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절벽’ 한국 경제

▲ 사방이 절벽이 작금의 경제 상황을 구출해낼 주도적 책임은 어디까지나 청와대와 정부 몫이다.[사진=뉴시스]
한국 경제를 둘러싼 사방四方이 절벽이다. 수출이 역대 최장인 14개월 연속 감소했다. 수출이 부진하면 내수가 받쳐줘야 할 텐데, 1월 소매판매가 줄고 소비자심리지수도 지난해 메르스 사태 수준으로 위축됐다. 1월 산업생산과 투자가 감소했고, 기업들의 체감경기를 나타내는 기업경기실사지수도 7년 만에 최저치다. 실물경제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 전반이 마이너스 증가율이거나 내리막이고 심리지수도 바닥이다. 이미 심각한 고용절벽, 소비절벽, 부채절벽에 생산과 투자도 동반 감소함으로써 기업의 ‘성장절벽’까지 가세했다.

3대 경제주체 중 민간 부문인 기업과 가계가 절벽을 못 벗어나면 정부가 구원투수로 나서야 할 텐데 보이지 않는다. 대외여건이 악화된 상황에서 이 정도면 선방했다는 식의 낙관론에 부동산 경기 부양과 승용차 개별소비세 한시적 인하 등 대증요법, 정책을 책임지는 정부 탓이 아닌 국회 탓 등 남 탓으로 일관하고 있다. 가히 ‘정책절벽’이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이렇다 할 경제정책도, 경제적 성과도 없다. 1기 현오석 경제팀은 소신과 방향 감각 없이 우왕좌왕하다가 집권 초기 골든타임을 허비했다.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고 호언장담하던 2기 최경환팀은 성장률을 높이려고 부동산 경기를 띄웠다가 성장률은 끌어올리지도 못한 채 가계부채만 키웠다. 3기 유일호팀은 그나마 들이밀 만한 정책도 없다. 출범 이후 한 일은 겨우 지난 2월 대통령 주재 무역투자진흥회의와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재개 검토 정도다.

사방이 절벽인 작금의 경제 상황은 역대 정부와의 경제성장률 비교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새누리당이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며 비판하지만 김대중 정부 5년의 연평균 성장률은 5.3%, 노무현 정부도 4.5%로 잠재성장률보다 높았다. 반면 이명박 정부는 3.2%로 간신히 3%에 턱걸이했고, 박근혜 정부 3년 평균 성장률은 2.9%로 3%에도 못 미쳤다. 올해도 3%를 넘어서기는 힘들어 임기 내내 성장률 2~3%대를 맴돌 전망이다. 이명박(5년)ㆍ박근혜(3년) 정부의 경제를 ‘존재하지 않는 8년’으로 비유하는 표현이 나오는 이유다.

절벽이 자꾸 늘어나고 헤어나기 어려운 것은 정부가 내세우는 정책이 상황을 되레 악화시키거나 새로운 절벽을 쌓기 때문이다. 경제영토를 세계의 70%까지 확장했다고 자랑하며 공격적으로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했지만 한중韓中FTA의 과실은커녕 대중對中 수출이 감소했다. 우리의 강점인 조선ㆍ철강ㆍ석유화학 등 중후장대형 산업에서 이미 기술력을 높인 중국이 한국과 경쟁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제조업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 경제성장 정책을 바꿨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제조업체에 수출하는 중간재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 당국자들은 변화하는 시장 여건과 수요에 맞춰 과거와 다른 발상과 전략으로 접근하는 노력에 앞서 걸핏하면 남 탓 타령이다. 수출 부진은 저유가와 중국의 성장 둔화 등 세계경제 침체 탓, 내수 침체는 서비스산업발전 기본법안을 통과시켜주지 않은 국회 탓이다. 경제 관련 법안을 제때 심의ㆍ처리해주지 않은 국회도 문제이지만, 사방절벽 상황의 한국 경제를 구출해낼 주도적 책임은 어디까지나 청와대와 정부 몫이다.

유일호 경제팀은 기존 정책을 답습하며 안주하지 말고 정책절벽에서 뛰쳐나와야 할 것이다. 단기 대증요법의 유혹을 뿌리치고, 조금 더뎌도 부실ㆍ좀비기업 정리 등 구조개혁의 길을 가야 한다. 규제혁파를 통한 경쟁 촉진과 신산업 창출도 긴요하다. 세계적 흐름인 정보통신기술(ICT) 융합이 만들어낼 4차 산업혁명에도 대비해야 한다. 4ㆍ13 총선 프레임에 갇혀 손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대통령이 정작 책상을 치며 나무랄 대상은 국회보다 존재감 없는 경제팀이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