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옥시 사건 막을 수 있나

▲ 지난 2011년 발생한‘가습기살균제’사건으로 200명이 넘는 피해자가 목숨을 잃었다.[사진=뉴시스]

200명 넘는 피해자의 목숨을 앗아간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수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기업과 정부의 문제점이 속속 들어나고 있다. 문제는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느냐다. 화학물질 관리시스템이 일부 바뀌었지만 여전히 허점이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이구동성이다.

2011년 산모 8명이 원인불명의 폐질환으로 입원했고 그중 4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망의 원인은 뜻밖이었다. 화학물질이 들어간 가습기살균제가 폐질환을 일으킨 요인이었다. 사실 가습기살균제는 문제가 많은 물질이었다. 1994년 산업통상자원부(당시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에서 공산품으로 허가를 받은 가습기살균제는 2007년 세정제로 지정됐지만 ‘살균제’라는 이름으로 팔려 나갔다. 업체들이 세정이 아닌 살균을 강조한 탓에 벌어진 일이었다. 정부는 환경인증마크까지 발급하면서 일을 키웠다.

정부는 사건이 터지고서야 가습기살균제를 부랴부랴 의약외품으로 지정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청(현 식약처)에서 관리하도록 했다. 하지만 그사이 가습기살균제 탓에 많은 이들이 피해를 봤다. 환경보건시민센터가 밝힌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1528명. 이 가운데 목숨을 잃은 사람은 239명에 달했다.

정부의 안일한 대처와 허술한 화학물질 관리시스템이 피해를 키운 셈이다. 박동욱 한국방송통신대(환경보건학과) 교수는 “가습기살균제를 공산품으로 분류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특히 주요 화학물질이 환경부의 유해성 심사에서 걸러지지 않고 판매된 것이 화를 키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현재의 시스템은 제2의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막을 수 있을까. 정부는 화학물질 관리를 위해 2013년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을 제정했다. 문제는 여기에도 허점이 있다는 것이다. 화평법과 화관법은 제정 초기부터 관련 업계의 큰 반발을 샀다. 그 결과, 제조자ㆍ수입자ㆍ사용자ㆍ판매자로 명시돼 있던 보고 의무 대상에서 사용자가 제외됐다. 이는 화학물질을 이용해 제품을 만드는 기업의 보고 의무가 없어졌다는 의미다.

 
등록대상을 신규화학물질과 1t 이상 유통되는 기존 화학물질로 규정한 것도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1t 미만 화학물질은 등록대상이 아니다. 1t 이상 유통되는 화학물질도 유해성이 의심되는 기존 물질만 검사하게 돼 있다. 관련 정보가 없어 유해성이나 위험성이 포착되지 않았다면 등록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얘기다.

박태현 강원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관리의 기준이 사용량에 따라 결정돼 적정량 미만의 유해물질은 통제가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김해동 계명대(지구환경과) 교수는 “화학물질은 계속해서 새로운 것이 만들어진다”면서 “하지만 이런 물질의 유해성이 문제가 되려면 피해가 발생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징벌적 요소가 약하다는 것도 단점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화평법과 화관법의 최대 과징금 규정이 매출액 대비 5%로 개정됐다. 하지만 적용 대상을 ‘고의적ㆍ반복적으로 사고를 일으키는 기업’으로 변경했다. 전문가들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같은 강력한 제재수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태현 교수는 “기업의 책임을 묻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있어야 제도의 허점을 악용하는 기업을 막을 수 있다”며 “선진국은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의도적인 고의성이 있다고 보고 기업 활동을 하지 못할 정도로 엄격하게 제재한다”고 말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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