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완화 공약과 금통위 원샷 교체

▲ 한은의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금통위 위원 7명 중 4명이 한꺼번에 교체될 예정이다. 추천된 면면을 보면 모두 친정부 성향의 인사들인데, 한국판 양적완화 등 집권당의 통화신용정책 개입에 어떤 태도를 보일지 우려된다.[사진=뉴시스]
20대 총선이 임박하면서 표를 노린 달콤한 공약들이 쏟아지고 있다. 어려운 경제 상황을 반영하듯 일자리 창출과 경기 활성화 방안 등 경제 관련 공약이 많다. 급기야 한국은행으로 하여금 금융기관 등이 보유한 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시중에 돈을 대량 풀도록 하겠다는 ‘한국판 양적완화’ 공약까지 나왔다.

해당 정책의 당사자인 기획재정부나 한국은행의 부정적 반응에도 집권 여당이 밀어붙일 태세다.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 선대위원장은 “양적완화 정책을 총선 직후 바로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은더러 기준금리 조정에만 매달리지 말고 경기부양에 적극 나서라고 주문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제민주화 공세에 맞불 카드로 선택한 모양인데 위험한 발상이다. 시중에 돈이 대거 풀리며 돌 것이란 기대감이 여당의 득표에 이로울 거라고 본 것이리라. 그러나 중앙은행이 기업 구조조정을 명분으로 특정 기업을 지원한다는 발권력 남용 논란을 피할 수 없다. 한은더러 기업 부실과 가계 빚 문제 해결용 돈을 찍어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헌정 사상 선거를 앞두고 여당이 공약으로 통화신용정책을 내세운 전례는 없었다.

사실 한은은 그동안 금리인하를 통해 시중에 돈을 풀어왔다. 지난해 6월부터 연 1.5%인 기준금리는 아직 낮출 여지가 있다. 금통위는 지금 수준의 금리도 낮다고 본다. 양적완화는 기준금리가 제로(0) 수준으로 떨어진 뒤 동원하는 통화정책의 마지막 한 방이다. 미세한 환율변동에도 경제가 출렁이는 우리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에선 금리인하와 양적완화를 동시에 했다가는 막대한 자금이 풀려 급격한 원화가치 하락과 외국자금 이탈을 불러올 수도 있다.

새누리당은 4ㆍ13 총선 직후 양적완화를 시작하겠다는데, 공교롭게도 금융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 7명 위원 중 4명이 한꺼번에 교체되는 시점(4월 20일)과 겹친다. 더구나 차기 금통위원으로 추천된 후보들 대다수가 물가안정보다 경제성장을 중시해 금리인하에 우호적인 비둘기파다. 인위적인 경기부양보다 물가안정을 중시해 기준금리 인하에 부정적인 이주열 한은 총재의 기조가 흔들릴 소지가 있다.

금통위원은 당연직인 한은 총재와 부총재를 제외한 5명을 한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대한상공회의소, 은행연합회가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형식은 이렇지만 실질적으론 임명권자인 대통령 의중에 따라 낙점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번에 추천된 면면을 보면 관료 출신 한명에 국책 연구기관 출신이 둘이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활동한 인물도 있다. 그동안 학자 출신이 다수를 차지하며 ‘중립’이었던 금통위 색깔이 ‘친정부’ 성향으로 바뀔 판이다.

일본은 오랫동안 제로 금리 상태를 유지했는데도 경제가 나아지지 않자 2012년 말 취임한 아베 신조 총리가 양적완화 카드를 꺼내들었다. 일본은행 윤전기를 돌려서라도 돈을 찍어내겠다면서. 양적완화 정책에 미온적인 시로카와 마사키 일본은행 총재를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물러나게 하고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를 앉혔다. 이후 ‘아베노믹스’란 이름으로 무제한으로 엔화를 풀었지만 경제는 한때 반짝했을 뿐 살아나지 않아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세계적으로 주요 국가들이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국에 유리하게 통화가치를 조정하고 금리수준을 결정하는 ‘통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럴수록 우리 금통위가 전문성으로 무장해 정부를 견제하고 정치권의 압박을 버텨내며 독립성을 지켜야 할 텐데 거수기로 전락하면 그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과 기업에 돌아간다. 친정부 성향의 금통위원들이 한국판 양적완화 정책 등 집권당의 통화신용정책 개입에 어떤 태도를 보일까. 연봉 2억7000만원에 차관급 대우를 받는 막강한 자리를 관官 색채 일색으로 채우겠다는 배짱이 걱정스럽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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