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균의 탐욕 ‘순신’ 흔들다
원균의 탐욕 ‘순신’ 흔들다
  • 정리 | 이남석 발행인 겸 대표
  • 호수 163
  • 승인 2015.10.30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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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이순신공세가(86)

▲ 원균은 품성이 바르지 못하고 교활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원균이 자신을 모함한다는 소문을 들은 이순신은 조정에 “사직하겠다”는 장계를 올렸다. 하지만 조정엔 아직 충신이 남아 있었다. 일부 대신이 “순신 같은 장수를 면직시킬 수 없다”며 보호했다. 그러자 원균은 조정에 있는 당파를 이용하여 순신을 무함하기를 “100만명의 유민流民을 거느리고 삼도의 해왕 노릇을 한다”고 선전하였다.

그 무렵 이순신 장군도 소서행장과 요시라의 반간계에 휩쓸리기 시작했다. 김응서는 자신의 뇌물죄를 덮기 위해 이순신을 끌어들였고, 결국 이순신은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그의 빈자리는 원균이 메꿨고, 수군대장에 올랐다.  하지만 그 이후 조선 수군은 힘을 쓰지 못했다. 삼도의 병선은 칠천도에서 전멸이 되고, 수군 근거지 한산도는 적군에게 유린을 당했다. 남도 유민 100만명도 어육이 되는 참화를 면치 못했다. 죽여야 할 김응서를 놔두고 반간계에 속아 넘어간 게 죄罪라면 죄였다.

원균은 품성이 바르지 못하고 교활했다. 조정에 세력이 있는 사람을 대하면 우대하고 아첨했지만 그 사람의 세도가 막히면 배척하고 괄시했다.  애당초 원균은 이순신에게 붙어 있었다. 임진년 초에 패전敗戰 도주한 여러 죄를 순신이 면하게 해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순신이 공을 올릴 때마다 원균은 자신의 공인양 치장하기 바빴다. 많은 수급을 조정에 헌공하면서 “이순신은 매번 싸움을 시작할 때 머뭇거려서 이 원균이 분을 내어 힘껏 싸워 이렇게 많은 수급을 베었다”고 선전했다.

순신이 수군통제에 올라 수군의 모든 제장을 통할하기에 이르렀지만 순신에겐 만만한 환경이 아니었다. 조정의 권력 구도는 유성룡 등 동인 세력이 약해지고 서인과 북당이 득세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균은 순신의 세도가 자신을 따라오지 못할 거라고 확신하고 순신을 배척하기 시작했다. 적과 대치할 때엔 순신의 지휘명령을 듣지 않았다.
 

▲ 공명정대한 순신은 “나라를 노린다”는 소문에 휩싸였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이억기와 이운룡 등의 장수가 원균을 보고 “우리 몇몇이 나라가 위난한 때 마땅히 협심해야 할 것이거늘 어찌 작위의 고하와 권세의 유무로써 다투리오!”라며 조정하였으나 어둡고 고집스러운 원균은 종시 이억기 등의 회유를 불청하였다. 순신은 원균의 행동을 용서하였다. 하지만 조정은 순신을 훼방하기 일쑤였다. 원균의 아첨과 뇌물에 눈이 어두워진 지 오래였기 때문이었다. 이 소문을 들은 순신은 조정에 사직하겠다는 장계를 올려 자기를 면직시켜서 몸이 온전하게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여 달라고 하였다.

순신 배척 시작한 원균

다행히도 조정에 남은 일부 충신이 “순신 같은 장수를 면직시킬 수 없다”며 보호했다. 그러자 원균은 조정에 있는 당파를 이용하여 순신을 무함하기를 “100만명의 유민流民을 거느리고 삼도의 해왕 노릇을 한다”고 선전하였다. 1595년 8월에 체찰사 우의정 이원익이 삼남 각지를 순행하다가 호남지방에 도착하였다. 수군행정에 관계되는 호소를 관청에 올리는 군민이 무수하였으나 이원익은 그 자리에서 처결하지 아니하고 모두 묶어서 이순신에게 처결하라 하였다.
 
그런데 이순신의 처결에 합당하지 않은 게 없었다. 모두 공명정대할 뿐만 아니라 철저하게 처결되었다. 도체찰사 이원익을 비롯하여 부체찰사 한효순韓孝純 이하 종사관까지 크게 놀랐다. 자기들은 능히 미치지 못할 바라고 하면서 그 재주를 못내 탄복하였다. 이원익은 한효순 이하 종사관을 데리고 진주를 떠나 이순신의 병선에 올라 한산도 진중으로 들어왔다. 한산도는 영루가 험고하고 규모와 배치가 주밀하였다. 실로 하늘이 만든 요새라 할 만했다. 삼남 수로의 인후목이어서 난공불락의 해상 장성長城이었다.

바다를 덮은 전선과 거북선이며 6만의 용맹한 장졸을 두루 점검한 이원익은 순신과 걸상을 함께하여 군사 정보를 논의하였다. 그렇게 밤을 지내고 이튿날 출발하려 할 즈음 순신이 조용히 진언했다. “대감이 조정을 대표하여 이곳에 왕림하시매 일반 장졸의 심정이 바라는 바가 있사옵니다. 호궤(군사들에게 음식을 베풀어 위로함)라도 한번 하여서 성상께서 불쌍히 여기면 변경의 군정軍情에 서운함이 없어질까 합니다.”

이원익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달았지만 이렇게 답했다. “내가 미리 준비한 바가 없은즉 어찌 할 수 없어 매우 미안하오.” 순신은 “대감이 허락만 하신다면 소인이 마련할 터이니 염려할 것 없소”라고 하였다.
순신은 담당자에게 명하여 소 30마리를 잡게 하고 산해진미를 요리하며 수천 독의 술을 빚어 삼도수군을 먹이고 성은이 두터우니 나라를 위해 힘을 다할 것을 선유하였다. 또한 활쏘기와 씨름판을 벌여 상을 많이 줬다. 그러자 삼군은 임금의 은혜에 감격해 했다.

전장에서도 행실 바른 이순신

이원익이 떠날 때에 “당신을 대신할 만한 장수의 재목이 누구인가”라고 물었다. 순신은 이억기, 이순신李純信, 이운룡 등 제장을 천거하였다. 순신이 진에 머무른 지 이제 4~5년. 여색은 일절 가까이 하지 않고 잘 때에도 옷끈을 끄르지 아니하였다. 잠도 하루에 2시간가량만 청하고 부하 제장과 군무를 의논하는 데 밤을 썼다. 그럼에도 조금도 피로한 기색이 없었다. 순신의 정신력은 보통 사람보다 훨씬 강했다.

주량도 대단해서 당해 낼 이가 없었다. 혹시나 연회를 하더라도 취태를 보이는 일이 없었다. 도리어 닭이 울 때면 반드시 일어나 촛불을 밝혀서 군중 문서를 살피며 계책을 강론했다. 참으로 ‘유주무량有酒無量에 불급어란不及於亂(술은 일정한 분량을 정해 두지 않고, 기분이 좋은 정도에서 그친다)’이었다.  그 무렵인 1597년 1월 일본의 풍신수길은 명나라 책봉을 받은 게 형식에 불과했다고 여기고서 조선을 다시 침략하였다. 정유재란이 발발한 것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 | 이남석 발행인 겸 대표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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