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대부③

▲ 01ㆍ02 영화 '대부'는 결혼식 피로연 장면으로 밝게 시작하지만, 곧 마피아 조직이 등장한다. 03ㆍ04 한 사회의 구성원들은 차별을 느끼면 선량한 시민이길 거부하게 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1945년 8월 어느 화창한 오후. 뉴욕의 범죄세계를 천하통일한 돈 콜레오네(말론 브랜도) 가문의 결혼 피로연으로 영화 ‘대부’는 시작한다. 뉴욕의 고급 주택가 롱 아일랜드(Long Island)에 있는 멋진 저택 정원에서 콜레오네의 막내딸 카니의 결혼 피로연이 벌어진다. 이탈리아(시칠리) 특유의 방식으로 진행되는 가든파티는 활기차고 흥겹다.

피로연이 진행되는 동안 혼주인 돈 콜레오네는 저택의 한구석 침침한 서재에서 특별한 비즈니스를 진행한다. 시칠리의 전통에 따르면 아버지는 딸의 결혼식을 찾은 하객의 청탁을 거절할 수 없다. ‘지하세계’ 권력자의 딸 결혼식에 온갖 칙칙한 민원이 몰린 이유다. 이탈리아계 이민자로 뉴욕에서 성공한 보나세라(Bonacera)라는 장의사도 민원인으로 등장한다.

보나세라는 과거 콜레오네의 후견으로 성공했지만 지하세계의 구설에 휘말리는 게 두려워 콜레오네와도 멀어졌다. 보나세라가 콜레오네를 다시 찾은 건 정의 때문이었다. 사연은 대략 이렇다. 보나세라의 외동딸이 불한당 같은 남자친구에게 순결을 지키려다 폭행을 당했다. ‘선량한 시민’으로 살아가려던 보나세라는 당연히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미국 법정이 불한당에게 내린 처벌은 ‘집행유예 3년’에 불과했다.

보나세라는 마피아의 두목을 찾아 미국사회에서 실종된 정의를 실현해 달라고 청원한다. 보나세라 입장에서 강간을 시도하다 여자의 코를 내려앉게 하고 턱이 빠질 정도의 상해를 입힌 백인 불한당에게 내려진 집행유예 3년은 정의가 아니었다. 보나세라는 자신의 딸이 비주류인 이탈리아 이민자이고, 가해자는 미국 주류인 백인이라서 부당한 판결이 나왔다고 믿었다.

마리오 푸조나 코폴라 감독이 ‘보나세라의 청원’을 영화 도입부에 배치한 건 마피아라는 범죄 조직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모든 사회는 사회 구성원에게 공평한 기회와 평등한 법을 제공해야 유지할 수 있다. 미국은 법치국가로 자유롭고, 평등하며, 정의로운 사회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되레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에 속한 ‘주류’가 지배하는 사회다. 인종적으로는 백인, 민족적으로는 영국계, 종교적으로는 개신교여야 주류사회에 편입할 수 있는 ‘기본 자격’을 갖출 수 있다. 그래야 부당한 불이익도 면한다.

미국은 이민자가 건설한 국가지만 이민자 사이에서도 계층이 존재한다. 영국을 제외한 같은 유럽계 이민자인 프랑스계·독일계·네덜란드계 등 초기 이민자는 비교적 주류 편입이 용이했다. 반면 미국이 이민자들로 포화상태를 이루던 1920~1930년대 이후 이민자인 이탈리아계는 소외와 차별을 받았다. 보나세라는 자신이 ‘미국 시민’이면서도 소수 이탈리아계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자 ‘선량한 시민’으로 살기를 거부한다. 그가 돈 콜레오네를 찾아가 자기 딸을 망친 백인 불한당을 죽여 달라고 청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한 사회의 제한된 가치를 선점한 집단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울타리를 쌓고 외부집단을 배제하면 이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기득권이 말하는 ‘정의’에 동의할 수 없는 집단은 자신들의 또 다른 ‘정의’를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김상회 한국폴리텍대학 안성캠퍼스 학장 sahngwhe@kopo.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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