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권 철근원산지표시의무화추진회 회장

모든 제품에는 기본적으로 원산지를 표기한다. 심지어 식당에서 나오는 김치조차 국내산인지 중국산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아파트에 쓰이는 철근의 원산지는 해당 아파트를 지은 건설사 외엔 아무도 모른다. 이게 정상인가.” 이재권 철근원산지표시의무화추진회(이하 추진회) 회장이 던진 첫 마디다. 철근유통사 더부자원의 의장이기도 한 이 회장은 ‘을’의 입장임에도 국내 굴지의 건설사를 향해 쓴소리를 거침없이 던졌다. 

▲ 이재권 철근원산지표시의무화추진회 회장(더부자원 의장)은 “건설사가 철근 원산지를 소비자에게 알려주지 않는 것은 부당이득이 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사진=지정훈 기자]
✚ 철근 자체에는 원산지를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이다. 문제는 그 철근이 어떤 건물에 쓰이는지를 건설사밖에 모른다는 점이다. 건축물을 다 짓고 나면 콘크리트에 묻혀 버리니까 알 길이 없다. 추진회가 주장하는 건 소비자들이 알 수 있도록 원산지를 표기하라는 거다.”

✚ 철근 원산지 표기가 중요한 이유는 뭔가.
“철근은 건물의 척추에 해당한다. 고층건물의 경우 쓰러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약간씩 흔들리게 설계를 하는데, 이때 철근이 건물의 유연성을 잡아준다. 때문에 철근이 불량이면 그 건물의 안전은 담보할 수 없다. 더구나 아파트는 사람들이 생애 구매하는 가장 비싼 제품 아닌가. 하물며 쇠고기도 원산지 표시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아파트보다 더 싼 제품들엔 적용되는 원산지 표기가 건설현장에서만 적용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 그 이유는 뭔가.
“부당한 이해관계 때문이다.”

✚ 자세히 설명해 달라.
“건설사는 중국산 저가 철근을 쓰고도 원산지를 알리지 않고 마진만 챙긴다. 부당이득이다. 중국산이 국내산으로 둔갑하면 그 마진은 더 커진다. 건설사든 판매업자든 자신들이 사용하는 철근의 원산지를 공개할 필요가 없다. 공개하는 순간 마진을 많이 챙길 수 없어서다. 이게 부당한 이해관계지 뭔가. ”

✚ 소비자만 피해를 볼 수도 있겠다.
“당연하다. 소비자가 자신들이 사는 아파트에 불량 중국산 철근이 들어갔는지 어찌 알겠는가.”

✚ 중국산 철근은 국내산보다 얼마나 싼가.
“일반적으로 10% 이상 싸다. 원가절감을 해야 하는 건설사라면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운 수준이다.”

✚ 10%보다 더 싼 것도 있다는 얘긴가.
“그렇다. 바다 건너 수입해오는 철근이 10% 이상 싸다는 건데, 과연 품질을 담보할 수 있겠는가.”

 
✚ 최근 추진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중국산 철근을 사용하고 있는 건설사와 건설현장 리스트를 공개했다. ‘중국산=불량품’이라는 식으로 비칠 수도 있을 것 같다.
“중국산 철근이 전부 불량은 아니다. 하지만 철근은 철저하게 ‘안전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안전기준’으로 봤을 때 국내산이 1~10등급까지 있다면 중국은 1~1000등급 정도까지 나눠져 있다. 안전 인식이 우리와 다르다.”

걸러지지 않는 중국산 불량 철근

✚ 정부기관이 중국산 철근 품질을 검사하지 않나.
“검사는 한다. 하지만 허점이 있다. 일단 국가기술표준원으로부터 KS인증을 받으면 그 뒤에 들어오는 제품들은 검사 없이 수입된다. KS인증을 받은 후 불량 철근을 납품해도 걸리지 않으면 수입되는 구조다. 물론 수시로 실시하는 샘플 조사를 통해 규격에 맞지 않는 게 적발되면 인증은 취소된다. 이럴 때 다른 물건들은 리콜을 하면 그만이지만, 철근은 그렇지 않다. 건물을 무너뜨리고 새로 지을 수가 없어서다. 그러니 더 심각하다.”

✚ 중국산 철근이 얼마나 많은 아파트 현장에 쓰였다고 보는가.
“우리나라의 연간 중국산 철근 수입량이 약 100만t, 아파트 한 가구당 약 10t의 철근이 쓰인다. 중국산 철근이 본격적으로 수입된 지는 5년 정도 됐고, 업계에서는 중국산 불량 철근 유입 비율을 대략 30%로 본다. 계산상으로 보면 약 15만채의 아파트에 중국산 불량 철근이 쓰인 것으로 볼 수 있다.”

✚ 추진회의 이런 주장을 건설사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상당수의 건설사가 철근 원산지 표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전부 반대하는 건 아니다. 개중엔 의식이 있는 건설사들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대우건설이다. 중국산을 쓰지 않는다는 걸 광고하지도 않는다. 이런 건설사들은 철근의 원산지를 표기하자는 주장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반발하는 건설사들은 중국산 저가 철근을 쓰는 곳들이다. 때문에 이 문제가 풀기 어려운 숙제는 아닌 듯하다.”

 
✚ 중국산 철근을 사용한 건설사 리스트엔 롯데건설도 있다. 최근 제2롯데월드의 안전성이 문제가 됐는데, 여기에도 중국산 철근이 사용됐다고 보나.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 높은 건물에 중국산 철근을 썼다면 안전성에 문제가 있을 거라 본다. 중국산 철근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문제다. 그럼 그 많은 중국산 철근이 어디로 갔겠나. 롯데건설이 지은 아파트에 들어가지 않았겠는가.”

✚ 아파트 건자재 중에는 불량 골재 문제도 심각한 것으로 안다. 추진회의 철근 원산지 표기가 잘 진행되지 않으면 관련 업계와의 연계도 생각하고 있나.
“골재 쪽에는 전문지식이 없었는데, 이번에 철근 원산지 문제를 따지면서 골재 문제도 알게 됐다. 심각하더라. 때문에 현재 국회에서도 골재와 철근의 원산지 표기를 관심 있게 보고 있는 것으로 안다. 만약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으면 연계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소비자 선택이 건전한 시장 만들 것

✚ 건설사는 더부자원의 고객사다. 원산지 표시 의무화 주장을 하면 회사 실적에 악영향이 있을 듯한데.
“일부 건설사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기도 했고, 철근을 안 받겠다는 곳도 있다. 그렇다고 국민 안전을 담보로 장사를 하고 싶지는 않다. 길게 보면 철근 유통시장도 한단계 성숙할 수 있으니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제대로 된 정보가 소비자에게 전달되면 정확한 구매결정이 이뤄진다. 중국에서 조립된 벤츠와 독일에서 조립된 벤츠의 선호도가 다르고, 한우냐 미국산이냐에 따라 소비자의 선호도는 달라진다. 마찬가지로 아파트에 쓰인 철근이 중국산이라는 사실을 알면 소비자의 결정도 달라질 거다. 정확한 정보에 따른 소비자의 선택이 왜곡되지 않은 건전한 시장을 만들 수 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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