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의 프리즘 | ‘치킨공화국’의 웃픈 현실

▲ 치킨집과 미장원, 삼겹살집으로 대변되는 생계형 자영업에 활력이 돌아야 내수가 돌아가고 서민경제가 살아난다.[사진=뉴시스]
우리나라 치킨집이 전 세계 맥도널드 가게보다 많다는 사실은 우리를 ‘웃프게’ 한다. 삼시 세끼 치킨만 먹고 사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 많은가. 2013년 기준 통계로 3만6000개라니 그새 늘어난 곳과 통계에 잡히지 않은 데까지 합치면 5만개에 육박하리라. ‘치킨공화국’이라 부를 만하다.

어디 치킨집만 많은가. 카페도, 미장원도 몇 집 건너 하나 꼴이다. 고만고만한 음식점들이 즐비한 가운데 24시간 영업이나 연중무휴를 내세우지만 몇 달 안 가 문을 닫는가 하면 이내 다른 가게가 개업 준비에 나선다. 이 와중에도 건물 주인은 임대료를 꼬박꼬박 챙긴다. 남 밑에서 눈치 보며 샐러리맨 노릇 하기 싫어 창의적인 사업을 하는 것(기업가적 창업)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은 딴판이다. 상당수가 직장에서 은퇴하거나 떨려난 뒤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생업 전선에 뛰어든다(생계형 창업). 퇴직금으론 모자라 은행 대출을 받아 장사를 시작한다.

자영업은 지금 ‘3고(高=고밀도화ㆍ고연령화ㆍ고부채)’의 함정에 빠져 있다. 40~ 50대 중심으로 이미 남들이 많이 하는 업종에 뛰어드니 경쟁이 치열하다. 고연령층은 상대적으로 아이디어가 빈곤해 남을 따라 하다가 실패할 확률이 높고, 재기할 수 있는 여력도 약하다. 비싼 가맹비를 내고 프랜차이즈 점포를 열어도 프랜차이즈 본사만 살찌울 뿐 가게 장사는 시원찮다. 빚을 내 일을 벌였는데 벌이가 시원찮으니 시간이 갈수록 부채만 쌓인다.

‘3고’ 함정은 ‘3저(低=저숙련ㆍ저소득ㆍ저희망)’ 현상과 함께 자영업의 빈곤화를 가속화한다. 준비 없이(저숙련) 뛰어드니 경쟁이 격화돼 장사가 안 되고(저소득), 폐업으로 마감하며, 가정까지 흔들린다(저희망). 1997년 말 외환위기, 2003년 카드대란, 2008년 금융위기에 이어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하며 직장을 잃은 가장들이 대거 생계형 창업에 뛰어들었다가 얼마 안 되는 퇴직금마저 날리고 있다.

자영업이 그러려니 하고 방치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소득 격차에 따른 양극화가 심화되고 사회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미 포화 상태인 레드오션 업종에 퇴직자들이 불나방처럼 몰려드는 현실을 정부가 몰라라 해선 안 된다. 은퇴하는 베이비붐 세대가 가진 숙련된 기술과 노하우를 살리는 재취업 및 직업전환 프로그램을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

치킨집과 미장원, 삼겹살집으로 대변되는 생계형 자영업도 먹고 살 수 있어야 내수가 돌아가고 서민경제도 살아난다. ‘3고-3저’의 악순환 고리를 끊고 ‘강소 자영업’을 육성하는 특단의 대책이 나와야 한다. 대통령이나 장관, 자치단체장과 후보자들이 명절이나 선거 때 시장을 찾아가 음식을 먹어 주며 사진을 찍는 일과성, 전시성 이벤트로는 안 된다.

자영업 관련 빅데이터부터 만들자. 세밀한 지역ㆍ업종ㆍ업태별 통계가 있어야 맞춤정책을 펼 수 있다. 세부 업종별 실태조사와 함께 지역별 상권지도를 작성해 창업 희망자에게 제공하고 컨설팅도 해 주자. 프랑스처럼 일정 거리 내 동종 업종 점포 개설 및 영업 일수 제한, 지역인구 대비 업태별 개설 한도 설정 등 쏠림과 과당 경쟁을 차단하는 행정지도를 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머리를 맞댈 일이다.

자영업을 소기업 내지 전문기업으로 불러 자부심과 함께 경영 마인드를 기르도록 유도하자. 이를테면 ‘미용 전문기업’ ‘○○ 제조 전문기업’으로 부르는 것이다. 특성화 레스토랑 육성 전략도 써 보자. 싹수 있는 음식점에 장기 저리 시설자금을 지원하며 컨설팅과 함께 경영발전계획을 세워 실행토록 하는 것이다. 560만 자영업자, 봉급 없이 함께 일하는 가족까지 합치면 700만명을 넘긴다. 이들의 부양가족을 고려하면 얼추 2000만명이 자영업에 기대 살아간다. 치킨집은 망하고, 치킨집 사장이 건물 주인을 먹여 살리는 현실을 언제까지 버려둘 텐가.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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