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속 활황➋ 리퍼브 시장

알뜰소비, 가치소비에 관심이 있는 소비자라면 ‘B급상품’이란 말을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자칫 B급상품이라고 하면 품질이 떨어지거나 불량제품을 뜻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렇지 않다. 잘 고른 B급상품은 사실상 ‘새것’과 다름없다.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이 B급상품을 찾기 시작한 이유다.

▲ 동일한 품질의 제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는 ‘B급상품’ 시장은 알뜰소비 추세와 맞물려 호황을 누리고 있다.[사진=뉴시스]
‘B급상품’ 전성시대다. 경기침체로 얇아진 소비자의 지갑이 B급 상품으로 몰리고 있어서다. B급상품은 시쳇말로 후진 것이 아니다. 유통기한이 임박하거나 진열대에 전시해 약간 흠이 생긴 제품을 말한다. 반품이나 하자가 있는 제품을 수리한 리퍼브(Refurbished) 제품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럼에도 B급상품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비자의 외면을 받았다.

유통기한 임박 식품을 파는 ‘임박몰’ 관계자는 “처음 시작할 땐 100명 중 99명이 유통기한 임박 상품에 부정적인 시선을 보냈다”며 “제조사들도 이게 잘 될 것이라고 낙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금은 다르다. 현재 1300여개의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하루에 품절되는 제품의 수도 상당하다. 13만명의 회원수를 자랑하는 ‘떠리몰’은 올해 1ㆍ2월 매출이 전년 동기대비 36% 늘어났다. 11번가ㆍ옥션 등 대형 온라인 쇼핑몰까지 리퍼브 제품을 파는 코너를 만들었을 정도다.

B급상품의 가장 큰 장점은 저렴한 가격이다. 요컨대, 대기업 브랜드의 A 드럼세탁기의 출시가는 160만원. 하지만 전시상품을 다루는 쇼핑몰에선 같은 제품의 가격이 69만5000원이다. 또 다른 장점은 품질이다. 매장 전시를 위해 꺼내놓은 제품이나 고객의 단순 변심으로 반품된 제품은 사실상 ‘새것’이다. ‘사용설명서가 없다’ ‘포장박스가 훼손됐다’는 등 변변치 못한 이유로 반품이 된 제품도 마찬가지다. 디자인과 색이 조금 다르거나 결함이 있어 수리를 마친 상품도 소비자가 사용하는 데 지장이 없다.

최근 리퍼브 노트북을 구매한 한 이용자는 “스펙에 비해 가격이 너무 싸서 반신반의했는데 새 제품인 것처럼 상태가 좋아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서비스의 질이 형편없는 것도 아니다. IT제품을 판매하는 ‘전시몰’은 제조사의 방침과 상관없이 신상품은 1년, 중고ㆍ렌털 제품은 3개월 무상수리를 보장한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B급 식품 역시 안심할 만하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식품을 파는 떠리몰은 식품을 전공한 학생들과 함께 판매 제품의 세균과 대장균의 수치를 검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B급 상품 안정성에 의문을 갖는 소비자를 위해 마련한 소비자 인식 개선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이 반드시 위험한 것도 아니다. 유통기한은 ‘제품의 제조일로부터 소비자에게 판매가 허용되는 기간’이다. 식품을 안전하게 섭취할 수 있는 소비기한과 다르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우유는 50일, 유음료(액상커피)는 30일, 치즈는 70일까지 섭취해도 안전상 문제가 없다. 한국소비자원은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무조건 버리기보다는 맛과 냄새 등을 확인해서 섭취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정희 중앙대(경제학) 교수는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소비자들이 과시소비에서 알뜰소비로 눈을 돌리고 있다”면서 “B급상품의 수요가 커진 만큼 소비자가 믿고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인증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강다은 더스쿠프 기자 eundak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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