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시 500만원, 사망시 1억원 … 과한 외국인 보험

메르스의 공포에 살아나던 경제가 다시 침체에 빠졌다. 외국인 관광객수가 급감해 7월과 8월에만 1085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전망이다. 그러자 정부가 나섰다.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메르스 안심보험’을 내놨다. 하지만 실효성이 없는 것은 물론 국민 정서에도 맞지 않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 정부가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메르스 안심보험’을 내놨다.[사진=뉴시스]

메르스(MERSㆍ중동호흡기증후군)의 공포가 한반도를 뒤덮고 있다. 지난 5월 20일 현재 첫 확진환자가 발생한 지 37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그동안 메르스로 목숨을 잃은 환자는 31명. 확진 환자수는 181명, 격리자수는 2642명에 달한다. 메르스는 회복세를 보이던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소비자가 많이 찾는 대형마트ㆍ백화점 등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5월 소비심리의 상승으로 5~6%의 성장세를 보이던 유통업계의 실적은 메르스 확진 환자 증가로 소비심리가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대형마트와 백화점의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4%, 16.5% 급감했다. 또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꺼려 외식업계와 소상공인의 어려움도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지난 22일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메르스로 10조원 정도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분야는 관광산업이다. 메르스 공포의 영향으로 한국을 찾는 외국인의 발길이 끊겼기 때문이다. 한국여행협회에 따르면 7월과 8월 한국을 방문하는 관광 상품을 예약한 외국인 관광객수는 20만2541명으로 지난해보다 82.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최대 관광수요국인 중국의 경우 지난해 81만628명에서 83.7% 줄어든 13만2132명에 그쳤다. 일본은 2만7641명이 예약해 지난해 17만7190명 대비 84.4% 줄어들었고 동남아는 12만6774명에서 3만8285명으로 69.8%, 미국ㆍ유럽 지역은 1만4944명에서 4483명으로 70% 감소했다. 이에 따라 국내 여행업계의 관광수입은 지난해보다 82.1% 줄어 1085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전망이다.

외국인 전용 ‘메르스 안심보험’ 출시

관광산업이 타격을 입자 정부는 관광산업을 살리기 위한 정책을 마련했다. 우선 관광진흥법상 관광사업자로 등록된 17개 광관 업종을 대상으로 720억원의 특별 융자를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정책이다. 문제는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메르스 안심보험’을 출시했다는 데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15일 외국관광객의 불안감 해소를 위해 한국 체류기간 동안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으면 치료전액과 여행경비ㆍ보상금을 지원하는 안심 보험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1주일 만 인 22일 ‘메르스 안심보험’을 내놨다.

적용 시기는 6월22일부터 9월21일까지 3개월간이며 적용 대상은 입국하는 외국인 관광객으로 별도의 절차 없이 입국과 동시에 자동으로 가입된다. 보험내용을 살펴보면 한국을 찾은 관광객이 20일 내에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으면 500만원이 지급되고, 확진을 받은 이후 20일내 사망할 경우 1억원의 보상금을 받게 된다. 적용 시기는 당초 1년에서 3개월로 짧아졌고 보상 내용은 3000달러(약 335만원)에서 500만원으로 조정됐다.

하지만 ‘메르스 안심보험’을 두고 탁상행정이 만들어낸 졸속정책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보험의 손해율을 산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보험을 출시하기 위해서는 위험률 통계가 있어야 하지만 메르스는 아직 이런 통계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 메르스의 치사율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메르스에 관한 구체적인 통계가 나온 것이 하나도 없다”며 “현재 상황으로 보험의 위험률을 산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정부가 국내 보험사에 상품 개발을 주문했을 때 모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며 “보험상품으로 효용성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적용 대상 외국인도 매우 제한적이다. ▲국내 입국 전 14일 내 또는 국내 출국 후 확진일 사이에 중동지역을 방문한 경우 ▲국내 입국전에 감염 가능성이 있거나 고의로 감염된 경우 ▲국내에선 발행하지 않은 변이된 바이러스인 경우 ▲정상적인 절차를 통하지 않고 입국한 경우 ▲정부가 발표한 메르스 발생 의료 기관을 방문한 경우 등이다. 또한 취업비자ㆍ영주권자ㆍ승무원도 등도 대상에서 제외된다.

관광이나 업무 목적의 단기 방문 외국인만 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메르스 안심 보험’이 그저 생색내기용 상품에 불과하다는 비판이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은 “메르스 피해는 정부의 구멍 뚫린 방역체계와 정보공개 지연으로 발생한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 관광객의 불안감을 해소한다며 ‘메르스 안심보험을 들고 나온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 ‘메르스 안심보험’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무엇보다 자국민과의 형평성이 문제가 된다는 의견이다. 사실 메르스의 확산은 보건당국의 ‘초기 대응 실패’에 그 원인이 있다. 최근 메르스를 ‘코르스(KORS)’로 불러야 한다는 조롱 섞인 주장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정부는 메르스 확진환자와 사망자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은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 10일 모든 입원 환자와 격리자에게 한달치 긴급생계자금을 지원하겠다는 발표를 한 것이 고작이다. 지원 금액은 4인 가구 기준 110만5600원(1인 가구 40만9000원, 2인 가구 69만6500원, 3인 가구 90만1100원, 5인 가구 131만200원)에 불과하다.

사망자에게 지급할 보상금이나 지원금은 아직 확정된 것이 없다. 정부는 지난 1일 국내 첫 사망자가 발생한 지 18일이 지나서야 “메르스 사망자에 대해 장례관리지침 등에 따라 화장시설 이용료와 시신 밀봉 등 비용을 지원한다”며 “이 외에 추가 장례비용이나 유족 보상금을 지원할지의 여부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국민 정서 무시한 ‘졸속행정’

이는 일주일만에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상품을 출시한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정부는 메르스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환자와 사망자를 위한 보상ㆍ지원 방안은 검토하겠다는 말만 했다”며 “하지만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보험은 논의 일주일 만에 출시하는 신속함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메르스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 하는 것에만 급급해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며”며 “메르스 대응으로 신뢰를 잃은 정부가 또 한번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금융소비자원은 “국민 정서에 맞지 않고 실효성도 의문시되며, 국제적인 조롱거리로 전락할 수 있는 메르스 안심보험을 혈세를 쓰면서까지 출시했다”며 “보험료를 무상으로 지급할 여력이 있으면 관광업계 종사자에게 메르스 보험 가입을 지원하거나 밤낮으로 고생하고 있는 메르스 치료 의료진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낫다”고 강조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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