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일의 다르게 보는 경영수업

1980년대 대우그룹 경영관리팀 소속이었던 필자(김우일 전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는 대우조선해양을 감사한 일이 있다. 6개월을 샅샅이 뒤졌지만 대우조선해양에선 별다른 비리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해 대우조선해양의 경영평가는 A였다. 이런 대우조선해양이 비리백화점으로 전락했으니, 필자는 믿을 수 없다. 어디서부터 꼬였을까.

▲ 대우조선해양은 비리백화점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사진은 비리 혐의로 구속된 남상태 전 대우조선해양 대표.[사진=뉴시스]

1999년 대우그룹이 무너졌다. 외환위기에서 비롯된 연 30%에 이르는 고금리를 이겨내지 못했다. 그 이후 대우조선해양의 주인은 여전히 공석이다. 정부로 경영권이 이관된 때로부터 보면 벌써 17년째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은 정상화의 길을 걷지 못했다. 김대중ㆍ노무현ㆍ이명박ㆍ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전대미문의 부패비리 온상으로 전락해 버렸다.

경영진은 주인 없는 자산을 빼돌리기에 바빴고, 일부 직원은 막가파식 횡령에 혼을 빼앗겼다. 오죽하면 감춰놓은 부실이 7조원을 넘을 수 있다는 추측까지 나돌까. 그렇다면 40년 전 김우중 전 회장이 경영권을 행사한 1976~1999년 대우조선해양과 정부로 경영권이 넘어간 2000~2016년 대우조선해양은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1976년 김 전 회장은 그룹 기획조정실을 설립하라는 영令을 내렸다. 그는 이 영을 쪽지에 써서 내려보냈는데,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인사팀, 경영관리팀, 교육팀, 홍보팀.” 기조실 설립멤버들은 김 전 회장이 던진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인사팀, 교육팀, 홍보팀의 관장 업무는 명료하지만 ‘경영관리’라는 팀명은 생소했다. 쉽게 말해 ‘경영을 관리한다’는 뜻인데 너무 범위가 넓고 막연해 개념을 잡기 어려웠다. 회장이 의도하는 경영관리라는 진의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회장에게 그 뜻을 물었다.

“기획조정실에 경영관리팀이라고 특히 명시한 이유는 딴 게 아니라 가장 중요한 기능을 붙이려는 거요. 경영에 가장 중요한 게 이 기능인데, 이게 없으면 기업은 망하는 거요. 공성은 쉬워도 수성이 어려운 법인데 이 수성을 위해 절대 필요한 기능, 바로 감사를 맡기려는 거요. 이를 위해 내가 특별히 모시는 분이 있는데 이분을 모시고 감사를 확실히 해줘요. 기업 안 부패비리는 누구를 막론하고 필벌해주시오.”

감사를 위해 모신 분은 다름 아닌 감사원에서 30년 동안 경험을 쌓은 이사관 출신의 공직자였다. 경영관리팀 멤버는 회계사를 비롯 일당백의 숙련자로만 구성됐다. 경영관리팀은 말 그대로 365일 계열사를 돌아다녔다. 이들의 행차는 암행어사 출두를 방불케 했는데, 오전 7시에 본사와 사업장을 급습, 현금과 자산의 불규칙한 이동을 확인했다. 그래서인지 필자는 그때 ‘지옥의 사자’로 불렸다. 필자가 감사한 계열사 중 많은 경영진과 연루된 직원들이 잘렸기 때문이다. 회장과 사적으로 가까운 경영진은 몰래 회장에게 읍소를 하기도 했지만 김 전 회장은 비리 하나만은 용서하지 않았다.

일례로 대우그룹 계열사의 A사장은 법인카드를 부적절하게 사용한 게 적발되자 청와대에 손을 대 사건을 무마하려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이런 연유로 기업 경영진과 직원들은 감히 비리를 저지를 엄두를 못 냈고, 깨끗했다. 이 때문인지 대우조선해양을 6개월 감사한 경영관리팀이 내놓은 보고서엔 지적 건수가 별로 없었다. 이를 본 김 전 회장은 파안대소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천하의 경영관리팀이 고작 이거야.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이라. 태산을 흔들었는데 고작 쥐새끼 한마리 잡았네. 본래 이런 게 경영이야. 감사해서 코끼리를 잡으면 안 되는 법이지. 사실 쥐새끼도 못 잡을 정도로 깨끗해야 옳은 거야.” 그때 필자를 비롯한 경영관리팀이 얼굴을 들지 못했던 적이 있다. 이제야 밝히지만 대우조선해양은 당시 성과평가에서 A, 경영관리팀은 D를 받았다. 그만큼 대우조선해양은 깨끗한 회사였고, 김 전 회장 역시 이 회사에 심혈을 기울였다.

15년간 거제도에 머물며 근로자들의 공용목욕탕에 비치되는 비누 한조각까지 싸게 구매해 원가를 절감했던 게 그의 자세였다. 이런 대우조선해양이 엉망진창이 될 줄 누가 알았으랴. 이는 100% 정부 책임이다. 대우조선해양의 사태는 명백한 인재人災라는 얘기다.
김우일 대우M&A 대표 wikimokgu@hanmail.net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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