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한국 교육

▲ 정부가 5년간 1조원의 예산을 AI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혔지만 관련 업계와 학계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사진=뉴시스]
서울 강남 학원가를 중심으로 어떻게 하면 자녀를 공과대학에 보낼 수 있느냐는 문의가 급증했다고 한다.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바둑 대결에서 이기는 것을 목격한 엄마들의 극성스러운 자녀교육 방식이다.

카카오톡에 전국의 중3 자녀를 둔 엄마들이 “알파고가 어디 있는 고등학교냐?”라고 물으며 난리라는 썰렁 개그가 올라올 정도다. 그런데 공대에 들어간다고 과연 알파고를 만든 데미스 허사비스처럼 성장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이전에 우리나라 교육 현실부터 들여다보자.

개념과 원리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 무조건 외우고, 사지선다형 시험 성적으로 등수를 매긴다. 유치원 단계부터 영어ㆍ수학 등 선행학습에 목을 맨다. 학교교육으론 부족하다며 밤늦도록 학원에서 과외공부에 매달린다. 쉬운 수학능력시험 문제를 푸는 연습을 반복하면서 실수하지 않고 정답을 골라내는 방법을 익히는데 시간을 허비한다. 목표는 한가지, 오로지 상급학교 입시다.

창의력과 자발성을 질식시키는 교육은 초ㆍ중ㆍ고교에서 그치지 않는다. 대학도 비슷하다. 전공 및 교양 필수과목은 수강신청 단계부터 전쟁을 치러야 한다. 오죽하면 수강신청 기회를 놓고 학생들끼리 강의를 사고팔까. 어지간한 과목의 수강인원이 60명을 넘어서 밀도 있는 토론식 수업은 꿈도 못 꾼다. 특히 신입생이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고 진로를 선택하는데 도움을 줄 교양과목은 수강생이 더 많아 대형 계단강의실에서 진행하기 일쑤다. 그 바람에 대학에서조차 일부 과목은 서술 내지 논술형의 주관식이 아닌 괄호 넣기나 사지선다형 객관식 시험을 치른다.

대학입시와 관련된 정부 규제도 창의적이고 특정 분야에 뛰어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을 억제하는데 한몫한다. 대학들은 수험생이 제출하는 자기소개서나 추천서에 학교 밖 경시대회 수상실적 등을 기록하면 떨어뜨리라는 교육부 지침을 따라야 한다.

외워서 답 고르는 수능 성적과 고교 학생부 석차등급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한국 대학과 달리 허사비스가 다닌 영국 케임브리지대는 사고력 측정 면접으로 뽑는다. 영국의 각급 학교와 대학에선 ‘보기 중 고르라’는 문제는 없고, 지식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쓰는 서술형 시험으로 학생들을 평가한다. 암기식 붕어빵 한국 교육과 창의성과 사고력을 중시하는 영국 교육의 결과는 ‘0 대 84’라는 역대 노벨과학상 수상자로 극명하게 엇갈린다.

알파고를 보고 흥분하며 뒤늦게 법석을 떨기는 정부도 마찬가지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능정보산업육성팀이란 AI 전담팀을 서둘러 가동시켰다. 연구개발 컨트롤타워인 지능정보기술연구소를 설립하고, 사회ㆍ경제 변화에 대응하는 지능정보사회 플랜도 마련하기로 했다. 이를 포함한 종합적인 AI 산업 육성 방안을 4월에 발표하기로 했다.

복잡한 두뇌게임인 바둑에서 알파고가 이긴 것은 앞으로 인공지능이 의료, 금융,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빠르게 확산하리라는 점을 예고한다.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이 코앞에 다가왔다. 올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의 최대 화두도 4차 산업혁명이었다. 정보통신기술(ICT)과 제조업의 융합이 만들어낼 4차 산업혁명은 AI를 비롯해 로봇, 사물인터넷(IoT), 가상현실(VR), 3차원(3D) 프린터, 무인비행기(드론), 자율주행자동차, 나노ㆍ바이오 기술 등 미래 먹거리 산업들이 주축이다.

우리가 머뭇거리는 사이 미국, 독일, 일본은 4차 산업혁명 대비에 이미 몇걸음 앞서 있다. 정부는 관官 주도로 뭘 해내겠다는 업적주의를 버리고 관련 규제를 과감하게 걷어내 기업이 알아서 신산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라. 교육 패러다임도 확 바꿔야 한다. 문제는 이제 인공지능이 풀 테니 문제를 던질 줄 아는 창의적인 인재를 키울 수 있도록.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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