고문 bjlee2841200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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