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개혁 틀어막고 있는 구세대 결단해야

▲ 한국이 선진국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세대교체의 실수다.[사진=뉴시스]

일본인 소설가 소노 아야코가 쓴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책이 있다. 노년에 경계해야 할 것들을 담담한 필체로 쓴 계로록戒老錄이다. 그는 이 책에서 70세를 넘어서면 공직에 오르지 말라고 조언한다. 아무리 건강해도 그 나이가 되면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으며, 갑자기 병이 나거나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온화하던 성격이 괴팍하게 변하기도 한다. 그는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 연령을 넘어서서 선거에 나서는 것이란 정말로 무책임한 일이라고 통박痛駁한다.

소노 아야코의 ‘70세 불가론’은 나이 들었다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정년을 일단락으로 하고, 그 후에는 새로운 출발을 하라는 얘기다. 정년까지의 경력을 대단한 것으로 생각해 새로운 출발을 비참하거나 한심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두번 다시 되풀이할 수 없는 인생을 음미하는 자세로 새출발을 하라는 당부다.

얼마 전 쿠바의 라울 카스트로 공산당 제1서기는 “당 중앙위원회에서 활동할 수 있는 상한연령을 60세, 당 직책을 맡을 수 있는 상한을 70세로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장기집권으로 침체에 빠진 쿠바가 발전하려면 젊은 피로 당 전체를 바꾸는 방법 외에는 길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4월 13일 치러진 20대 총선을 보며 한국이 선진국의 길목에서 좌절하고 있는 이유를 꽉 막혀버린 세대교체에서 찾을 수 있었다. 새누리당ㆍ더불어민주당ㆍ국민의 당 공히 70대 인물이 공천을 주도하다 보니 애당초 젊은피 수혈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했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대표는 77세. 비례대표로만 무려 5선이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70대 중반이다. 80세가 눈앞인 어느 노 책사는 까마득한 후배의 대통령 출마를 돕겠다는 핑계로 아들뻘 되는 후배가 맡으면 딱 맞을 법한 경기도의 공모직 자리를 꿰찼다. 박근혜 정부는 출발부터 연로했다. 패기 넘치는 젊은 세대 대신에 굳이 흘러간 시대에서 총리와 비서실장을 찾았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의 생각은 자못 진지하다. 그는 공공부문에 있는 인사들은 56세 이전에 무조건 물러나라는 다소 과격한 주장을 펼친다. 세대교체의 흐름이 공공부문에서 시작돼 민간부문으로 확산돼야 ‘헬조선’으로까지 불리는 이 땅에 희망이 생긴다고 단언한다. 한국사회의 노쇠현상, 저출산, 가계부채 증가 등의 문제는 지난 10년간 진단만 하고 미시적인 땜질처방에 그쳤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시킨 구세대가 사회개혁을 틀어막고 있다. 산업화세력은 굴뚝산업 시대의 정책마인드에 매몰됐고, 민주화 세력은 민중적 명분을 독식한 채 특권집단화된 지 오래다. 송 교수는 “50대 말~60대 초는 각자가 가진 자본을 물려주고 당장 떠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 한국은 무엇보다 열정이 빠르게 소멸되고 있다. 특유의 역동성은 물론 아기울음, 일자리, 가족애, 희망과 도전, 공감과 신뢰, 교육열, 세계 일등기업이 사라지고 그 빈터에 패배의식과 분노가 확산되고 있다.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하는 비책은 간단하다. 구글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젊은 신생기업이 많이 일어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와 공기업의 주요 직책부터 젊은 세대를 과감히 앉혀야 한다. 젊은 총리, 젊은 장차관이 나와야 한다. 특히 정치권의 구조조정은 핵심과제다. 개방적이고 혁신적인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는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같은 ‘40대 기수’가 낡은 제도와 이념이 지배하는 이 땅을 뿌리부터 바꾸어야 한다.

100세 시대에 그만두고 뭘 하냐고? 퇴직과 은퇴는 엄연히 다르다. 더 이상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고정관념이자 편견이다. 퇴직 이후 자신에게 맞는 제2의 직업을 갖거나 공부ㆍ자원봉사ㆍ여행ㆍ스포츠 활동을 하면 된다. 인간의 수명은 이전 세대 보다 무려 30년이 길어졌다. 신神이 선물한 보너스 30년을 낭비하지 말고, 세상을 관조하고, 봉사하고, 즐기는데 써야 한다. 더 큰 인생의 평원을 향해 이륙(take-off)하자는 뜻이다.

해마다 봄이면 꽃이 피고, 여름에는 녹음이 우거지며, 가을에는 낙엽이 진다. 세대교체는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 끊임없이 반복되어온 자연스러운 일이고, 삶의 일부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언제나 미래다. 국가가 발전하고, 사회가 변화하고, 개인의 인생이 풍요로워지려면 소리 없이 의자를 내주고 물러나는 용기가 필요하다. “뮤지션한테 은퇴란 없다. 단지 음악이 사라지면 멈출 뿐. 하지만 내안에는 아직 음악이 남아있다(영화 ‘인턴’ 중에서).”
윤영걸 더스쿠프 부회장 yunyeong0909@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