긱 이코노미 논란 해외에선…

미국 사회는 지금 ‘긱 이코노미’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있다. ‘노동의 유연화’로 대표되던 긱 이코노미가 이젠 ‘불안정한 일자리의 요람’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어서다. 긱 이코노미에 소속된 노동자의 아픔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이를 규제해야 한다는 지식인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일까.

▲ 미국에선 저임금 노동자의 권리 향상을 위한 논쟁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사진=뉴시스]

다국적 컨설팅전문회사 매킨지앤드컴퍼니(McKinsey & Company)는 긱 이코노미의 ‘긱’을 디지털 장터에서 거래되는 기간제 노동으로 정의했다. 긱 이코노미에는 모바일 차량 예약 서비스 ‘우버(Uber)’, 숙박 공유 서비스 ‘에어비앤비(Airbnb)’ 등이 포함된다.

매킨지는 2015년 6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이 불안정한 기간제 경제가 2025년까지 창출할 수 있는 부가가치는 2조7000억 달러(약 3204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이 멈추지 않는 이상 수요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경제 시스템이 갖는 일종의 메리트인 셈이다.

긱 이코노미는 미국 사회에 빠르게 정착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우버, 에어비앤비와 디자이너가 제작한 커스텀 주얼리를 대여해 주는 락스박스(Rocksbox), 시티은행이 후원하는 시티 바이크(citybike) 등이 다양한 분야에서 소비자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하지만 긱 이코노미가 미국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만을 이끌어 내고 있는 건 아니다. 수요자가 원할 때만 노동력을 제공하는 긱 이코노미의 특성상 저임금 일자리가 급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긱 이코노미의 양면성 논쟁에 불을 지핀 건 미디어다. 뉴욕타임스는 2014년 10월 ‘우버와 에어비앤비가 진짜 현실을 만날때’라는 기사에서 “이 분야의 기업들이 계약직 노동자 사용 범위를 지나치게 넓혀 온 것은 아닌지 우려가 나온다”고 밝혔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도 2015년 1월 ‘온 디맨드(on demand) 경제학’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기술 낙관주의자는 소비자가 더 나은 선택지를 가지게 됐다는 점, 노동자는 자신이 원할 때 일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만 주목할 뿐 사회적 논쟁이나 문제는 간과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긱 이코노미 양면성 공론화

미국의 주요 인사들도 이 논쟁에 뛰어들었다. 스타트를 끊은 건 로버트 라이시 미국 전 노동부 장관이다. 그는 지난해 2월 자신의 블로그에 “말이 좋아 공유경제(sharing economy)이지 사실은 찌꺼기(scraps)를 나누는 경제가 아닌가”라면서 긱 이코노미의 확산을 우려했다. 미국 민주당의 유력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비판에 가세했다. 그는 지난해 7월 13일 맨해튼 뉴스쿨 연설에서 발표한 ‘힐러리노믹스 경제정책’에서 지속가능한 임금상승을 가로막는 구조적 요인에 ‘우버와 같은 공유경제기업’을 포함했다.

긱 이코노미를 둘러싼 논쟁은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권과 생존권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우버 운전기사도 노동자로 인정해야 하는가’를 둘러싼 논쟁이다. ‘노동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는 운전기사 노동 조건에 자율성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버 회사는 운전기사의 최소 근로시간을 정하고, 요금도 일괄 책정해서 공지하며, 팁까지 금지하고 있다. 운전기사가 일정 수준의 고객평점을 유지하지 못하면 해고도 한다. 이 때문에 기사들이 사실상 우버에 고용된 노동자나 다름없다는 거다.

▲ 긱 이코노미가 가져올 논란이 공론화되자 우버 운전기사들이 노동자로 인정받기 시작했다.[사진=뉴시스]
반면 우버 측은 “운전기사가 영업시간과 도구를 독립적으로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을 개인사업자로 봐야 한다”고 맞받아치고 있다. 운전기사가 개인차량으로 원하는 시간에 영업을 하고, 차량 유지비용도 각자가 책임지고 있다는 거다.

양측 공방의 분위기는 ‘우버 운전기사를 노동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쪽으로 쏠리고 있다. 일부 주州의 법 개정 소식도 속속 들려온다. 2015년 플로리다 주 규제청은 차량 사고 문제로 해고된 전 우버 우전기사에게 실업급여 수급자격이 있다고 판결했다.

2015년 6월 캘리포니아 주 노동위원회는 우버 회사가 차량 유지비 때문에 최저임금을 벌지 못한 전 우버 운전기사에게 4152달러(약 493만원)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우버 운전기사를 고용된 노동자로 분류해야 한다는 법적 판단이 전제된 판결이었다. 2015년 12월 워싱턴 주 시애틀 시의회에선 우버 운전기사의 노조설립을 허용하는 조례가 마침내 통과됐다. 수많은 긱 이코노미 종사자 앞에 ‘꽃길’이 열린 셈이다. 

건강한 자본주의 위한 몸부림

미국의 판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긱 이코노미와 종사자의 법적 지위는 우리도 부딪칠 수밖에 없는 노동문제라서다. 예견된 문제를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해소하려는 노력도 눈여겨볼 만하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자본가에 비해 열악한 상황에 있는 ‘취약계층’을 보호해야 한다는 게 노동법의 취지”라면서 “이것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우버 운전기사를 노동자로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본주의를 건강하게 유지하려는 미국사회의 노력이 긱 이코노미를 규제하는 판례 또는 법제정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경제전문가는 “임시직 경제가 확대되면 다수의 소득이 줄고, 빈부 격차가 더 벌어지게 되는데 그 시나리오의 결론은 자본주의의 몰락”이라며 “개인의 경제적 위험과 부담을 덜어주는 건 사회경제 시스템의 오작동을 막기 위한 현명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각종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한 신규 서비스들이 시도 때도 없이 론칭되고 있다. 이런 새로운 경제 시스템 속에서 일하는 사람을 보호할 방법을 이야기해야 할 때다. 
노미정 더스쿠프 기자  noet85@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