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시장의 우울한 시그널

정부의 ‘전세난’ 해소 노력이 분주하다. 공공임대 주택과 뉴스테이 공급을 늘려 전세난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업계는 올해도 서울에서 전셋집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전세난 가속화를 증명하는 통계들이 쏟아지고 있어서다.

▲ 정부의 전세난 해소 대책에도 전셋값이 오르면서 살던 곳을 떠나 외곽으로 이주하는 '전세 난민'이 급증하고 있다.[사진=뉴시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올해 임대주택 9만6000채와 공공분양 아파트 1만4000채를 공급한다. 2013년 이후 최대 규모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전세난을 행복주택, 전세임대 등 저렴한 임대료와 안정된 임대기간을 갖춘 상품으로 틀어막겠다는 얘기다. 정부는 10만 가구에 육박하는 공공 임대주택이 극심한 전세난에 ‘단비’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부동산 업계의 시각은 다르다. 오히려 역대 최악의 전세난 시대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를 보여주듯 ‘전세난 지속’을 경고하는 불안한 통계도 쏟아지고 있다. 올 2월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은 역대 처음으로 74%선을 넘어섰다. 2011년 50%에도 못 미쳤던 서울 전세가율이 5년 만에 무려 24.2%가 증가한 셈이다.

지역별로는 성북구(83.7%)와 성동구(80.7%)의 전세가율이 80%를 넘어섰다. 업계는 올해 안에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이 곧 80%를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전셋값 상승세는 2009년부터 현재까지 떨어져 본 적이 없다”며 “오갈 데 없는 서민들의 전세난을 공공임대 주택 공급으로 해결하기는 역부족”이라고 꼬집었다.

재건축ㆍ재개발 사업 가속화로 이주물량이 늘어난 것도 복병이다. 현재 강남 3구에선 재건축을 추진 중인 단지 4500여 가구가 연내 이주할 계획이다. 이들의 재건축 추진 속도가 빨라지면 전세 가뭄은 더욱 심화될 공산이 크다. 올해 3~5월 전국 아파트 중에서 2년 전세계약이 종료되는 건수도 9만5751건으로 집계됐다. 그중 수도권에서만 60% 넘는 6만3479건이 몰려있다.

이 수치가 불안한 이유는 전ㆍ월세 거래에서 전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고 있어서다. 서울시에 따르면 3월 들어 16일까지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량 7796건 가운데 전세는 4770건으로, 전세 비중이 61.1%를 기록했다. 전세 비중은 지난해 3월 68.8%에서 매달 꾸준히 하락세다. 재계약 시즌을 맞아 전세를 월세로 바꾸려는 집주인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정부의 대출 규제로 기존주택 시장 거래가 위축되면서 매매전환 수요가 줄어드는 점도 전세난 심화를 부추기고 있다. 결국 수요는 늘어나는데 공급은 줄어드는 형국인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주택 임대차 시장이 주거비 부담이 큰 월세 중심으로 바뀌면서 무주택 서민들의 주거난이 심화되고 있다”며 “치솟는 전셋값을 묶어 두거나 사라지는 전세를 틀어막을 방도는 사실상 없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이런 전세난은 또 다른 리스크를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 전셋값이 저렴한 지역을 찾아다니는 ‘전세 난민難民’이 늘고 있다. 이들의 피난 행렬은 이미 현실이 됐다. 고공행진하는 서울 전셋값에 떠밀려 탈脫서울을 선언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어서다.

지난해 서울을 등진 인구는 172만7000명. 유입된 인구는 158만9000명으로, 이 둘을 더한 통계인 ‘순유출’은 13만7000명이다. 이런 서울의 순유출 규모는 1997년(17만8000명) 이후 18년 만에 가장 많은 수치다. 전국 17개 특별시ㆍ광역시ㆍ도 가운데서도 단연 압도적인 순유출 규모다. 서울의 뒤를 잇는 순유출 지역인 대전과 부산은 각각 2만2000명, 1만4000명에 불과하다.

서울을 등진 인구 10명 중 6명은 경기도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경기도는 지난해 전국에서 인구 순유입이 가장 많았던 지역이 됐다. 경기도로 전입한 사람들의 74.0%가 꼽은 전입사유는 주택. 서울 전셋값이면 수도권 새 아파트를 구입하고도 남기 때문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서울의 3.3㎡당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1247만원. 이에 반해 경기도의 3.3㎡당 평균 매매가격은 997만원 정도로 서울 전셋값에 비교하면 20% 정도 낮다.

심지어 지난해 수도권에서 분양된 신규 아파트 가격도 3.3㎡당 1057만원 수준으로 서울 전셋값보다 싸다. 임병철 부동산114 연구원은 “봄철 이사시즌이 다가오면서 전세 매물이 씨가 말랐다”며 “싼 집을 찾아 이사 가는 전세난민의 움직임은 올해도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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