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은 정리 대상인가

   
▲ 노점은 때로 상권을 살리는 역할을 한다.[사진=지정훈 기자]
당신은 노점이 사라졌으면 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노점을 단 한번도 이용한 적이 없는가. 노점에서 지갑을 열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거다. 이런 노점이 최근 정리되는 분위기다. 도로 정비 차원으로 ‘스마트 거리’를 조성한다는 게 이유다. 당연히 노점 상인들은 반발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생계가 걸려 있다”는 노점과 “도로를 정비하겠다”는 지자체. 물론 과거처럼 무조건 철거용역반을 투입해 부수고 철거하겠다는 건 아니다. 갈 곳을 마련해 줄테니 알아서 둥지를 옮겨 정당하게 장사를 하라는 것이다. 반면 노점상인들은 “지자체 정책에 맞춰 자리를 옮기라는 것 자체가 ‘노점상 죽이기’와 다를 바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제도권으로 들어오라는 지자체와 순순히 따를 순 없다는 노점. 해묵은 갈등이 평행선을 달리는 근본적 이유다.

이런 갈등이 최근 들어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서울시가 2013년부터 노점을 특화거리를 조성하면서다. 서울시는 이를 위해 상생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공무원, 학계, 시민단체, 상가 대표는 물론 노점 대표도 이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대화를 통해 노점문제를 해결할 타협점을 찾고 방향성을 잡아보자는 거다. 그 덕에 깨끗하게 바뀐 노점거리도 있다. 신촌 연세로와 노량진 컵밥거리가 대표적이다. 시민들은 깨끗하고 보행에 지장을 받지 않으니 좋다.

▲ 정비 얘기가 나올 때마다 노점 상인들은 불안감을 느낀다.[사진=지정훈 기자]
노점도 수익은 조금 줄었지만 단속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니 나쁘지만은 않다. 지자체도 관리가 쉬워졌으니 편하다. 다른 지자체들이 노점관리에 나서는 건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제2, 제3의 연세로와 ‘노량진 컵밥거리’를 만들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사실 노량진 컵밥거리가 ‘스마트 노점’으로 거듭난 건 상인과 지자체의 끊임없는 소통 덕분이다. 다른 지자체와 노점 상인들이 이런 소통 채널을 가질지, 또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지는 알 수 없다.

실제로 이화여대 앞 노점상인, 강남역 노점상인은 지자체를 믿을 수 없다며 ‘노점 정리 계획’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동대문의 노점 상인 역시 마찬가지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의 한 노점상인은 “동대문 지역은 그나마 판매대를 임의로 넓힌 경우만 단속하고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면서 “만약 노점을 정리해서 옮기는 차원이라면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결되지 않은 해묵은 문제들

사실 지자체가 노점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이유와 명분은 명백하다. 노점을 그냥 거리에 놔둠으로써 발생하는 문제가 제법 많아서다. 무엇보다 세금을 부담하지 않고 길에서 장사를 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인근 상점과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도시미관, 보행로 확보, 위생관리 등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특히 위생관리 측면에서 먹거리 노점은 ‘4대악’ 혹은 ‘5대악’이라는 오명도 쓰고 있다. 최근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국제이미지 개선이라는 명목도 붙었다.

근거는 또 있다. 노점 자체가 불법인데도 일부 지역에선 권리금이 붙어 매매되기도 한다. 노점 상인이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운영하는 곳도 있다. 이들은 신규 노점을 규제하는 시장 파괴자 역할까지 한다. 어두운 곳에서 패권을 형성해 또 다른 저소득층을 힘들게 하는 노점상도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노점 상인의 반론을 외면해선 안 된다. 이들의 주장에도 이유와 명분이 있어서다. 먼저 정부와 지자체가 노점 상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적이 많지 않다. 대화 상대로 인정조차 안 하는 지자체도 적지 않다. 지자체의 노점 관련 부서에 활력이 감도는 것도 아니다. 현장에서 상인과 대화 또는 타협을 해야 할 일선 공무원은 노점 관련 부서를 기피하기 일쑤다. 일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열심히 한다고 해도 티도 안 나고, 욕먹기 딱 좋은 부서라는 이유로 기피부서 1호로 꼽힌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무슨 장기적인 대화와 타협이 가능하겠나”라고 반문했다. 노점상인들이 지자체의 ‘상생’을 의심하는 건 이런 이유도 한몫하고 있다. 노점이 ‘해악’만 끼치는 것도 아니다. 지역 상권을 살리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는 분석도 많다. 프랜차이즈 창업 컨설턴트들이 상권을 분석하는 데 노점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 대표 사례다.

한 프랜차이즈창업 컨설턴트는 “시장이든 아파트 단지든 점포를 고르면서 정문이 괜찮은지 후문이 괜찮은지 판단하기 애매할 때, 노점을 보면 답이 나온다”면서 “노점이 있고, 더 많은 곳이 무조건 장사가 잘 되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상권에 주고받는 영향이 크다는 설명이다. 그는 “노점이 있어서 좋은 상권이 되는 건지 상권이 좋아서 노점이 잘 되는 건지 알 수 없다”면서도 “경험상 노점이 상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근거는 많아도 그 반대 근거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누가 노점을 ‘악의 축’ 취급하나

노점은 소비자의 욕구를 중심으로 형성된다. 그래서 트렌드에 민감하다. 행인의 발걸음을 잠시라도 멈추게 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다. 흥미롭게도 행인이 멈추는 순간 경제적 파급효과가 발생한다. 노점에 머무는 동안 다른 건 없나 둘러보거나 쇼핑거리를 찾는 행인이 상당수라서다. 노점 인근 상권이 발달하는 예가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창업 컨설턴트는 “서울 명동에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가 넘쳐나는 게 단순히 화장품 가게가 많아서는 아니다”면서 말을 이었다. “유동인구가 아무리 많아도 장사가 안 되는 지역이 있다. 장사가 안 돼 노점이 안 들어가는 것도 있지만, 노점이 없어서 장사가 안 되는 측면도 있다.”

▲ 강남구는 노점 단속이 특히 심한 곳으로 꼽힌다.[사진=뉴시스]
노점 이동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이대앞 노점 상인들의 주장도 비슷하다. “다 죽어가는 상권, 누가 살렸는가. 노점 상인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살렸다. 그런데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신촌기차역 인근으로 둥지를 옮기란다. 누가 좋아하겠나. 결국 우리가 살린 상권을 돈 있는 이들이 집어삼키는 것 아닌가.” 노점이 존재해야 이유는 또 있다. 생계형 저소득층이 노점 상인의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노점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데 그토록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수익이 감소하면 생계가 막막해져서다. 문제는 생계형 노점이 불황의 타격을 직접적으로 맞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0 ~2014년) 서울시 전체 노점 수는 700여개가 줄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자 노점마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간신히 연명해도 장사가 잘 될 리 만무하다. 비교적 장사가 잘 되는 명동의 노점상인조차 “예전엔 경기가 어려워도 좀 더 값싼 물건, 값싼 먹거리를 찾아 노점을 찾았는데, 요즘엔 그런 소비도 많지 않다”고 푸념을 늘어놓기 일쑤다.

최인기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사무처장은 “노점문제의 해결점을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면서 “노점을 단속하고 정리하기 전에 저소득층 생계형 노점이 나오지 않도록 정부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복지정책을 통한 사회안전망을 갖추는 게 먼저”라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에 일부에선 “노점 상인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반박한다. “규격화된 판매대를 주겠다는 데도 반발하는 데 뭘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손님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없앤 규격화된 판매대는 수익 감소를 부추기는 원인이라서다. 그 판매대를 노점 상인이 직접 사야 하는 부담도 있다.

지자체가 상생위원회를 열어 노점상인들과 합의점을 찾으려 해도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돈을 많이 벌고 적게 벌고의 문제가 아닌 당장 먹고 사는 문제 앞에서는 ‘양보하라’는 말이 ‘죽으라’는 말로 들릴 수 있어서다. 법의 테두리 밖에 있는 노점은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소비자를 위해서도 그게 좋은 방법이다. 노점 상인의 입장을 대변하는 홍인옥 도시사회연구소 소장조차 이렇게 말했다. “먹거리 노점의 경우 식품위생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 후진국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제도화는 당연한 수순이다.

다만 세부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노점상인들 간에도 협의가 잘 이뤄지지 않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문제는 방법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노점 상인을 ‘정리’ 혹은 ‘관리’의 대상으로 보는 한 문제 해결은 묘연해진다. 노점 상인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게 출발점이다. 최인기 사무처장은 “지자체들의 노점정책은 신규 노점은 막고, 기존 노점은 점차 줄이는 게 기본 방침”이라면서 “CCTV 등을 통해 신규 노점은 즉각 철거해가고, 기존 노점은 관리대상으로 묶어두고 있으니 장기적으로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조치한다는 건 노점 상인을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라고 꼬집었다.

모두가 수용할 대원칙 필요

이런 맥락에서 홍인옥 소장의 지적은 들어볼 필요가 있다. “시민들 역시 때에 따라 노점을 이용하면서도 막상 그 존재 자체는 부정하려 한다. 그래서 민원을 넣는다. 이건 이중 잣대다. 정부와 지자체는 앞에선 노점과의 상생을 이야기하면서 뒤편에선 노점을 아예 없애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곤 한다. 너도나도 노점을 하겠다고 하면 어쩌냐고 주장하는데 그들의 노동강도를 직접 경험해보면 그런 말이 나올 수 없다. 노점 상인에게도 문제는 있다. ‘생계’를 운운하면서 제도권 안으로는 들어가라고 하면 ‘규제 때문에 싫다’고 손사래를 친다. 이래서는 안 된다. 모두가 한걸음씩 양보해야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 수 있다.”

도로는 공공의 영역이다. 정부나 지자체, 노점 상인들의 것이 아니다. 이 공공의 영역을 두고 옥신각신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아이러니다. 노점 정책을 상생의 관점에서 다시 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점의 실태를 조사하고, 노점 허용의 기준을 정하는 것은 나중에 해도 괜찮다. 그렇다. 노점은 정부나 지자체, 그리고 상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풀어야 할 과제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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