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국민투표의 교훈

▲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선거 판세를 뒤집기 위해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이용했다. 하지만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서 도리어 악수가 됐다는 평가다.[사진=뉴시스]
설마하던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ㆍBrexit)가 현실화됐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개표 결과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영국 파운드화 가치는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투표 종료 직후 브렉시트 반대가 우세하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전해지자 크게 올랐다가 개표 개시와 함께 찬성표가 쏟아지자 고꾸라졌다.

결국 탈퇴 51.9%, 잔류 48.1%로 43년 만의 EU 탈퇴가 결정되면서 파운드 가치는 1985년 이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대신 안전자산으로 분류된 일본 엔화와 금값이 치솟았다. 파운드화를 하루아침에 위험자산으로 만든 것은 영국 경제가 아닌 정치다.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2013년 영국 총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데이비드 캐머런 보수당 당수(현 총리)는 “2015년 총선에서 이기면 영국이 EU에 머물 필요가 있는지 국민 의견을 묻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열세였던 선거 판세를 뒤집는 한편 같은 당 내 EU 회의론자들을 달래고 당의 분열을 막기 위해 내세운 공약이었다. 보수당은 그해 총선에서 승리했지만, 공약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보수당은 물론 영국 사회 전체에 더 큰 갈등과 분열을 초래했다.

연령과 계층, 지역별로 찬반 의견이 크게 엇갈렸다. 20~30대 젊은층은 EU 잔류파가 많은 반면 50대 이상 노년층은 탈퇴파가 우세했다. 계층별로는 고용주ㆍ사무직 등 화이트칼라는 EU 잔류를, 노동자 등 블루칼라는 탈퇴를 더 원했다. 화이트칼라는 EU 탈퇴로 인한 유럽 단일시장 상실과 관세 증가를 염려했고, 블루칼라는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빼앗을까봐 걱정하기 때문이다. 대도시와 지방간 견해차도 노출됐다. 지역으론 잉글랜드와 웨일스가 찬성으로 기운 반면 경제규모가 작은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는 잔류를 원했다.

같은 보수당에서 캐머런 총리가 잔류를 호소하는 사이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은 탈퇴 운동을 주도했다. 급기야 EU 잔류를 주장해온 야당인 노동당 의원의 피살로까지 이어졌다. 선거 승리 이후 공약이 잘못됐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거둬들이지 않은 채 국민투표를 결행한 정치행위치곤 부작용이 너무 컸다.

어떻게든 선거에서 이길 요량으로 공약을 툭툭 던지고 보는 행위는 부작용을 잉태하기 마련이다. 표를 노린 공약 덕분에 정권을 잡는데 성공하더라도 집권 이후 정권에 부담을 지우는 부메랑으로 작용한다. 브렉시트가 영국의 집권 여당과 지지층의 분열을 자초한 골칫거리였다면, 한국에선 영남권 신공항 건설 공약이 화근이다.

영남권 신공항 건설은 전임 이명박 대통령이 공약했다가 백지화한 것을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가 다시 내세웠다. 이 공약으로 지지세력을 결집해 대통령 당선에 도움을 받았지만, 신공항 건설 후보지 결정시한이 다가오면서 집권 여당과 지지층의 갈등과 분열을 야기했다. 가덕도와 밀양 등 신공항 유치 희망 지역에 따라 박 대통령의 지지 기반인 영남권이 대구ㆍ경북(TK)과 부산ㆍ경남(PK)으로 나뉘었다.

국내 전문가 그룹의 평가로는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기 어렵다고 봤는지 20억원의 비용을 들여가며 외국에 용역을 맡긴 끝에 기존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쪽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TK와 PK 양쪽에서 반발을 사고 있다. TK지역의 한 신문은 1면에 “정부는 지방을 버렸다”는 문구만 인쇄한 ‘백지白紙신문’을 발행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과 정부는 사과 대신 ‘김해 신공항’ 카드를 꺼내들었다. ‘김해공항 확장=공약 파기’라는 등식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청와대 대변인은 “(박 대통령은) 약속을 지켰다”고 강변했다.

아무리 선거 승리가 절실하고, 표가 급해도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고 후유증이 예상되는 허풍선 공약을 남발해선 안 된다. 선거 이후에라도 국익을 위해 파기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되면 서둘러 국민에게 사과하고 공약을 철회하는 용기를 내야 한다. 미적대다가 지역ㆍ계층간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대외 신인도 및 국가경제에까지 부담을 지우면 무책임한 포퓰리즘으로 역사에 기록될 따름이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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