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멘토링(23) 한비야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교장 1편

‘누리꾼이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 1위 한비야(58)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교장은 인터넷 검색만 하지 말고 사색을 하라고 권했다. ‘대학생이 존경하는 인물’ 1위이기도 한 그는 고졸 벽을 넘으려 늦깎이로 대학에 진학했다. 국제구호 전문가이지만 이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 한비야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교장은 “가슴 뛰는 일을 찾기 위해서는 독서를 통한 사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사진=지정훈 기자]

Q 멘티가 멘토에게

어른들은 우리에게 자기만의 꿈을 찾으라고 말합니다. 뛰어난 몇몇 학생들은 그럴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아마 대다수는 꿈을 찾느라 경쟁에서 뒤처지게 될 걸요. 이게 우리의 냉정한 현실입니다. 대학입시에 실패하지 않으려면 공부에 전념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입시가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나요?

A 멘토가 멘티에게

열 살 무렵부터 세계지도를 들여다보면서 세계 여행을 꿈꿨습니다. 언젠가는 꼭 세계일주를 하리라 마음먹었죠. 실제로 세계일주를 한 것이 서른다섯 안팎이었으니 25년 만에 꿈을 이룬 거죠.

오지 여행을 혼자 다니는데 굶어죽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아이들이 있다는 걸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도 내가 전공한 국제 홍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6년간의 세계 여행을 마친 후 지난 15년간 긴급 구호 현장을 찾아다니는 국제구호 활동가로 일했습니다. 6년 동안 ‘바람(wind)의 딸’로 살았다면 그 후 15년간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바람(hope)의 딸로 살았어요. 국제구호가 최종적인 목표도 아니에요. 어떻게 보면 가슴을 뛰게 만든 하나의 도구였다고 할 수 있죠.

목표란 산맥과 같은 것입니다. 산맥은 산등성이를 잇는 능선으로 연결돼 있죠. 세계일주를 하다 보니 국제구호 활동가가 됐고, 결국 세계시민학교를 만들게 됐어요. 능선을 타다 보면 가슴을 뛰게 만드는 또 다른 봉우리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죠. 내 삶을 관류하는 하나의 원칙은 “즐겁고 자유롭게, 기왕이면 남을 도우면서 살자”입니다. 더 재미있고 의미도 있는 일, 가슴을 뛰게 하는 무엇을 찾으면 그 일을 하게 될지 몰라요.

대학입시에 실패하지 않으려면 공부에 전념하는 수밖에 없다고요? 그래서 대학에 들어가면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거 같아요? 나도 대학에서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다수의 학생이 1학년 때부터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느라 골몰합니다.

‘바람(hope)의 딸’로 거듭나

꿈을 꿔 본 적이 없으니 가슴을 뛰게 하는 것도 없어요. 엄마의 꿈, 선생님이 심어 준 꿈, 내

꿈이 아니라 남들이 선망하는 직업적 꿈이 있을 뿐이죠. 뷔페에 갔으면 샐러드부터 후식까지 자기가 먹을 음식을 스스로 선택해야죠. 자기가 음식을 직접 골라서 자기 접시에 담아야죠. 인생이라는 평생 뷔페에 차려진 음식을 부모가 고르게 할 거예요? 고기가 가장 비싸니 고기 앞에 줄 서라고 하면 설 거예요? 엄마가 담아다 줄 테니 넌 자리에 앉아 있어 하면 포크 들고 기다릴 건가요? 평생 남 핑계 댈 거라면야 꿈 없이 살아도 됩니다.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이 없는데 어떻게 하냐고요? 없을 리 없습니다. 가슴을 뛰게 하는 무엇이 어디 있는지 모르거나 열심히 찾아본 적이 없는 거죠. 내 삶의 원동력이 될 그 무엇을 찾으세요. 그게 직업일 수도 있고 취미생활일 수도 있어요. 누군가에겐 봉사활동일 수도 있어요. 그 약발이 평생 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어떻게 찾느냐고요? 생각을 해야죠. 남 핑계 대지 말고 어리광을 부리지도 말고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세요. 나는 누구인가? 어떤 삶을 살고 싶나? 어떤 세상을 꿈꾸나? 어떤 사람과 평생 동행하고 싶나? 이게 과연 내 생각일까 남 생각일까? 판검사를 꿈꾸든 의사가 장래 희망이든 이게 진짜 내 꿈 맞나? 인터넷만 하지 말고 생각을 하세요. 검색을 하지 말고 사색을 하세요.

일기를 쓰면 도움이 됩니다. 매일 일기를 쓰다 보면 생각의 뿌리가 깊어집니다. 또 독서를 꾸준히 하세요. 생각을 하려면 생각을 촉발하는 매체가 필요합니다. 매체로 책 만한 것이 없어요. 책을 읽을 때와 컴퓨터로 검색을 할 때 반응하는 뇌가 서로 다릅니다. 책 읽을 때 나타나는 뇌의 활동은 과거의 경험과 연관돼 있습니다. 다섯 시간 동안 독서를 하고 책을 덮으면 다섯 시간 전의 나와 달라져 있습니다. 다섯 시간 만에 사람을 변화시키는 활동은 독서 말고는 없어요.

여행을 하면 자신의 가능성의 한계가 넓어집니다. 7박8일간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달리고 나면 어떤 기차 여행도 지겹지 않습니다. 나름 막강한 레퍼런스가 생기는 거죠. 관광도 좋지만 걸어서 하는 여행을 해 보세요. 5감으로 하는 여행이죠. 귀와 눈을 열어 놓고 한번 발이 아플 때까지 걸어 보세요. 생각도 깊어지고 사람도 만날 수 있습니다. 특히 혼자 하는 걷는 여행이 베스트입니다. 젊은 날에 종단이든 횡단이든 우리 국토를 통과해 걸어보세요.

나도 대학입시 실패했다

대학입시가 꿈도 포기하고 매달릴 만한 가치가 있냐고요? 나는 첫 대학입시에 실패했습니다. 공부를 잘했지만 바로 밑에 남동생이 있어 진학을 포기했어요. 6년간 고졸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다방 DJ, 과외교사, 세무서 임시 직원 등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 시절 책도 참 많이 읽고 다양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고졸의 벽을 넘느라 결국 대학에 갔는데 그랬기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대학에 가지 않고도 나름대로 인생을 가치 있고 풍요롭게 살 수 있다면 대학 안 가도 됩니다. 자기 기만이 아니라 진짜 그럴 용기, 고졸로 살아갈 용기가 있으면 대학 가지 말아요. 그랬다가 나중에 진학을 해야겠다 싶으면 그때 가면 됩니다.

한때 대학 진학을 포기했던 내가 지금 환갑을 앞두고 박사과정 공부를 합니다. 15년 간의 구호 현장 경험이 연구 성과로 이어져 좋은 정책으로 만들어지기를 바라서입니다. 나는 할까 말까 망설여질 때 꼭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남 돕기, 여행ㆍ산책 등 자연과 놀기, 그리고 공부입니다.

무엇보다 공감의 능력을 키워 보세요. 지구촌이 이제 하나의 집이 됐습니다. 유리로 된 집이라 관심만 있으면 옆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볼 수 있고 귀를 기울이면 들을 수도 있어요. 네팔 지진 난민 등 난민과 재난민을 우리가 돕는 건 돈이 좀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한 집안 식구이기 때문입니다. 공감 능력을 키워 대한민국의 국민을 넘어서 세계의 시민으로 성장하세요. 그래야 진정한 글로벌 리더도 될 수 있어요.
이필재 더스쿠프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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