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준 BMW코리아㈜ 사장

김효준 BMW코리아㈜ 사장은 장수 CEO다. 2000년 이래 15년 동안 BMW코리아의 경영을 맡고 있다. 그사이 BMW의 판매 대수와 매출액은 각각 24배, 21배 늘었다. 고졸 핸디캡을 실력으로 극복한 대표적 인물이다.

▲ 김효준 BMW코리아㈜ 사장.[사진=지정훈 기자]

“프리미엄 자동차 시장의 경우 한국은 일종의 테스트 마켓입니다. 고객이 반응하는 속도가 빨라 전략적으로 상당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죠.” 김효준(58) BMW코리아㈜ 사장은 “IT(정보기술) 분야가 그렇듯이 한국 프리미엄 차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면 다른 나라에서도 성공한다”고 말했다.

프리미엄 차 시장 규모도 작지 않다. BMW코리아의 BMW 그룹 내 현지법인 순위는 지난해 일본·이탈리아에 이어 8위. 1~3위는 중국, 미국, 독일이 차지했다. GT 같은 모델은 지난해 한국 시장에서 전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이 팔렸다. BMW는 국내 진출 1호 글로벌 자동차 기업이다. 김 사장은 다수의 경쟁력 있는 국내 자동차 부품 업체를 발굴해 독일 본사에 소개했다. 현재 22개 업체가 1차 벤더로 본사에 부품을 공급하고 있고, 2·3차 벤더사까지 합치면 약 200개에 이른다.

“1차 벤더사가 향후 3년 반 동안 독일에 납품할 부품이 금액 기준으로 8조2000억원어치입니다. 지금 15개의 아이템 공급업체를 더 찾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납품액이 10조원을 넘어설 거예요.” 한국 부품 제조업체와의 상생이다. 그는 이런 사회적 가치를 꾸준히 확대해 나간다는 점에서 BMW코리아가 좋은 기업을 넘어 훌륭한 기업, 존경 받는 기업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 BMW 본사와 국내 1차 벤더와의 관계가 단적으로 현대·기아차와 협력업체 간의 관계보다 더 상생적이라고 할 수 있나요?

“부품 공급업체는 우리의 파트너로 서로 대등하다는 게 BMW의 철학입니다. 독일의 연구개발센터엔 독일은 물론 전 세계 유수의 부품업체들이 입주해 새 차의 디자인 단계부터 개발에 참여합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벤더사에 3~5년치 물량을 발주하고 납품대금을 미리 지급한 일도 있습니다.”

✚ 국내 원청 대기업의 경우 가격 후려치기 등 협력업체에 대한 갑질이 논란인데요. BMW는 성장의 과실을 협력사와 어떻게 나누나요?

“BMW의 전 세계 판매법인은 BMW가 생산한 자동차를 도매로 딜러에게 넘기고 딜러들은 고객에게 이 차를 소매로 팝니다. 딜러는 말하자면 우리의 핵심 협력업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우리 직원들의 인사고과표에 딜러의 만족도, 딜러가 창출한 고객 만족도와 더불어 ‘딜러의 수익성’이 포함돼 있습니다. 제가 한 제안인데, 지금은 전 세계 모든 BMW 판매법인이 이렇게 합니다. 한마디로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딜러도 챙기라는 거죠. 협력업체 격인 딜러가 적정한 수준의 수익을 내는 건 말하자면 우리와의 공동 목표입니다.”

한국적 가치 기준이 전 세계 BMW 판매법인의 표준이 된 것이다. 그는 이 제안으로 한때 다른 나라 판매법인 CEO들에게서 원성을 들었다고 한다. 딜러의 수익성이 좋아지면 판매법인의 수익성이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정책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진가를 발휘했다. 미국 자동차 빅3도 고전한 시절 BMW는 딜러와의 공고한 협력관계를 바탕으로 가장 빨리 실적을 회복했다.

딜러의 수익성, BMW의 공동목표

그는 장수 CEO다. 그가 BMW코리아의 경영을 맡은 2000년 이래 15년 동안 BMW 판매 대수와 매출액은 각각 24배, 21배 늘었다. MINI를 포함해 전시장 수는 20개에서 55개로, 서비스센터는 20개에서 63개로 늘어났다. 국내에서 창출한 일자리는 6500개에 이른다. BMW코리아는 수입차 업계의 사관학교 격이라고 할 수 있다. 김 사장은 “지난해 국내에서 BMW와 MINI를 약 4만대 팔았는데 올해 10% 이상 성장할 것”이라며 “1위 자리를 지키는 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올해 판매 대수에 대해서는 4만4000~5만5000대 선이라고 밝혔다.

✚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전반적으로 독일차가 강세입니다. 원인이 뭐라고 보나요?

“독일은 기본적으로 기초 공학이 발달한 나라이고 자동차 산업 역사가 100년이 넘습니다. 특화된 자동차 기술을 많이 보유한 만큼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독일차 회사는 저마다 지향하는 가치가 다릅니다. BMW는 오로지 고급 승용차만 만들죠. 트럭, 버스는 물론 택시도 생산하지 않지 않습니다. 연간 200만대 만드는데 전 세계 어느 매장을 가든 똑같은 가치를 기대할 수 있죠.”

✚ 김 사장은 국내 1호 기록을 여럿 보유한 거로 알고 있습니다.

“고객평가단 제도와 핫라인서비스 제도를 처음 만들었고 이들 제도가 BMW 그룹 내 다른 현지법인으로 확산됐습니다. 비영리 공익재단인 BMW코리아미래재단, 지난해 8월 문 연 드라이빙센터도 세계 자동차 업계 초유의 콘셉트입니다. 프리미엄 제품의 차별화된 혜택은 바로 고객의 경험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고객의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 문화 복합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어린이날이었던 지난 5월 5일 저도 갔었는데 1512명의 고객이 찾아 하루를 즐겼습니다. 정말 만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독일 본사가 한국에 이 초유의 시설을 짓도록 한 건 국내 고객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자 한국 시장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1등 기업 BMW코리아가 시작하면 산업의 새로운 표준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임직원들도 자긍심이 높죠.”

✚ 고객이 BMW 차를 살 때 3만원을 기부하면 회사가 매칭 그랜트로 총 12만원을 기부하는 BMW미래재단의 모금 아이디어가 획기적인 건가요?

“기업이 기부를 고객과 같이 한다는 게 남다른 점이죠. 다른 나라에서 벤치마킹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적 가치가 확산되고 있는 거죠. 이런 식으로 지난해 기금 40억원을 모았습니다. 고객의 50~60%가 참여하면 몇 년 안에 연간 100억원을 조성하는 사회재단으로 클 겁니다.”

✚ 고객들이 기부를 통해 실제로 자부심을 느끼나요?

“이 사회를 위해 내가 모종의 역할을 한다는 즐거움을 덤으로 맛보는 거죠. 프리미엄 브랜드 자동차를 탄다는 즐거움, BMW가 추구하는 드라이빙의 기쁨에 더해.”

그는 기부의 다른 예로 지난해 세월호 참사가 빚어졌을 때 BMW코리아가 10억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기부한 것을 꼽았다. 세월호가 침몰하자 그는 세계 최대 아마추어 골프 대회인 BMW 골프컵 인터내셔널 출전자를 뽑기 위해 국내에서 열리는 10회의 예선·본선을 전격 취소하고 대회 예산을 기탁했다. 그는 이 대회가 골프에 열성적인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에 잘 맞는다고 덧붙였다.

“그때 대회 참가 고객들에게 일일이 물어 보지 않아 사실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11일 180명의 올해 참가 고객들에게 뒤늦게 사정을 설명했더니 대부분 잘했다고 박수를 쳤습니다. 이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BMW로부터 국내 기업들이 배울 점은 뭔가요?

“BMW의 운영위원회 멤버들을 만나 보면 10년 이상의 장기 플랜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CEO들이 단기 성과를 중시하는 건 우리 기업의 지배구조와도 관계가 있습니다만. 우리는 CEO의 수명이 짧고 CEO 시장도 형성이 안 돼 있죠.”

BMW그룹은 가족 기업이다. 오너인 퀀트 가문의 지분은 거의 50%에 이른다. 이렇게 지분율이 높지만 퀀트 일가는 회사 경영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감사위원회에 참여해 경영평가는 한다. 이 가문은 감사위원회에서 일할 후손을 1년간 생산라인에 투입한다.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생산 현장에서 익히게 하려는 것이다. 이때 가명을 사용해 아무도 그가 퀀트 가문 사람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다고 한다.

✚ BMW는 무인자율주행 시대에 어떻게 대비하나요?

“20만㎞ 자율주행 테스트를 마쳤고, 다양한 조건의 다른 나라 도로에서 달릴 차를 테스트 중입니다. 우리의 경쟁 상대는 구글, 애플 같은 IT 기업이 될지 모릅니다. 이들 회사가 완전자동 무인차를 지향한다면 BMW 등 자동차 시장의 전통적인 강자들은 주행의 즐거움도 주는 차를 내놓을 겁니다. 무인차의 상용화는 사회적 인식과 제도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 BMW코리아에 CEO 승계 프로그램은 있습니까?

“제가 그만뒀을 때 우리 회사가 더 잘 돌아가야 제 역할을 다하는 거라고 봅니다. 한국인 임직원들로 하여금 다양한 부서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게 하고 있고, 지난 4월 임원 2명이 전무로 승진했는데 다른 나라 판매법인 사장으로 나갈 수 있는 직급입니다.”

獨 직업·고등교육 이원화 배워야

✚ BMW가 장차 국내에 생산공장을 설립할 가능성이 있나요?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지금 내수 규모로는 공장을 만드는 게 무리입니다.”

✚ BMW의 고향인 독일로부터 우리가 배울 점은 뭔가요?

“지난 20년간 독일 회사에 근무하면서 독일에 자주 갔습니다. 우선 우리나라가 직업교육과 고등교육으로 2원화돼 있는 독일의 교육을 벤치마킹했으면 합니다. 우리는 학벌주의가 초래한 학력 인플레로 고학력자가 갈 데가 없잖아요. 이 문제를 풀어야 저출산 문제도 해결됩니다. 또 독일을 비롯해 다수의 유럽 국가들은 중소기업이 강합니다. 이른바 강소기업이 많아요. 독일 경제를 추동하는 힘이라고 할 수 있죠. 단일 품목을 만들면서 세계시장 점유율1위인 중소·중견기업이 독일에 1600개가 넘습니다.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s)’이란 말로 잘 알려진 기업들이죠. 우리나라도 대기업 의존적인 산업구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중소·중견기업이 특화된 경쟁력을 바탕으로 성장해 가는 게 세계적인 추세라고 할 수 있죠.”

✚ 저성장 시대인데 중소기업 육성이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고 보나요?

“그렇게 되도록 해야죠. 일자리 문제만 놓고 보면 단적으로 일자리 창출에 대기업이 한계를 드러냈다고 봅니다.”

✚ 우리나라가 지금 단계에서 테이크오프하려면 대기업·중소기업 간 양극화도 그렇고, 결국 양극화 문제를 제대로 풀어야 할 거 같습니다. 학력 간, 직종 간,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도 말하자면 양극화 문제죠.

“우리 회사는 정규직·비정규직 간에 급여 차가 거의 없습니다. 본사의 지침에 따라 비정규직도 뽑지만 정규직과, 만들어 내는 가치에 차이가 없다면 노동의 대가도 당연히 같아야죠. 우리나라 기업들도 왜곡된 분배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 BMW 그룹이 진출한 다른 나라에서도 그렇습니까?

“독일은 직업 간에 임금 격차가 거의 없는 나라입니다. 배관공은 화이트칼라보다 더 많이 벌어요. 이런 사회가 돼야 진짜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말할 수 있죠.”

김 사장은 미국계 기업 대표를 거쳐 1995년 BMW코리아에 CFO(최고재무책임자)로 입사했다. 당시 학력은 상고 졸. 늦깎이로 공부해 2007년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박사 논문은 그해 한국국제경영학회가 주는 올해의 논문 우수상을 탔다. 이른바 공부하는 직장인(Saladent)으로 마침내 학벌의 한계를 뚫고 CEO 자리에 올랐다.

“어디서든 어떤 일이든 시작하라”

✚ 외국계 회사에 한 30년간 근무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외국계로부터 배울 점은 뭔가요?

“한국인은 개별적으로는 아주 우수하고 사업 아이디어도 많은데 사회적으로는 계층 간에 반목하고 지역 간 대립과 갈등이 극심합니다. 여기서 벗어나 스스로 조직화하는 한편 집단 지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리더십 면에서는 상명하복을 요구하기보다 관계, 공존, 상생을 지향하는 수평적 리더십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런 리더십을 갖추려면 기본적인 상식을 존중하고 다양한 문화를 포용해야 합니다.”

✚ 젊은 세대에게 어떤 조언을 주고 싶나요?

“어려워도 긴 안목으로 큰 그림을 그려 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취업 문이 바늘구멍이라 하더라도 조급해 하지 말고, 어디서든 어떤 일이든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가령 좋은 직장을 찾기보다 중소기업에 들어가 전문성을 쌓으라고 권하고 싶어요. 나이 사십이 될 때까지는 한 분야에 몰입해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 보십시오. 어느 분야에서든 전문성이 생기면 다른 분야와 접목하기도 쉬워요. 그때 자신의 영역을 넓히는 겁니다. 틀림없이 기회가 있을 겁니다. 남의 길을 쫓는 건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이필재 더스쿠프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